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취향 없는 소비, 집단적 기준의 함정
타인의 시선과 집단적 기준에 따라 선택한 소비는 순간의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는 힘은 갖지 못한다. 취향 없는 소비가 반복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이런 질문이 많다.
“여기서 제일 잘 팔리는 게 뭐예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건 어떤 건가요?”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취향 부재의 고백이다. 타인의 선택을 안전장치로 삼는 습관은 실패 없는 소비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자기만의 감각을 키울 기회를 앗아간다.
이 집단적 기준의 뿌리는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 과정과 맞닿아 있다. 빠른 근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정해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라는 기준을 내면화했다. 효율성과 안전을 우선시한 소비 습관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하지 않는 길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개인은 자기만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집단의 안전망 속에서 경험하는 안정, 즉 실패 없는 소비는 결국 무난하지만 공허한 경험을 낳는다. 결국 집단적 소비의 반복은 아비투스의 빈곤을 드러낸다. 이는 초콜릿 소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같은 의례적 행사에 맞춘 집단적 초콜릿 소비는 존재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초콜릿을 고르는 습관은 드물다. 결국 아비투스로서의 축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브리야 사바랭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그가 말한 ‘먹은 음식’은 단순히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에 접근하는 태도를 뜻한다. 같은 초콜릿이라도, 어떤 이는 편의점에서 급하게 집어 들고, 어떤 이는 빈투바 브랜드를 탐색하며 산지를 비교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전혀 다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먹느냐이다. 집단적 기준에 편승해 무난한 소비를 반복하는가, 아니면 시행착오 속에서 자기만의 취향을 길러내는가. 교양은 남이 대신 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타인의 선택을 그대로 복사하는 행위로는 절대 축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초콜릿 한 조각을 고르는 작은 행위조차, 현대인의 교양과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시금석이 된다.
사바랭이 말한 태도는 단순한 음식 선택을 넘어, 사회적 의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프로포즈라는 의례를 보자.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초콜릿 한 상자와 반지 하나면 충분했다. 초콜릿은 ‘달콤한 미래’를, 반지는 ‘평생의 약속’을 상징하는 의례적 도구였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전해졌고, 서로의 눈빛이 가장 큰 증거였다. 또한 초콜릿은 ‘달콤한 사랑을 함께 나누자’는 은유적 상징이기도 했다. 이 역시 집단적 아비투스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소박함이 진정성을 대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프로포즈 문화는 과잉을 향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 그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완벽한 프로포즈’라 하면 5성급 호텔, 화려한 꽃 장식, 명품 반지와 가방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는 사랑을 증명하는 표준 절차처럼 굳어져 있으며, 낭만의 풍경이 아니라 사회가 심어놓은 집단적 아비투스가 작동하는 소비 의례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강요한 시나리오를 그대로 연출한다. 호텔 예약, 명품 구입은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진정성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적 기준에 기댄 서운함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한 선택’이며, 동시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의 연출로 변질된다.
이는 연애와 결혼을 점점 더 계급화된 행위로 고착화시킨다. ‘이 정도 프로포즈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은, 사랑의 진정성보다 물질적 조건을 더 중시하게 만든다. 결국 젊은 세대는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경제적 압박을 체감하고, 연애와 결혼 자체를 회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호텔과 값비싼 명품은 순간의 환상일 뿐, 그 뒤에는 빚과 스트레스, 공허함이 남는다. 취향이 없는 소비는 결국 집단적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고, 그 과정에서 본질은 사라진다. 사랑조차도 두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SNS 속 과시와 경쟁의 무대로 전락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과소비의 단순한 비판을 넘어, 집단적 아비투스가 만든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언어와 취향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용기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명품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장소와 방식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진정한 경험은 보여주기식 과시가 아니라, 두 사람만의 맥락 속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사회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적 경험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