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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 Dec 13. 2020

1. 보호자 대기실의 밤

몇 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일


몇 년 전 6월, 나는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휴가를 냈다.  


주어진 연차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든 사실 자유지만, 아직 한국의 상사들은 팀원이 휴가 기간에 어디서 뭘 할 것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부산에 놀러 갈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로 휴가 동안 머물렀던 장소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모 대학병원이었다.

휴가 둘째 날 새벽, 나는 어두컴컴한 3층 보호자 대기실의 긴 의자 위에 모로 누워있었다.  


중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경험한 후 알게 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중환자의 보호자는 병원에서 갈 곳 없이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 병동의 환자를 위한 공간에는 보호자용 간이침대나 의자 같은 것들이 마련되어 있다. 일반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공간을 마련할 때 보호자의 공간을 같이 고려한다. 하지만 중환자는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없다. 위중한 상태를 고려해 외부인과의 접촉은 하루에 두 번, 각 30분으로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중환자의 옆에는 보호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쓰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네.


그렇다면 중환자의 보호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일단 중환자실 옆에 붙어있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로 간다.

그곳은 내가 살면서 머물렀던 곳 중 가장 유쾌하지 못한 공간 중 손에 꼽힐 만한 곳이었다.


있으나마나 한 작은 창문이 하나 있고, 방 안에는 긴 의자가 스무 개 정도 놓여있다. 의자의 길이는 키 160 초반인 내가 누웠을 때 무릎을 세워 구부려야 하는 정도. 의자들 위에는 ‘이미 이 의자에는 주인이 있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담요나 옷가지들이 놓여있다.

어떤 의자 위에는 햇반과 컵라면 박스가 쌓여있기도 하다. 처한 상황에 따라 매 번 병원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햇반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실에서는 항상 희미한 음식 냄새가 난다.

다른 한쪽 벽에는 커다란 TV가 있고, 그 아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주무시는 분들을 위해

핸드폰은 매너모드

TV 시청은 7시부터 22시까지


삼삼오오 모여 앉은 보호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주로 불길한) 소식을 공유한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새 환자가 들어오면 복도에서 누군가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소중한 누군가를 중환자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면 서러워지기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대기실은 유쾌하지 못하다 못해 서글픈 공간이지만, 사실 그곳에서 의자 하나를 차지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보호자 수에 비해 의자의 숫자는 턱없이 적었고,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타이밍과 요령이 필요했다. 나처럼 요령 없는 보호자에겐 의자를 차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어떻게든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뻔뻔하게 비어있는 의자에 몸을 누였다. 사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 나는 유발 히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있었다. 짐을 챙겨 나올 때 그냥 손에 잡히는 두꺼운 책을 넣어 왔는데, 그게 <사피엔스>였다. 기계적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갔지만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책을 읽다 흰 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했다.


내가 보호하고 있는 중환자는 우리 아빠였다.

그 날 오전, 아빠는 두 번째 뇌수술을 했다. 첫 번째 수술은 언제였냐고? 두 번째 수술의 열두 시간 전쯤이었다. 즉 24시간 동안 두 번 머리를 열어야 했던 것이다. 첫 번째 수술이 잘 되었지만 우리 아빠에게는 머리 말고도 여러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고, 다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술실에서 나와 경과를 설명해주는 주치의의 안경 렌즈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자잘한 핏방울들이 묻어있었다. 대충 이제는 출혈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렌즈 위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출혈이 멈췄다 해도 보호자가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엄마는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나는 외동딸이라 형제자매가 없다. 그래서 그 날, 그 새벽 나 혼자 그곳에 있게 된 것이다.


흰 벽을 바라볼수록 슬픈 것이 아니라 화가 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아빠를 잃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잃게 될 지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아빠의 어머니에게 좋지 않은 건강을 물려받았다. 아빠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의 형제들의 건강 악화는 마치 미래에 대한 예언 같았다. 몇 년이 지나면 아빠에게도 어김없이 그 단계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몇 천 번 시뮬레이션해 왔다. 결말까지 모조리.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엄마도, 그리고 아빠 자신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그 유전적 불행은 항상 불길한 징조처럼 가족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모계로 유전되는 것이라 나에게는 영향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유전적 불행은 뇌와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24시간 내 뇌 수술을 두 번이나 하게 되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을 늦출 수만 있을 뿐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 상황은 시뮬레이션해 본 적이 없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유전적 불행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우리 모두 좀 더 멋대로 살았어도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어도 상관없었을 거였다. 그 생각을 하니 화가 났다.


부모님은 독실한 카톨릭이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신에게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마음속으로 신을 협박했다. 오늘 밤 그를 데려간다면 평생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미워할 것이라고. 지치지 않고 평생 원망하고 또 원망할 것이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사과 한 알을 먹기 전에도 성호를 긋던 아빠가 안다면 혀를 끌끌 찰 정도로 불경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타오르던 내 분노를 가라앉힌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계시가 아니라, 자리 주인의 등장이었다.

아주머니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당당한 태도로 미뤄 볼 때 의자에 깔려있던 핑크색 담요의 주인이 분명했다. 나는 사죄를 드리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는 나를 아주 딱하게 바라보면서 내가 한 구석으로 치워놓았던 담요를 다시 펼쳤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냈다. 대기실 의자 차지에는 실패했지만 이비인후과 병동 근처에서 최적의 의자(인적이 드문 곳에 있고/콘센트가 1m 거리에 있는)를 찾아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푹신한 침구에 파묻혀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보다는 쾌적한 이비인후과 병동 근처 의자에 누워 비상구의 초록 불빛을 조명삼아 <사피엔스>를 읽고 또 읽었다.


면회시간마다 중환자실에서 더 이상 못 있겠다고 몇 번씩 말해 엄마를 눈물짓게 하고 나의 속을 상하게 하던 아빠는 일주일 만에 일반 병동으로 돌아갔다. 나는 엄마와 교대를 했다. 일반 병동에는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있으니까. 이제 엄마가 아빠를 보호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기나긴 샤워를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옷을 차려입고 소개팅을 하러 갔다. 예전부터 잡혀있던 스케줄이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취소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아니면 취소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압구정동에서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셨다. 평소 아끼는 원피스를 입고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머리도 마음에 들었다. 대학병원과 가족과 유전적 불행과 긴 의자 같은 것은 아주 아득한 다른 세계같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여자애처럼 이야기를 하고 웃고 마셨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나는 내가 지금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로도 몇 년 간 종종 그 날의 소개팅 같은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 친구에게 다른 약속이 있는 척 했지만 사실은 병원에 갔다. 아빠의 검진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도 했다. 지금도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밖에도 여러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사피엔스>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그 책만 읽고 또 읽었는데도.

가끔 다시 읽어볼까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저자 유발 히라리 씨에게는 죄송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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