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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Apr 10. 2024

저는요, 기자라는 직업이 제일 부러워요

I think a journalist is the best job

작년에 출간한 책을 핑계로 지난 몇달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원래 알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소개로 연결되어 만난 분들도 꽤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각자의 과거 또는 현재의 직업에 대한 얘기 많이 나누었다.


내가 더이상 기자가 아닌지라, 대체로 다들 나에게 솔직하며 정제되지 않은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특히 각자의 업(주로 전문직 혹은 다수가 선망하는 일)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얘기를 듣다보니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직업은 과연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한번은 강남에서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만났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기관투자자에게 찾아가 주식 매수를 권유하는 영업직이다. 한때 증권가의 꽃이라 불렸고, 연봉 1~2억 원을 가뿐히 넘는 고연봉 직업으로 유명하다. 명문대 경제학, 금융공학, 수학 전공한 친구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 분이 그런 얘길한다.


저는요, 기자라는 직업이 제일 부러워요.

 

이분 왈 "지금이라도 기자 시켜주면 하고 싶어요. 사무실 출근 안 하지, 카페에서 사람들 만나서 재밌는 얘기도 많이 듣지, 맛있는 것도 얻어먹지, 가끔씩 해외 출장도 가지, 그러면서 월급도 받지. 세상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딨어요!".


이어 그는 덧붙였다. "애널리스트가 쓴 보고서는 아무도 안 봐요. 사람들한테 만나달라고 해도 안 만나주고요, 보고서 쓰느라 새벽까지 야근하는 일도 다반사예요. 게다가 요새는 영향력 있는 유튜버들이 웬만한 기업 이슈는 다 커버해줘서, 애널리스트의 필요성이 많이 사라졌어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한때 애널리스트를 꿈꿨던 난 속으로 '오잉?'했다. 어떻게 여의도 증권가 애널리스트처럼 멋지고 좋은 직업이 기자를 부러워할 수 있. 기자는 연봉도 짜고, 매일 빠듯한 기사 마감 맞춰야 하고, 다음날 기사 뭐 쓸지 매일밤 고민해야 하고, 누리꾼한테 기레기라고 욕도 종종 먹는데.


하지만 애널리스트는 상장사를 분석해서 남들이 '와!'하는 멋있는 보고서도 쓰고, 금융사 임직원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세일즈 실력에 따라 연봉도 많이 받고, 다양한 기업체 탐방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 직업인가!


근데 런 푸념을 털어놓은 건 애널리스트뿐만이 아니었다. KPMG 출신의 한 회계사는 내게 그랬다.


회계사의 눈물은 카페인으로 이뤄져 있어요.


감사 시즌에는 주당 100시간씩 일하고 하루에 2~3시간 자는 일이 흔란다. 엑셀을 돌려 'True' 값이 나올 때까지  커피를 물처럼 들이켜가며 잠을 참고 해야 한다고. 그렇게 몸 갈아 넣으며 일하다 보면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오르긴 하는데, 제는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진다 것.

삼일회계법인 건물이 늘 밤늦게까지 환한 이유


그래서 회계사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다. 그는 회계사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CPA 시험에  합격 모두가 선망하는 전문직이 되었으나 짜릿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러면서 창업을 한 나더러 "방향 진짜 잘 잡으신 거다"라고 했다. (뭐라구요?)


개발자는 나에게 그랬다.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 창업이에요.


내가 반농담으로 부트캠프에 들어가서 개발을 배워보 어떻겠냐고 하니 썩소를 지으며 그런 얘길 했다. 이 직업의 미래는 아주 어둡다느니, 연봉도 네 생각보다 적다니, 챗GPT의 등장으로 만한 저-중숙련 개발자는 빠르게 대체될 거라느니 등.


내가 "그래도 개발자가 되면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와 프레임워크와 컴퓨팅 실력으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뚝딱 만들고 시장에 판매해 돈도 벌 수 있지 않느냐, 완전 끌리는 직업인 것 같다"고 했더니, "서비스 개발 실력이랑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건 완전 다른 얘기"라고 딱 잘라 말했다. 


구글 개발자 인터뷰 (출처: 워니코딩)


강남의 한 제조 대기업에서 신사업 기획을 하는 지인도 그랬다.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해 어느덧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좋은 고과를 받아 과장 승진도 했지만, 기회가 unfair하게 주어지는 이 필드에서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타이틀만으로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역전시킬 수는 없겠더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코로나발 비대면 근무 시기에 틈틈이 경제 블로그와 얼굴 없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투자 경험을 담은 2권의 책을 익명으로 쓰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키웠는데 회사 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향력이 커져서 내린 결단이었다.

유튜브 '봉현이형'


SK 계열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친한 형도 생각난다. 그 또한 일이 만족스럽지 않고 지루해서 직장 생활 도중 틈틈이 테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를 1만 명까지 모았다. 이 형은 무슨 깡에서인지 얼굴을 공개하고서 유튜브를 운영했는데, 그 덕분에 이런저런 강의 요청도 오고 출판 기회도 주어져서 요새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꿈꾸는 직업이 있다. 그 직업을 얻으면 내 삶이 만족스러울 거라는 생각에 다들 젊은 시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얻게 된 그 직업은 각자의 정체성이자 가치이자 사회적 어필의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데, 원하는 직업을 얻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만족스러울까?


직업이 일정한 소득과, 명예와, 기회를 제공해줄 순 있겠지만 직업 그 자체가 인간의 삶에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직업은 각 사람의 전문적인 노동의 형태와 방식에 붙여진 사회적 라벨링이고, 거의 대부분의 직업에는 만족/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직업을 가져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애널리스트는 기자가 되기 전까진 기자의 괴로움을 모른다. 인간은 직업이라는 외피 자체로 행복해질 없다. 직업은 그저 거들뿐이다. 직업보다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제일 베스트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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