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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숙 Sep 27. 2023

전자 기타와 나잇값

40대 학생, 20대 선생님에게 눈치 보며 기타 배우기

어릴 적 대충 배워뒀던 전자 기타.

늙어도 남보다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으면 해서 2년 전, 고민 끝에 기타학원에 등록했다.

예전엔 한 공간에 10명 남짓 학생이 모여 수업을 받았는데 이젠 조카뻘 되는 어린 선생님에게 1:1 수업을 

받는다. 내 나이 43세.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기타를 아예 모르는건 아니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중고로 구입한 나의 Fender 기타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선생님이 앞에 있으면 난 한없이 작아지고 어설퍼졌다.

잘하려고 할수록 떨리고 실수가 늘었다. 선생님과 내 나이 차는 19. 나잇값 못하는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선생님이 괜찮으니 다시 쳐보라고 할수록 민망함이 커졌다.


“다시요~” 세 번째 반복이다. 불길한 징조다.

간단한 몇 마디도 못 해 손가락이 헤맨다. 화내는 일이 없는 선생님이지만 오늘은 너무 답답한지 다리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다리를 흔들기 시작하면 난 더 긴장된다. 사람이 다리를 흔드는 것은 거짓말을 하거나 초조하거나 뭔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심리적 표현이다. 

내가 헤맬수록 선생님의 고개가 점점 내려가더니 귀가 벌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내가 숙제를 제대로 못했 왔을 때도 선생님 귀가 벌게졌었다.


내딸 효은이 7살 때, 한글 가르쳐주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못하기에 선생님처럼 답답함에 화가 났었다. 잔뜩 긴장한 아이에게 “다시 읽어봐!”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43-22=19. 습관적으로 선생님과의 나이 차를 계산한다. 그때 한글 못한다고 아이에게 화낸게 너무 미안했다. ‘자꾸 다그치니까 긴장을 해서 그랬던 건데.’ 나를 답답해하는 선생님이 이해가 되면서도 미웠다. 

‘역시 이 나이에 전자 기타는 무리인가. 다른 걸 배워볼까?’ 그런데 기타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안 떠오른다. 잘할 수 없는 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던 나였으니까.


“선생님...” 민망하고 서운한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너무 답답하죠?”

침묵하던 선생님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아뇨_.” 고개를 든 선생님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남윤찬 선생님의 레슨 모습.  밴드 '오늘도 맑음'의 기타리스트 이다.


마흔이 넘으면서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행동을 늘 조심했다. 늙어서 누구에게 짐이 되고 싶 지 않아 뭐든 잘하려고 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기대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어른스럽지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사에 애를 썼다. 그게 나잇값이라고 생각했다. 기타를 배우면서도나이만 생각만 했다. 

더 잘하려고 했고, 못하면 속상했다. 그래서 정작 내가 학생인 것도, 선생님이 선생님인 것도 잊고 있던 것이다. 

이게 정말 나잇값 못한 거구나 싶어 내 얼굴이 벌게졌다. 

나이를 떠나 학생으로서 배우고자 하니 긴장도 덜되고 재미있었다.

선생님에게 기타를 배운 지 2년이 되어간다. 선생님은 여전히 따뜻한 분이고, 덕분에 내 실력도 스멀스멀 늘었다. 연주할 수 있는 곡도 꽤 많아졌다.


마흔다섯. 반 아흔의 나이가 되었다.

학생으로서 기타를 배우는 것처럼, 매사를 그렇게 살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꽤괜찮잖아.’ 하며웃어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가르쳐 달라고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재밌어서 기타를 배우는 것처럼 훌륭한 무언가 되지 못하더라도 인생을 재밌게 배우며 살고 싶다. 

늘 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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