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째 생일이 왔다.
초등학생 때 33살은 나이가 엄청 많게 느껴졌는데 막상 되니 그냥 이렇게 33살이 오는구나 싶다. '당신은 이제 어른입니다'라는 선고도 없었다. 난 좋은 어른이 되고 있나?
"대표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33살에 n번째 이직을 한다. 소원을 빌 기회가 오면 항상 빼먹지 않고 있던 소원 중 하나가 이번 직장에서 자리 잡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음 소원은 또 '이번 직장은...'이라는 소원이 있겠지. 이직을 하면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이직한 덕분에 내 커리어는 풍부해졌다고 위안을 삼았다.
회사를 옮겼던 주된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이 직업으로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정쩡한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거나 잘려도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이직할 수 없어서 현 직장에 남아있는 무능력자가 되진 않을까? 퇴직 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치킨집의 한 사람이 되진 않을까? 이런 불안들. 결국 전문성에 대한 문제였다.
또 하나는 여성으로서 회사에 살아남는 것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육아문제가 생길 때 맞벌이 부부 중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아이 돌보는 것까지 소홀히 하면서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있냐는 엄마의 책임감을 물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공무원도 '여자로서'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한다. 왜 여자는 그런 '엄마로서, 여자로서 좋은' 수식어를 벗어버리고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인정을 받고 싶었다. 인정을 받으면 내 자존감은 높아졌다.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들이 나를 긴장시켰다.
이번 직장도 기대보다는 부담이 더 크지만 일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숙해지고 싶다. 좋은 태도가 좋은 결과, 그리고 좋은 어른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