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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미술관, 교육기관인가 키즈카페인가.

by Leading Lady

양육자란 항상 피곤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예술을 감상하는 것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지요. 예술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술관에 직접 가기엔 정신적, 육체적으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날들이 있습니다. 양육자로서 고백하건대, 그런 날 아이를 잠시 맡기고 싶은 마음에 '어린이 대상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미술관이 고급 교육기관과 키즈카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지요.



고급 교육기관인가, 키즈카페인가: 변화하는 미술관의 역할

최근 전시장에서 '어린이'라는 키워드는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별도의 어린이 전시실을 마련하고, 전시와 연계된 다채로운 키즈 클래스를 운영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풍경이 되었죠. 대형 미술관의 경우 자체 교육팀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자체 개발이 어려운 대다수의 전시들에서는 키즈 클래스 개발 업체와 외주 계약을 맺고 클래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 시대 부모들이 인식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더 이상 유물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아카이브 역할을 넘어, '내 아이를 위한 특별 교육기관'에 가까워졌습니다. '미술관과 미술학원', '미술관과 키즈카페'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있죠.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관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터전으로 포지셔닝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모의 지갑을 열게 하는 사교육의 욕망을 미술관이 영리하게 공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윤리적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미술관에서 사교육 시장의 논리에 따라 회당 6~8만원에 이르는 소수정예 클래스를 모집할 때, 혹시 그것이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지식과 체험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미술관의 사회적 책무와 배치되지는 않는 것일까요?


최근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키즈 도슨트와 클래스를 운영합니다. 사진은 아이 5세 때의 참여 장면.


전시 연계 클래스의 양면

아이를 어떤 수업에 들여보내고 홀로 남겨졌을 때, 저는 종종 자문하곤 합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걸 해봤다면 어땠을까?' 아이의 입장에서 전시 연계 클래스의 시간은 어땠을까요? 선생님의 작품 설명을 듣고 그림도 그려 보는 것이 신선했을까요, 아니면 동네 미술학원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요? 혹은 이 새로운 공간을 엄마와 함께 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제 아이들의 경우 이것의 답은 늘 가장 후자였습니다. 키즈 클래스의 전시 설명은 도슨트 선생님에 따라 편차가 컸고, 연계된 창작활동의 시간은 짧았습니다. 예술을 보고 어떤 감흥을 느끼려면 '개인화'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감상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전문적 지식 여부를 떠나 아이의 경험과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엄마가 가장 훌륭한 도슨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 충분히 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이 클래스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아이가 클래스에 간다고 예술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 한몸 휴식을 위해 아이를 분리시키는 것에 대해 어쩐지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경험이라고 위안합니다.


전시 연계는 클래스보다는 대화로.

어쨌든 미술관의 이러한 변화는 제가 전시장에 발 한번 들여놓지 않아도 아이에게 미술관 교육을 시켜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미술관 안에서 성인 공간과 어린이 공간이 더욱 뚜렷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른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환영받지 못하듯이, 마찬가지로 아이의 공간에서 어른은 방황하게 됩니다. 사실 어떤 어린이 전시는 성인이 보기에도 놀랍도록 깊은 사유의 여지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키즈카페를 연상시키는 공간에 기꺼이 발걸음을 옮기는 어른은 드물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의 실마리를 안겨준 의외의 공간이 있었습니다다. 바로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어린이 전시실입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유현미 작가의 <소프트 카오스: 공간 상상>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흔히 ‘어린이용’이라 표현되는 귀여운 그래픽 대신, 3차원 도형과 사물들을 2차원으로 변환하는 실험을 통해 시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탐구하는 진지한 컨템포러리 전시였죠. 놀라웠던 건 작품 자체는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아트이지만 그저 작품과 캡션의 위치가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맞춰져 있고, 구어체로 된 전시가이드를 제공하고, 신발을 벗고 편안히 관람하게 하는 등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배려가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23개월 아이는 놀랍도록 쉽게 경계를 허물고 작품과 교감했습니다. 그날 아이가 예상 외로 깊게 몰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 너무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앉아서, 서서, 전시장 중앙부부터 코너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소프트 카오스: 공간 상상> 전 관람 중인 23개월의 아이.


유연한 공존, 모두를 위한 환대를 꿈꾸며.

그날의 경험은 제게 '아이를 위한 공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유연한 공존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아이와 어른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하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아닌, 서로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제 아이가 방문하는 미술관에 바라는 것은, 제가 그곳에 갈 때 기대하는 바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 전용 공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미술관 안에서만큼은 충분히 환대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이후 북서울시립에 종종 갔다. 신미경 작가의 <투명하고 향기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좌), 멜라니 보나요 작가의 <터치미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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