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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기 (3-1)

3-1. 가성비에서 감성비로 — 효율의 논리를 넘어

by 르쇼콜라 아비투스

3부 -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기

빈투바 초콜릿은 단순한 미각의 발견이 아니라,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사람들은 반짝이는 광택을 보고 감탄했지만, 그 감탄은 단순한 미적 반응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만남이었고, 새로운 경험이 개인의 내면에 스며들어 정체성과 취향의 재구성을 촉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적 충격이 아비투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 개인의 반응을 넘어 사회적 장(field) 속에서 인정받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오늘날의 소비는 대부분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전히 상품의 물질적 효용과 가격이라는 지표에 과도하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위계 구조에서 볼 때, 집단적 기준에 따른 소비에 불과하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동일한 브랜드, 동일한 기호품을 선택함으로써 집단에 소속되려 하지만, 정작 자기만의 아비투스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한다.


소비가 교양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가격·효율·브랜드라는 외적 기준을 넘어, 시간·경험·해석이라는 내적 기준이 개입해야 한다. 가성비에 머무는 소비는 익명성과 대량성을 강화할 뿐이지만, 감성비를 추구하는 소비는 개별성을 드러내고 내적 자본을 형성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비가 공인된 언어와 사회적 승인을 통해 정착할 때 비로소 상징자본으로 전화한다. 즉, 개인의 테이스팅 기록과 감각 훈련이 교양으로 인정받으려면, 이를 평가하고 공유하는 제도·전문가·담론이라는 장(field)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 문제는 이것이다. 소비를 단순한 충족의 행위로 둘 것인가, 아니면 교양으로 승화되는 삶의 실천으로 만들 것인가. 이 물음은 초콜릿이라는 작은 기호품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취향과 정체성을 사회 속에서 구성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더 큰 차원으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는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는 길’을 본격적으로 탐구할 차례다.






3-1. 가성비에서 감성비로 - 효율의 논리를 넘어

소비가 단순히 가격 대비 효율의 문제로 환원될 때 우리는 결국 동일한 기준 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경험과 감각을 중시하는 소비는 각자의 개별성을 드러내고, 삶의 기억과 정체성을 쌓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가성비’는 최우선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IMF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습관을 체득했고, 할인마트와 공동구매, 카드 포인트는 단순한 소비 수단을 넘어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물질적 결핍이 줄어든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제 ‘얼마나 싸게 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나를 만족시키느냐’를 묻는다. 패션에서는 글로벌 명품 대신 자신을 표현해주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주목받고, 식문화에서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감각을 깨우는 테이스팅 경험이 중시되며, 여행에서는 관광지에서의 인증샷보다 작은 마을에서의 한 달 살기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를 가격의 효율에서 개인의 서사와 취향으로 옮겨놓으며, 결과적으로 소비를 교양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전환을 만들어낸다. 감성비라는 개념은 결국 자기 정체성과 기억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소비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감성비의 소비는 ‘경험의 내재화’를 전제로 한다. 가성비 소비가 가격 비교에 의해 평가된다면, 감성비 소비는 나 자신의 내면적 기준, 즉 얼마나 기억에 남고 얼마나 나를 성장시켰는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그렇기에 감성비의 영역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단순히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몇 년 뒤에도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느냐’가 소비의 품질을 가른다.



나는 과거 초콜릿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 원리를 직접 경험했다. 당시 나는 1만 원이 넘는 고가의 초콜릿 음료를 내놓았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이었기에 더욱 파격적인 가격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비싼 음료’를 샀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음료를 준비하는 과정과 원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켜보았고, 직접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 예약을 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단순히 ‘달콤한 음료’가 아니라, 감각의 층위를 세심하게 설계하고, 그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한 잔의 초콜릿 음료였기에 놀랍게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음료를 잊지 못하는 단골 손님들이 존재한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때의 음료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들에게 그 한 잔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삶 속에서 기억되는 감각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경험은 소비가 어떻게 교양적 층위로 격상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가성비에서 감성비로의 전환은 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소비는 더 이상 숫자로 환산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쌓아 올리는 교양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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