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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May 19. 2024

인생 첫 심리 상담 후기: 기준을 갖고 사는 삶

After counseling: life principles matter

최근 대전에 간 김에 방문한 성심당. 글의 내용과 상관 없음.

최근 힘든 일이 한 번에 몰려서 마음이 참 어려웠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 30대 남성으로서 삶을 살아내는 게 참 벅차다고 느끼곤 했는데, 힘든 일들이 한 번에 몰려오다 보니 무력감도 심해졌다.


나처럼 J 성향이 강한 사람은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때 크나큰 감정의 골짜기에 빠지게 된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됐다. 난 내가 감정으로부터 꽤나 초연하고 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인정욕과 야수성이 강했던 20대 때는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통제하고, 척척 해결해 내곤 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많이 샀었고, 스스로 느끼는 자기 효능감도 제법 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나를 종종 아래로 끌어내리는 여러 안좋은 감정 속에서 많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렇게 된지 좀 됐다.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도 잠기곤 한다.


이런 얘기를 한 지인에게 얘기했더니, 나에게 교회 부설 모 상담센터를 적극 추천해줬다.


난 살면서 상담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고 받을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왠지 이번엔 상담이란 걸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친구 A가 일전에 회사 복지로 상담을 받아본 적 있다는 얘기가 얼핏 떠오르기도 했고.


최근에 먹은 딸기 빙수. 글의 내용과 상관 없음.

그래서 지인이 알려준 상담센터 웹사이트에 들어가 상담을 예약하였고, 상담 당일 시간을 맞춰 센터에 방문하였다. 낡은 3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작은 센터였다.


센터에 들어가 약식 설문을 진행 후 상담사 선생님과 작은 방에서 일대일로 얘기를 시작했다.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보는 타인에게 내 속얘기를 터놓는 상황이었지만 긴장감이나 설렘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이 설문 내용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큰 질문을 던졌고, 난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 놓았다. 중간중간 그는 내 얘길 정리해주며, 나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약간의 코칭을 곁들여 주었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감정이나 사고방식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을 통해 생각을 더 나은 방향으로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상담사가 내 얘기와 문제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제시해주진 않았지만, 상담 과정에서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진 느낌은 들었다.

최근 한 피트니스 사업가랑 점심 먹은 여의도 '세상의 모든 아침'

이날 상담사가 해준 얘기 중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고 유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그간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와 관련해 선택을 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있었는지, 그 기준을 앞으로 계속 고수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바꾸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잠시 생각해보다가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애초에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엄밀한 기준을 갖고서 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한 번 해볼까?'
'이걸 하면 조금 도움되지 않을까?'


이런 얄팍한 생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혹은 그냥 우연히 어떤 기회나 자리가 주어지길래 맡아서 한 경우가 많았다. J라고 하기엔 생각이나 계획을 그리 많이 하진 않았던 것.


어쩌다 보니 인문학 생태계, 디지털 금융 생태계, 사업 생태계에 들어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됐으나, 내가 나만의 '길'을 다지면서 나아간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맞나 싶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뚜렷한 '가치관'과 소신을 갖고서 살아온 사람인가, 아니면 시류에 편승해가며 사는 가벼운 사람인가.

답답해서 동네 맛집에서 한 그릇 때린 야끼니꾸 우동

사실 난 항상 마음속으론 '쓰는 행위'를 통한 사고력 개발, 문해력 증강,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왔다. 알게 모르게 그런 쪽으로 많은 빌드업을 하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글쓰기로 굵직한 상들도 탔고, 신춘문예 등단도 하고, 대치동 유명 논술학원에서 일도 해봤고, 국문과 석사 수료도 하고, 기자로도 일했고, 단독 저서도 집필-출간했으니 그쪽으로 가는 게 나에게 더 맞긴 하다.


그러나 '돈돈'거리는 금융쟁이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자연스레 경제적 실리를 따지기에 급급했고, '쓰기'라는 행위는 돈이 안 될 거란 생각 때문에 내가 가진 재능과 포트폴리오들을 애써 외면해 왔다.


문과 출신이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운 이 디지털 금융 생태계 속에서 들러리로 살면서도 어떻게든 입지를 확보해보려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자기 효능감을 제대로 못 느끼다 보니 괴로움도 컸던 것 같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덧붙였다.


예신 씨는 재능도 많아 보이고, 머리도 빠르게 굴러가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단기적 이득에 눈이 가려져 먼 곳을 잘 보지 못하는 거 같고요.

경제적 실리를 계산하는 행위는 두 번째로 밀어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래 집중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얘기였다.


정말 당연한 말인데, 나는 그 당연한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정말 잘하고 오래 집중할 수 있는 건 따로 있는데, 그걸 어떻게 (사)업으로 풀어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 같다.


혹은 남들 눈치를 보거나 체면을 차리느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번짓수가 틀린 곳에서 계속 헤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상담은 한 회기에 보통 5회 정도로 구성된다고 하는데, 계속 진행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한다. 전문적인 검사가 동반된다고 하는데 좀 더 고민해볼 예정이다.


하지만 한 번의 심리 상담만으로, 내가 나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업'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택해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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