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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 Dec 15. 2020

2. 슬픈 사람의 적절한 행동

얼만큼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되는데?”

웃자고 한 말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뭔가 말실수를 했나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앞에 앉아있던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넌 어쩜 그런 농담을… 아직 그럴 때 아니잖아.

아빠의 장례식 후 약 삼 개월 뒤에 있었던 일이었다.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며 나의 행동이 종종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연 얼만큼, 어떤 방식으로 슬퍼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먼저 설정해야 할 것은 슬픔의 공유 범위다. 예를 들어 전체 공개 SNS 계정에 장례식 사진을 올리는 것은 공유 범위를 아주 넓게 잡은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이다. 이 정도가 되면 동네 길고양이들까지 그 슬픔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공유 범위가 아주 좁은 사람은 혼자만 슬픔을 안고 있기도 한다.

슬픔을 표현하는 정도 또한 중요한 문제다. 아주 많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은 엉엉 울거나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 다룰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나는 되도록 적게 공유하는 쪽에 있고 싶었다. 조금 표현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내다보니 많이는 표현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에겐 나름대로 버거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굳이 울적한 이야기를 공유해 버거움을 더하는 건 좀 미안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일에 대해 털어놓은 지인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애매하기도 했고. 일로 알던 사람들에게는 작정하고 숨겼다. 일에 있어서는 괜한 배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슬픔의 표현 정도는 어땠을까? 슬픔의 표현 정도는 눈물의 양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슬픔의 표현 방법은 아주 여러 가지인 것 같은데. 누군가는 짜증을 내고, 누군가는 무언가에 이상할 정도로 몰두한다. 아주 많이 먹거나 오래 자는가 하면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전통적이고 알기 쉬운 슬픔의 표현 방식은 눈물인 것이다.  


친구는 말했다. 너 지금처럼 지내면 나중에 분명 무너질 거야. 울어도 돼.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다정한 말을 들어도 나는 누구 앞에서 우는 것이 영 불편했다.

병원 복도에서 엄마도 말했다. 우리 딸은 눈물이 안 나니? 엄마는 자꾸만 눈물이 나.

참 냉정하다. 울지도 않구. 마치 일일드라마의 대사 같은 저 말을 세 번이나 들었다. 너무 클리셰라 사람들이 이런 말을 진짜 하는구나 싶어 놀랐다. 뭐라 대답하기도 좀 그래서 그냥 웃었다. 그러니까 더 냉혈한처럼 보이는 것 같아(안 우는 것도 모자라 웃기까지 하다니!) 조금 후회했지만.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분명 냉정한 면이 있고, 그때 적절히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 정신적으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항상 할 일이 많았다.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인이었고 야근이 많았다. 병원에 가도 할 일이 많았다. 몇 시까지 뭔가를 준비하거나 어디로 가야 했고 설명을 듣고 기억하고 서명해야 했다.


아빠의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생각해 놓은 장례식장에 빈자리가 있는지 급히 알아보고 견적과 평수를 비교해야 했다.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그때도 코로나19로 분위기가 흉흉할 때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증빙서류가 우리보다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하게 해야 했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원무과가 닫혀있어 정산도 번거로웠다. 장례식장에 가서도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온갖 걸 정하다 조문객들에게 바람떡을 내놓을지 콩떡을 내놓을지 선택하는 단계까지 오자 이미 눈물은 바싹 말라버렸다. 둘 중에 뭐가 더 맛있나요. 콩떡이요? 그럼 그걸로 할게요.


시간 부족 외에도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마지막 몇 년간 아빠는 누군가가 울적해하거나 눈물을 흘리면 본인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불안하면 상태가 악화된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날에도 방긋방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는 얼굴로 병실 밖에서부터 흐느끼며 등장하는 친척들을 제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지간하면 슬픔의 표현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어지간하지 않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누굴 붙잡고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평소에 안 그러다 갑자기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규칙을 정했다. (1) 정 울고 싶으면 혼자 있을 때 (2) 정해진 장소에서만.


본가 근처 인적 드문 곳의 어떤 의자를 그 장소로 정했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였다. 본가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거기에 앉아 조금 울었다. 나는 머리가 길다. 누군가 귀신같은 걸로 오해하고 무서워하면 어쩌지 걱정하며 훌쩍였다.


요즘도 종종 거기에 갈 때가 있다.

계기는 의외로 아빠가 아닌 다른 울적한 일들이다. 바꿀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을 때,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로워질 때,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상처 입힐 때,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아빠 생각이 난다. 그러다 보면 울적함은 울적함대로 아빠 생각은 아빠 생각대로 증폭된다. 그렇게 증폭된 감정들이 마음을 채워서 견딜 수 없어지면 그곳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갔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그 의자가 있는 구역이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거리두기 2.5단계로 접어든 이후 의자가 있는 곳은 모두 막은 듯했다. 이유는 이해하지만 당황했다. 저 의자에 앉지 못하면 나는 양껏 슬퍼할 수 없는데.


오래 당황하고 서 있기엔 그날 밤은 너무 추웠다. 귀가 얼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춥지만 공기는 매우 깨끗했고 맑은 밤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겨울의 별들은 유독 밝다. 오리온자리가 어찌나 선명하게 보였는지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찍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자 했던 결심을 접었다. 그 대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밤하늘을 열심히 찍었다. 예상대로 별자리가 화면에 담겨 조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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