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콜릿이 없는 초콜릿 카페
플랜트에서 샐러드를 먹고 한강진 역 근처에 위치한 빈투바 초콜릿 카페 '사유'로 향했다.
중간에 생각보다 센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날도 선선했고 제대로 가을이 왔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실로 오랜만에 초콜릿 카페 탐방이었다. 13년 전 홍대 카카오봄을 시작으로 펼쳐졌던 나의 초콜릿 길 인생을 다시 설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실행에 옮겨볼 생각이다.
카카오빈에서 (from) bean 초콜릿까지 to (chocolate) bar 만들어지는 과정을 개념적 용어로 빈투바 (bean to bar 또는 from bean to bar)라고 한다. 인위적인 첨가물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 상태 그대로 raw ' 재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초콜릿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얼핏 이탈리아 사보이 왕조와 연관이 있나 싶었다. (이미 망한 왕조라서 없겠지만)
사보이아르디 Savoiardi 를 사용했기 때문에 지었겠지.
사유는 생각과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사유하는 공간입니다.
깊은 생각과 사랑을 통해 누구나 변화할 수 있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갑니다.
초콜릿 업계 종사자는 잘 알겠지만, 시설 면에서 이만큼 훌륭한 공간은 국내에 그리 많지 않다. 두 번째 책을 집필하는 기간 동안 사유에서 쇼콜라티에 구인 공고를 본 적이 있는데, 1층 카페에서 근무하려면 몸이 불편한 바리스타와 함께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실제로 사람과의 인본적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곳인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 문제겠지만 어쨌든 슬로건이라던가 브랜딩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옆에 전시되어 있는 향수
사실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는 초콜릿을 직접 맛보고 싶었는데, 매장 리뉴얼 기간이라 맛을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작업실 블라인드 뒤로 힐끔 보이는 셀미 장비들을 보니 수제 초콜릿 카페로서는 꽤나 큰 규모겠구나 싶었다.
초콜릿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5년 사이 초콜릿 규격에서 명시하는 코코아 고형분 함량이 5%나 줄었다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클래식 카카오 / 라즈베리 카카오/ 사보이 티라미수
8.0 / 8.0 / 8.0
초콜릿 음료를 100가지 이상 만들어 본 입장에서, 얼음이나 본연의 맛을 방해하는 크림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맛에 대한 평가는 패스. 티라미수는 재료 본연의 맛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역시 패스. 초콜릿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면 뭔가 쓸 거리가 많았을 텐데 이 아쉬움은 다음 방문까지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