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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Sep 10. 2019

둘찌, 당연하게 여겨 미안해.

두 번째건 열 번째건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것을

둘째가 생겼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큰 충격에 휩싸였던 첫째 임신 때에 비해, 둘째의 소식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마치 스며들듯 전해졌다. 조금은 얼떨떨하고, 그러나 대단히 놀랄 것은 없는,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는 소식. 물론 막상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겠지만 현재 상태에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하여 필요한 것들을 담담하게 생각하는 것 정도였달까.


두 번째 임신, 병원 가기도 귀찮았다.

예전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산부인과도 두 번째가 되니 자꾸 미루게 되었다. 테스터기로 두 줄을 확인한 지 무려 일주일 후에나 병원에 갔고, 처음에 갔을 때 아기집만 보여서 아기 확인하러 1주일 후에 오라는 것도 굳이 2주 후로 예약해서 갔고(심장소리까지 한 방에 들을 심산으로..), 초음파 동영상 녹화도 유료 서비스이길래 그냥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태어나면 찍을 동영상이 얼마나 많은데 뭘 초음파 동영상까지 저장하냐며. 요즘 들어 점점 말이 늘고 예뻐지는 동시에 고집이 세어지는 소율이와 실랑이하기 바쁜 탓에 둘째는 뱃속에 있다는 사실도 자꾸만 잊기 마련이었다. 소율이를 가졌을 땐 시장바구니 하나 드는 것도 꺼려했는데 지금은 14키로에 육박하는 짐(소율)을 수시로 들었고 쪼그려 앉거나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말 고마운 것은 그 와중에도 둘째 녀석은 주수에 맞춰 잘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


기형아 검사도 1, 2차 검사 중 보건소에서 지원되는 2차 쿼드검사만 예약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왔다. 첫째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경험과, '설마 기형아겠어' 하는 마음과, 설령 기형아라도 이미 16주가 넘었는데 뭐 도리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그리고 일주일 후 결과를 받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다운증후군 확률 1:12, 에드워드증후군 확률 1:150로 고위험군입니다. 염색체 검사가 요구됩니다.] 라고 씌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몇 번이나 끔뻑이며 결과지를 정독했다.


황급히 병원 예약을 잡았다. 단순 기형아 고위험군을 떠나 태아가 발생시키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와 afp(간수치)가 현저하게 낮아져 있었다. 그런 경우 태아가 손실되었을 수도 있고 자궁에 질병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왕 아기를 가질 거 더 차분하게 계획하고 엽산도 더 오래 꾸준히 챙겨먹고 임신 전에도 맥주 같은 건 먹지 말걸. 첫째 케어한다는 핑계로 태교는 커녕 매번 힘든 몸상태였던 것도 미안했다. 심지어 아이디어만 몇개 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둘째의 태명을 지어주지 못했는데 그게 참 마음에 걸렸다. 정말 만약에 혹시나 기형아 판정을 받고 선택유산을 하게 되면 이름도 없이 떠나보내게 되는 건가.. 아니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네게 죄다. 둘찌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염색체 검사, 그것만이 내 희망..

예약이 꽉 찬 탓에 6일이나 지난 후에 만날 수 있었던 의사 선생님은 결과 수치를 보더니 무척 의아해하며 본인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일단 초음파상으로 아기는 잘 크고 있었고 우리는 양수검사를 예약했다. 그냥 피검사 정도일 줄 알았던 양수검사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가 여러 번의 소독과 초음파 끝에 이루어졌다. 양수를 뽑아내느라 바늘로 찔린 배가 욱신욱신 아팠고 하루종일 배가 수축되어 허리를 제대로 피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통보받은 염색체 검사 결과는 정상... 정상이었다! 아... 첫째를 등원시키고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긴 탓에 신이 벌을 주셨구나. 고작 두번째 임신인 주제에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여겼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기형아 검사 같은 건 산모의 불안감을 미끼로 한 병원의 상술이라고 냉소했던 나는 얼마나 거만했던가. 다운증후군이 아닐 확률이 무려 12배 높다는 결과를 받고도 손을 덜덜 떨 거였으면서. 양수검사 결과가 무슨 신의 계시라도 되는 양 오매불망 기다릴 거였으면서. 그리고는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할 거였으면서.


당연하게 여겨 미안해.

아무튼, 쉬운 건 없다. 생명이 탄생하는 그 어떤 과정도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둘째의 태명은 율동이로 지었다. ‘소율이 동생’이라는 뜻도 있고, 뱃속에서 유난히 꼬물꼬물 잘 움직이는 게 마치 요즘 자꾸 듣게 되는 동요들에 맞춰 자기도 율동하는 것 같아서. 처음으로 ’둘째’가 아닌 무려 태명으로 부르려니까 어쩐지 어색한 나는 정말이지 무심한 엄마가 아니었나 싶다. 너무 늦게 불러줘서 미안하다, 율동아. 소중한 율동아. 아마도 너와 닮았을 가족 세 명이 손꼽아 기다리는 율동아. 우리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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