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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Oct 04. 2019

애 셋은 낳아야 한다고요?

우리 할머니도 그런 말씀은 안하시는데요.

나의 할머니는 똑똑한 소녀였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의 지원에 힘입어 그녀는 열심히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같은 과 동기 중 여자는 할머니 한 명 뿐이었다. 설레는 대학 생활도 잠시, 곧 여러 곳에서 혼담이 오고갔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면 최고 명문대에 입학한 여학생들이 학력을 수단삼아 결혼을 목표로 하는 내용이 나온다. 1950년대 미국이 그러했는데 우리나라는 오죽했을까. 당시 대다수 여대생들은 학창 시절 결혼을 했다. 그녀의 친구들과 선배들 중 졸업할 때 까지 시집을 못 가는 경우는 아주 박색인 경우 뿐이었다고 했다. 타고난 미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여자로 낙인찍히기도 싫었던 그녀는 대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와 결혼을 했고 곧 나의 아버지를 낳았다. 1년이 지나고 이제 복학해야지 하던 차 작은아버지가 생겼고 또 셋째 작은아버지가 생겼고.. 그녀는 그렇게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한때 전국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여대생은 아이 넷을 낳은 엄마가 되었고 평생 주부의 삶을 살았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무럭무럭 커서 어느덧 다들 시집장가를 갔다. 우리 아빠는 장손이었지만 할머니는 우리 아빠와 엄마에게 아들을 낳아야 한다거나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외동딸로 자라났다.

올해 서른 넷이 된 나는 지금 예쁜 딸 소율이를 낳고 휴직중이다. 그리고 뱃속에 둘째 아이를 품고 있다. 언니 있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던 나는 둘째 역시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소율이의 인생에 가장 값진 선물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참 기뻤다. 여든이 훌쩍 넘으셨지만 아직 정정하신 나의 할머니는 내가 생후 18개월이 될 때까지 나를 키워주셨는데 요즘 나에게 “직접 해보니 18개월까지 키워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겠지?”라며 까마득한 손녀와 육아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하신다. 나는 그런 우리 할머니가 좀 귀엽다. 할머니는 나 말고도 나의 다른 사촌들도 꽤 오랫동안 키워주셨다.

만약 그녀가 학업을 마쳤다면 지금과 아주 다른 삶을 살았을까? 어쩌면 그 편이 훨씬 멋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자식들을 낳아 키우고, 일하는 며느리들 대신 손주들까지도 모두 키워주신 할머니의 삶은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주류였고 표본이었다. 심지어 대다수의 엘리트 여성에게도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대학을 마치지 못해 아쉬웠겠지만 또한 잘 자란 자식들을 보며 분명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뿌듯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라면 ‘여성으로서 본인의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도 꽤 의미있다’고 후대에게 조언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는 물론 나의 어머니에게도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저 아기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무척 잘 알게 된 나에게 그녀 본인의 예전 수고를 얘기하며 나름의 생색을 내는 것 정도가 그녀가 하는 최대한의 꼰대짓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추석 즈음, 우리 할머니와 동년배 쯤으로 보이는 어떤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그 할머니와 생판 초면이었다. 그녀는 나와 남편, 내 시부모님까지 함께 있는 앞에서 내 뱃속 아기의 성별을 묻고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 ‘애가 셋은 있어야 한다’ 말을 했다. 그녀는 본인 자녀가 셋이라고 말하며 추석 전날엔 큰딸이 오고 추석 당일엔 아들네가 오고 다음날엔 작은딸네가 온다고 우쭐거렸다.

본인 인생의 협소한 선택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것을 어른의 조언이라고 믿으며 내뱉은 말들이란 얼마나 무례하고 편협한 것인가.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시부모님 앞이라 그냥 흘려버리고 무시하자 싶던 그 순간, 문득 나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 거다. 만약 내가 우리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내가 걷지 않은 길이 아쉬워서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더 가치있는 삶이었다고 합리화하지 않았을까. 그 때문에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고 특히 나이가 든 지금은 더욱 더 든든하다고 위안하며 남에게 떠벌릴 만도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지금 세상에 애 둘 낳는 사람한테 셋째는 아들 낳으라고 하다니 정녕 미친 건가’ 하면서 나는 그 할머니를 잔뜩 욕했지만, 동시에 본인이 했던 선택을 합리화면서 그 선택에 매몰되지 않는 삶이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요하는 것임을 느꼈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보고싶어졌다. 나는 지금 좋은 선택들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나 또한 아이를 한둘쯤 낳고 사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삶의 선택들에 책임을 지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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