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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 Nov 20. 2020

어이 아저씨

그 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예전에 살던 집 뒤엔 숲이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숲길을 따라 만든 산책로를 자주 걸었다.


몇 년 전, 그 산책로에 어떤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혼자 산책로를 걷다가 가끔 ‘어-이’, ‘어-이’ 하는 소리를 내 평화로운 산책을 즐기던 동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이렇게 쓰니까 좀 무서운 이야기 같은데 전혀 그런 느낌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 ‘어-이’는 우는 것 같기도, 기도하는 것 같기도, 혹은 부르는 것 같기도 하는 그런 소리였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어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이는 40대 초반쯤. 조금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얼굴도 행색도 보통이었고, 무엇보다 ‘어-이’를 몇 번 하다가 멀쩡하게 산책로 앞에 세워 둔 스쿠터에 올라타 집에 가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몇 달이 지나니 사람들도 익숙해졌는지 어이 아저씨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사람들과의 마주침을 피해 인적이 드문 어두운 숲 길만 골라 다녔기 때문에 안심한 것도 있을 것이다. 가끔 산책로 어딘가에서 ‘어-이’ 소리가 나면 산책 나온 개들만 멍멍 따라 짖었다.


밤의 저녁 산책로 어딘가에서 ‘어-이’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때면 나는 궁금해졌다. 왜 저런 소리를 내면서 저 어두운 길을 걸어다니는 걸까?  


오늘 갑자기 잊고 있던 어이 아저씨 생각이 났다. 이제는 그 ‘어-이’ 소리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사람 속의 어디서 그 소리가 나오는지, 어떤 모양으로 건드려지고 깨져야 그런 소리가 만들어지는지, 얼마큼 참을 수 없어야 그런 소리가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튀어나오는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어이 아저씨는 모습을 감추었다. 더 이상 그 소리가 나오게 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꾼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제 나도 그 동네에 살지 않고, 아주 가끔만 혼자서 그 산책로에 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산책로에 간 날이었다. 어제와 오늘은 나도 어이 아저씨처럼 소리 내고 싶을 정도로 어딘가가 깨져버린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이 아저씨가 아니니까 그냥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어이 아저씨가 이제는 늦은 밤 어이 소리를 낼 필요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젖은 낙엽을 밟으며 생각했다.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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