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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Oct 04. 2019

새 어린이집 적응기

장장 두달여간의 이야기이다

고심 끝에 21개월 소율이의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기존에 다니고 있던 가정형 어린이집은 집과 가까워서 등하원이 아주 편했고 아이도 편하게 느끼는 듯 했다. 다만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활동적인 소율이의 기질상 점점 답답해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어 내년 쯤에는 좀더 넓은 곳으로 다니고 싶어하던 차였다. 새로 입소 연락을 받은 어린이집은 국공립이었는데 상담을 가보니 넓은 공간에 쾌적했고 놀이감들도 잘 관리되고 있어 보였다. 화장실도 보육실 안에 위치해 있어 곧 배변훈련을 본격 시작할 아이가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대를 갖고 옮긴 곳에서, 생각지 못한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1. 전학가는 아이

소율이는 겁은 좀 있어도 소심하거나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또래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꽤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어딜 가나 잘 적응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나는 '내 딸이 적응을 힘들어 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소율이는 새 공간, 새 친구들, 새 선생님과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 놀이감이 가득한 보육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거기에 가겠다며 울먹였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는 눈만 마주쳐도 울거나 저리 가라고 매몰차게 손을 쳐냈고, 어쩌다 길에서라도 지난번 선생님을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반가워했다.


그제서야 내가 소율이의 사회성 발달 정도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해서 선생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몰랐다. 나는 몰랐지만 21개월 소율이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본인이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을 구별하고 있었다. 내가 '답답함'을 느낄 거라고 판단했던 작은 공간은 동시에 소율이에게 '편안함'을 함께 주고 있던 것이었다. 소율이는 내 생각보다 같은 반 친구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베개를 좋아하는 친구한테는 베개를 자꾸 갖다 주었고, 자꾸 뛰어다니는 친구 옆에는 정신 사나운지 잘 안가려고 했고, 자기보다 조금 어리고 부끄럼 많은 친구한테는 뭔갈 뺏기도 했지만 곧잘 양보하기도 했다. 그것은 자기가 그 어린이집에서 지내면서 터득한 나름의 생활의 지혜이자 방식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소율이는 그 모든 걸 다시 파악해야 했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 피곤한 일이었다. 그 동안 자기가 노력해서 익숙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갑자기 어느 날 다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미 아이들 사이에는 자기들만의 규칙과 상호작용 방식이 존재했고, 중간에 합류하는 아이가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기는 더 피곤한 일이었다. 파악해야 할 공간은 기존에 다니던 곳에 비해 한없이 넓기만 했다. 그래서 소율이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자기가 익숙한 존재인 '엄마'에게 집착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할 때 보다도 이번의 적응 기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전학 가던 날이 생각났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나를 보던 눈빛이, 그 틈 어딘가에 쭈뼛거리며 앉아서 책을 펴던 것이, 조용히 점심을 먹던 것이, 쉬는 시간 누군가가 나에게 말 걸어주길 기다리던 것이. 이미 돌이킬 순 없는 상황이고 아이도 결국 또 새로운 곳이 익숙해져서 편하게 지내게 될 것을 알지만, 내가 더 좋은 놀이감과 더 쾌적한 시설만을 생각하고 막상 아이가 겪을 낯설음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미안했다.

적응 2주차, 아무리 낯설어도 생일파티는 좋아하는 소율.



#2. 부탁이야, 우리 애 때리지 말아주라..

그런데 실상은 우리 아이만 새로운 곳에 간 것이 아니라, 기존 친구들에게도 우리 아이가 새로운 변수인 것이었다. 소율이와 같은 반의 한 질투 많은 아이는, 자기를 곧잘 챙겨주던 선생님이 새로 온 소율이를 더 챙기는 걸 보자 그게 심통이 나서 소율이를 자꾸만 꼬집었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등원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부모참여 수업을 갔던 날, 그 강도가 더 심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애가 내 애를 있는 힘껏 꼬집는 장면을 직접 보니 정말 내가 다 아팠다. 실제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그 시각 11시 반이었는데 하원할 때 까지도 얼굴이 뻘겋게 부어 있는 건 정말 화가 났다. 내가 이 정도인데 소율이는 얼마나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그날 집에 와서 "오늘 S가 소율이한테 어떻게 했어?"라고 묻자 소율이는 밀치고 꼬집는 시늉을 했다. 다 알고 다 기억하는 아기. S가 그러는 행동은 정말 나쁜 행동이라고,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울고 소리치고 선생님한테 가서 말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네가 S랑 놀기 싫다면 그애가 다가오면 그냥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장난감 가지고 놀라고. 굳이 싫어하는 친구랑 같이 있을 필요 없다고. 소율이는 전에 없이 진지하게 내 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고 내 눈을 계속 바라보았고 응응 대답을 했다. 다른 장난감 가지고 놀으라고 했을 땐 자기가 굳이 왜 그래야 하냐는 듯 "내꺼야" 라고 하기도 했다.


