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매일 요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0년 평생을 부모님과 살다가 결혼한 나는, 결혼 전에 요리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외동딸인 나에게 우리 엄마는 요리나 설겆이를 거의 시키지 않았었고, 정말이지 김치찌개 한 번을 안 끓여보고 살았다. 그래도 결혼하고 나니 신랑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쯤은 장도 보고 식사를 만들어 먹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부추 삼겹살 볶음 같은 난이도 낮은(어떻게 해도 대충 맛있게 되는) 요리도 해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게 된 것은 첫 아이의 이유식을 준비하면서부터다.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나는 세간에 떠도는 이유식 블로그에서 식단표와 레시피를 다운받아 그대로 했다. 처음엔 3일에 한 번 만들면 되던 이유식 사이클은 아이가 점점 많이 먹게 되면서 곧 이틀에 한 번, 하루에 한 번으로 빨라졌고, 급기야 유아식에 들어가면서 하루 세 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모든 것이 서툰 새댁이었던 나에게 하루 세 끼는 정말이지 투 머치였다. '삼식이 세끼'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실감했다. 하루 종일 밥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허덕이면서 고작 돌쟁이 아이 1명이 먹을 이유식을 만든 후 남는 식재료를 제대로 소진할 능력이 나에겐 없었고, 못 쓰고 버리는 재료들로 냉장고는 터져나갔다. ([냉장고를 부탁해]글 참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 아이는 먹을 수 있는 것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매일같이 새로운 맛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고, 나는 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면서 왜 이걸 하고 있나.. 대체 왜 이유식을 사먹이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후회했다. 다시 돌아가게 되면 무.조.건. 사먹이리라!!!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사먹일까?
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데 ‘이유식’이라는 상품은 재료는 정말 조금 들어갈지언정 그 재료의 위생과 안전성(원산지, 무농약, 유기농 여부 등등)을 필요로 하고, 만드는 이의 시간과 정성까지 구매하는 개념인 데다, 판매처가 많지 않아 초과수요인 재화이다. 그래서 내가 만들면 한 끼에 500원정도면 만들 수 있는 것을 시중에서는 약 10배로 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처음부터 사먹이는 상태였으면 나는 그것이 한 끼에 얼마든 기꺼이 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어영부영 이유식의 세계에 들어와 집에 이유식 조리도구들과 기본 재료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사먹이자니 각종 구매한 조리도구들이 아깝고 지금까지의 노력 또한 아깝게 느껴졌다. 이 쪼끄만 아이에게 200ml 먹이는 데 5천원을 낸다는 것이 길에 버리는 돈 같이 느껴지지 뭔가. 한편으론 휴직해서 수입도 없는데, 노동력이라도 써야 조금이나마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첫 아이의 이유식 이후 유아식까지 내 손으로 계속했고, 이후 27개월 터울로 둘째가 태어나서 이유식 시기에 접어들면서는 '둘째는 무조건 사먹이겠다'는 이전의 다짐을 상기시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앞서 언급한 유사한 이유로 결국 사먹이지 못했다. (둘째 해먹일 때의 생각: '에잇 어차피 첫째 밥 해줘야 하는데 그 재료 쪼끔 떼어서 그냥 하고 말지...') 그렇게 둘째도 이유식부터 유아식까지 모두 직접 해먹였다는 슬픈 이야기.
Life Goes On.
그렇게 시간이 차곡 차곡 쌓여 갔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최소한 점심 한 끼는 기관의 균형잡힌 식단으로 먹일 수 있음에 안도했다. 회사에 복직한 이후 하원 이모님이 계셨어도 저녁은 매일 직접 했고, 허둥대고 늦을 때도 많았지만 그런 날들도 결국 아이들은 내가 만든 밥을 먹었다. 애가 둘이 되니 이상하게 하나일 때 보다 잘 해먹고 살았다. 먹을 사람이 늘어나니 책임감이 늘어나기도 했고, 한 번 요리를 하면 3~4명이 먹으니 효율이 좋기도 했고, 그 동안 나도 좀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계속 밥을 했던 건 (아직도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희생하게 되는 마음, 모성애 때문 아니었을까. 겨우 다섯 살, 두 살인 나의 아이들을 인스턴트와 배달음식으로 살찌울 수 없다는 생각에 근본 없는 요리실력으로도 이것저것 하게 되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해준 음식을 잘 먹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는 첫째, 아직 말은 못해도 먹는 양으로 맛있음을 표현하는 둘째를 보는 것은 큰 뿌듯함이자 보람이었다.
그러던 중, 매일 이렇게 음식을 하는 게 나로서는 굉장히 의지와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임에도 이것이 그저 주부의 흔한 일상으로 평가되는 것이 왠지 아쉬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학원을 등록했고 곧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조리사 자격증의 여부는 요리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 이후 아이들 먹일 밥을 할 때에도 괜히 자신감이 붙었다. 조리사 자격증은 내가 하는 이 매일의 굴레가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명분을 추가해 주었다. 매일의 과업이 조금은 덜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요리하는 이유
아이들이 7살, 4살이 된 요즘도 퇴근하고 요리를 한다. 아이들을 하원시켜 와서 급히 밥을 올리고 식재료를 해동하고 칼질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물론 어떤 날은 냉동해 놓은 리조또 데워 줄 때도 있고, 마트에서 사온 즉석식품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어보면 엄마의 파스타, 엄마의 카레, 엄마의 계란말이. 아아, 사실 이제는 그만할 수 있는 방법을 아예 모르겠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커서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다가 문득 엄마밥이 먹고 싶어 찾아올 생각을 하니 눈가가 시큰거린다. 네가 아무리 커다래져도 익숙한 맛의 밥 한그릇 앞에서는 나의 작은 소녀이기를.
너에게도 평생 그게 위안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