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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3)

2-3. 고급 수제 초콜릿이 어려운 이유

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3. 고급 수제 초콜릿이 어려운 이유


한국에서 고급 수제 초콜릿이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시장 규모나 소비자의 소득 수준 때문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문화적 언어의 부재와 구조적 제약이라는 이중의 벽에서 비롯된다.


언어의 부재

와인에는 ‘테루아(terroir)’라는 문화적 언어가 있다. 특정한 땅과 기후가 빚어낸 포도의 개성을 설명하는 용어이며, 소비자는 이를 통해 맛의 차이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커피에도 ‘플로럴 노트’, ‘시트러스 노트’ 같은 묘사법이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초콜릿에는 이를 뒷받침할 공인된 언어 체계가 부족하다.

소비자는 풍미를 구분할 도구가 없으니 결국 ‘비싸다/싸다’, ‘달다/쓰다’와 같은 이분법적 기준으로만 평가한다. 이러한 언어의 빈곤은 단순한 어휘의 부족이 아니라, 어떤 맛과 경험이 ‘합법적 취향’으로 인정받는가를 규정하는 권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즉, 해석의 언어가 없는 소비는 언제나 단편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초콜릿이 교양적 기호품으로 인정받기보다 단순 간식으로 머무르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부르디외가 말하는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의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상징폭력이란 지배집단의 가치와 규범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회에 스며들어, 피지배 집단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 작용이다.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상징과 의미를 통한 은밀한 지배 방식이다. 결국 소비자가 스스로 ‘초콜릿은 달아야 한다’거나 ‘비싼 초콜릿은 사치다’라는 기준을 당연시하는 순간, 이미 상징폭력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해석의 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형성되는 취향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위계와 문화적 힘이 교묘히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구조적 제약

수제 초콜릿은 유통과 보관이 까다롭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맛과 질감이 쉽게 변질되며, 수공예적 특성상 대량 생산·대량 유통 체계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유통망은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규모의 경제에 적합한 제품만 효율적으로 흐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소량 생산, 빠른 회전율, 맞춤 보관이 필요한 장인의 초콜릿은 이 구조 속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결국 ‘좋은 제품’이 ‘좋은 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체재의 홍수

글로벌 대기업은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다. 값싼 원재료로 만든 제품에 ‘프리미엄 포장’을 입히고, ‘수제 감성’을 마케팅 전략으로 차용한다. 소비자는 이것을 충분히 고급스럽다고 착각하고 만족한다. 실제로는 가격의 상당 부분이 마케팅과 포장 비용일 뿐이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이 과정에서 진짜 수제 초콜릿은 ‘너무 비싼데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제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장인이 수십 시간에 걸쳐 원두를 선별하고 배치를 조율하는 커피나, 포도밭의 테루아를 강조하는 와인과 달리, 초콜릿은 대기업이 만든 가짜 프리미엄이 먼저 소비자 인식의 자리를 선점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장인의 노고와 정교한 공정을 경험해보기 전에 이미 ‘고급 초콜릿=과대포장된 기성품’이라는 인식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대체재의 홍수는 문화적 기준의 왜곡을 초래한다. 본래 고급 수제 초콜릿은 카카오 원산지의 다양성과 발효·로스팅의 차이를 통해 미묘한 풍미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하지만, 시장은 포장 디자인과 광고 문구에 의해 ‘가성비 프리미엄’으로 재편된다. 즉, ‘맛과 품질’이 아니라 ‘마케팅 서사’가 진정한 가치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버린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정작 고급 수제 초콜릿을 접했을 때도 그 특별함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이미 대체재가 구축해 놓은 언어와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기업의 가짜 프리미엄은 단순히 시장을 잠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짜 프리미엄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이는 단순한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언어와 구조적 권력을 둘러싼 전쟁이기도 하다.


문화적 맥락의 단절

1974년 롯데가 ‘가나 초콜릿’을 출시한 이후, 한국 대기업들은 반세기 동안 초콜릿을 제과류 가공품의 범주 안에서만 다루어왔다. 유럽이나 미국이 프리미엄 초콜릿을 하나의 미식 문화로 발전시켜온 동안, 한국 시장은 코코아버터 대신 값싼 팜유를 사용하고, 코코아매스 함량을 높이기보다 ‘코코아 프리퍼레이션’ 같은 대체 성분을 섞어 소비자를 길들였다. 이는 단순한 가격 절감 차원을 넘어, 초콜릿을 ‘값싼 단맛’의 상징으로 고정시킨 문화적 훈육의 과정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시장에서 일시적인 대중성은 얻었을지 몰라도, 브랜드의 역사적 신뢰와 미식적 가치를 축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와인이나 치즈가 세대를 거치며 문화적 자산이 된 것과 달리, 한국의 초콜릿은 미식적 맥락을 잃어버린 채 공산품적 단맛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초콜릿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채 ‘문화적 맥락의 단절’을 겪었고, 이는 한국에서 초콜릿이 하나의 아비투스로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단절은 오늘날 고급 수제 초콜릿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벽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 제품과 장인 초콜릿을 구분할 수 있는 언어와 경험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고급 수제 초콜릿의 가치를 평가할 토대를 상실했다. 다시 말해, 문제는 단순히 가격이나 접근성이 아니라, 축적된 문화적 문법의 부재다. 결국 고급 수제 초콜릿은 자신이 가진 정당한 가치를 설명할 언어와 사회적 인식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언제나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오해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아비투스의 부재

고급 수제 초콜릿이 한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아비투스의 부재다. 와인이나 커피가 교양적 소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제품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하고 즐기는 데 필요한 언어와 경험이 소믈리에와 바리스타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잔을 고르고, 향을 음미하고, 산지와 품종을 이야기하는 습관이 곧 아비투스가 되었고, 그 습관이 다시 시장을 키워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초콜릿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소비자는 오랫동안 대기업이 만든 가공품만 접해왔고, 그것을 ‘초콜릿’이라 받아들였다. ‘가나’로 대표되는 저가형 초콜릿이 대중을 가스라이팅 하는 동안, 카카오 본연의 풍미를 제대로 경험할 기회는 차단되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고급 수제 초콜릿을 마주했을 때도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언어가 없었고, 구별할 경험의 자산도 부족했다. 이로 인해 진짜와 가짜, 장인과 대체재를 식별하는 능력이 자리 잡지 못했다.

아비투스가 부재한 사회에서 고급 수제 초콜릿은 언제나 ‘예외적 경험’으로만 남는다. 누군가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해도, 주변에서 공감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부족하니 그 경험은 개인적 호사로 머물 뿐, 사회적 교양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제는 와인 한 병을 열어두면 주변 사람들 누구나 잔을 기울이며 ‘산도’나 ‘바디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차이가 바로 아비투스의 유무다.

따라서 한국에서 고급 수제 초콜릿의 성장은 단순히 장인이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을 함께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언어 교육,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 그리고 지속적으로 맛을 누적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초콜릿은 혀끝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반복되고 교류될 때 비로소 교양으로 자리 잡는다.

아비투스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된 경험의 축적, 언어의 세련화, 문화적 공감대의 확산을 통해 서서히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한국의 초콜릿 문화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품 개발’을 넘어선, 경험을 설계하고 언어를 심어주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초콜릿은 단순한 기념일의 선물이나 사소한 간식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길러내고 교양을 확장하는 하나의 문화 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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