결국 아빠까지 나서서 어린이집 원장님과 담임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했고 좀더 잘 지켜봐 달라는 당부를 드렸다. S의 엄마 또한 전화를 주셔서 잘 지도하겠다고 했다. 이후 현재까지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최대한 차단하는 방식으로 보육이 진행되는 것 같다. 아직은 이성보단 본능에 이끌려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하루빨리 둘만의 안전한 공존 방식을 찾아 가길 바랄 뿐이다.  



#3. 기저귀, 익숙했던 것과의 이별

20개월 즈음부터 소율이는 촉감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싫어했고 소매나 목 부분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옷은 안 입으려 했고 조금만 가려워도 피가 나도록 벅벅 긁어댔다. 마침 여름이라 편한 소재 옷으로 입히고 기저귀도 많이 벗겨 놓았더니 소율이는 유아변기에서 쉬와 응가를 곧잘 했다. 그래도 어린이집에서의 배변훈련은 조금 나중에 할 거라 생각했는데, 소율이가 어린이집에서도 기저귀를 입기 싫어하자 선생님은 배변을 한번 시작해 보자고 하셨다. 어린이집 다닌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처음 하루이틀은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소율이는 어린이집에서 하루종일 대소변을 아예 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하원하는 길에 들른 빵집에서 소율이는 한강물이 되도록 주르르 바닥에 쉬를 했다. 그 동안 참은 것이 분명한 양.. 도대체 왜,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아기가 6시간 동안이나 쉬를 참았을까, 너무나 안타깝고 슬퍼졌다. 바뀐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괜히 아이를 더 스트레스받게 하는 걸까. 배변훈련 중단하는 게 맞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아직 배변훈련 초기이고 아무래도 아이들이 긴장하고 있을 땐 안하다가 긴장이 풀리면 자기도 모르게 나오기도 한다면서, 아직은 중단하지 말고 지켜보자고 했다. 그 뒤로 선생님도 더 신경써 주신 것인지 소율이는 꽤 성공적으로 어린이집 변기에서 쉬를 했다. 물론 몇 번은 바지를 적시기도 했지만. 아직 완전히 정착하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빨래는 늘어났지만 그래도 소율이가 하루종일 쉬를 참고 오는 것 보다 옷을 적시고 오는 게 훨씬 마음이 좋다.


어린이집 부모참여수업. 엄마와 함께하면 뭐든지 마냥 좋은 아이.


두 달이 지났고 많은 것이 안정되었다. 소율이는 아직도 어린이집이 아주 편한 것 같진 않고 적응 중인 느낌이다. 이럴 거면 어린이집을 왜 바꿨나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린이집 전학과 같은 시기에 소율이는 재접근기를 함께 겪었고, 엄마의 배가 본격 불러오기 시작했고, 날 때부터 차 왔던 기저귀와도 차츰 헤어지게 되었다. 동시에 말이 아주 많이 늘었고 감정도 표정도 섬세하고 풍부해졌다. 이전 어린이집 앞을 지날 때면 이제는 들어가겠다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여기, 엄마 안녕안녕’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그 곳에 다닐 때 엄마랑 인사하고 다녔다면서 과거 일을 얘기하듯 말한다. 어쩌면 지금 겪는 모든 것이 그냥 아이의 발달 과정을 지나면서 언젠가는 마주칠 난관들인지도 모르겠다. 갓난아기의 태를 한 꺼풀 벗고 많은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기를 소율이가 잘 겪어 내기를, 그리고는 이 모든 힘겨움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마치 언제 자기가 그런 코흘리개 시절이 있었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


괜찮아 우리 아가야. 엄마랑 아빠랑 멍멍이가 많이 도와 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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