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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ul 06. 2023

워킹맘,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유연근무제 1년 반 동안의 응축된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은 한아름인데
한 마디 꺼내놓기가 힘들다.


복직 후 초반에는 하원도우미 이모님이 계셨다. 긴 스토리 끝에 6개월만에 이모님과 바이바이한 이후, 나의 하루는 조금도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7시 출근-4시 퇴근하는 유연근무를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등원하고 내가 하원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기상 시간은 매일 6시.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야근을 절대 할 수 없으니 딴짓은 커녕 화장실도 참으며 일했다. 그럼에도 부서 공통업무나 사소한 디테일들은 놓치기 일쑤였다. 4시에 사무실에서 퇴근하여 육아현장으로 다시 복귀하면, 그 이후 스케줄은 이러했다.

* 4:40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 4:50 첫째를 셔틀에서 받아서 집에 온다.

* 5:00 아이들을 씻기고, 간식을 주고, 숙제를 시킨다.

* 6:00 저녁을 차리고 먹는다.

* 7:00 (그릇은 설겆이통에 채 넣지도 못하고) 책을 읽어 주거나 숙제 검토를 해준다.

* 7:30 아이들이 밥도 일찍 먹고 숙제도 다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30분 정도 TV를 틀 수 있다. 그때 나는 보통 설겆이를 한다. 티비가 끝나면 다시 보드게임, 종이접기, 블럭놀이, 역할놀이 등을 함께한다.

* 9:00 잠옷으로 갈아입고 양치를 시킨다.

* 9:30 자기 전 한두 개의 책을 더 읽어 주고, 비로소 침대에 들어간다.


나는 보통 아이들과 함께, 혹은 아이들보다 먼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들 가방과 준비물을 챙기고 내일 입을 옷을 정해서 올려놓고, 전혀 건드리지 못해서 난장판인 집을 대강 정리하고 다시 잤다. 만약 아까 설겆이를 못 했다면 그것도 밤에 한다. 그리 가까이 살지 않는 양가 부모님은 내가 중요한 회의나 행사로 인해 부득이 4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날에만 한달에 두어 번 와주셨다.


어느 출근길. 겨울의 새벽 6시 반은 깜깜하고 춥다.


이 고단함과 정신없음도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려니, 적응되면 분명 여유가 생기려니 하면서 애써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최소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겠지 하는 기대 하나로 1년 반을 살았다. 그런데 막상 지난 1년 반 동안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은 “나 이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뿐…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필요했다. 그러나 육체의 힘듦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게 분명한 상황에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일이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재미까지 없었으면 벌써 진작에 관뒀을 테니까. 전부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퇴로를 만들지 않은 채 그저 그만두는 것이 스스로에게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목적을 모른 채, 그다지 인간답지 않은 삶을 일단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찰나의 여유들은 있었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준비하기가 어려웠다. 연차는 아이들의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 혹은 아이들이 아프거나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 영유아 검진이 있는 날을 위해 남겨놔야 했다. 온전히 나만의 휴식을 위한 연차는 쉽지 않았다. 괜히 연차를 썼다가 나중에 또 갑자기 아이들 때문에 쉬어야 하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자기계발이나 대학원 등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복직하니 육아서적 한 권 읽는 것도 시간이 안 났다. 기록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았으련만, ‘힘들다‘, ’쉬고 싶다‘가 지배적인 나의 마음이 어쩐지.. 창피했다. 일도 양육도 척척 해내는 멋짐 폭발 워킹맘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아니면 글로 써 버리면 그 감정에 더욱 휩싸여 버릴 것이 두려웠는지, 힘들다는 내용을 글로 남기기 싫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시간'이 정말 없었다. 수면 아래 있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서 글로 풀어가기에, 육퇴 후 비로소 찾아오는 나의 유일한 자유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어쩌다 밤에 영화 한 편 보면서도 내일 새벽 6시에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항상 압박당했고, 루틴한 집안일의 과업은 항상 산재해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살찌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였다. 속에 담긴 건 한아름이어도 한 마디 꺼내놓기가 힘들었던 이유. 지금 그간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풀어놓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 낳고 처음 맞닥뜨린 수많은 막막한 상황에서 이만큼이나마 프로 엄마로 진화하고 적응한 경험은 내 자신감의 기반이었고 이번에도 곧 적응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절대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좀 익숙해지면 해야지, 나아지면 해야지 했더니 단 한 문단의 글조차 쓸 수 없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후회한다. 뭐라도 했다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변화했을 텐데. 나를 위한 거의 모든 것(운동, 교육, 피부관리, 쇼핑 등등..)이 지나친 사치로 느껴지는 마음을 누르고 움직였어야 했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존엄과 정신적 건강을 위해, 수면 이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선물해야겠다. 그것에 대한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니,


그럼 일단 운동부터 시작하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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