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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May 19. 2020

둘째의 탄생, 위태로운 동거

4인 가족 100일간의 기록

어색했던 첫 만남의 순간도 어느덧 희미해졌다. 이제 소율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는 우리의 뉴페이스 지율이를 가족 구성원 중 하나로 받아들인 것 같다. 동생 본 첫아이의 생떼와 퇴행에 대해서는 엄마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길래 나는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 소율이는 꼭 동생 때문이 아니어도 또래에 비해 고집이 세고 소유욕이 강한 아이였으니까.


언니가 된 걸 축하해.

동생이 태어난 날, 남편은 미리 준비해 놓은 클레이 세트를 첫째에게 선물하며 '동생이 언니 주려고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는 감사하게도 언니가 된 걸 축하해주는 의미로 파티를 열어 주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첫째에게 케이크를 가져다 주며 "소율이가 언니가 되어서 주는 거야"라고 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처음 지율이가 집에 왔을 때 소율이는 엄청난 떼쓰기나 퇴행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언제나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외동딸의 관성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있긴 했지만, 동생 본 첫아이에 대해 전해지는 악명 높은 괴담(?)들에 비하면 생각보다 귀여운 수준이었다. 내가 수유하고 있으면 와서 자기도 안아달라고 한다던지, 동생의 침대에 있는 초점책을 자꾸 자기 꺼라고 가져간다던지, 별 재미도 없는 동생 아기체육관에 자꾸 자기가 누워서 놀거나 하는.


얘가 내 동생이라구?


내가 가장 주목받을 거야.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첫째가 평소에는 동생을 예뻐해 주는 것 같다가도, 본인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괜스레 심통을 부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모님께 “지율이 잘 잤어요?” 라고 물어보는 간단한 대화조차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맘에 안 드는지 “우아아아” 하며 큰 소리를 내며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율아, 지율이 잘 잤는지 물어볼까?”라고, 먼저 첫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면서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돌려 하자 비교적 평화로워졌다. 우리는 매일 이런 다양한 시행착오들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하지만 나름의 균형을 찾아 갔다.

우리는 소율이 눈치보기에 촉각을 세웠다. 모두의 눈치작전이 진행되는 걸 까맣게 모르는 소율이는 그 동안 동생 기저귀 가져다주는 역할, 기저귀 쓰레기통에 버리는 역할에 재미를 붙였고 “내가 기저귀 가는거 도와줬지”라며 생색을 냈다. 동생이 온 지 한 달쯤 지나자 원래 자기가 혼자 쓰던 로션을 동생이랑 같이 쓴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자기가 가져갔던 초점책을 다시 동생 침대에 놓아 주면서 스스로가 그 사실이 매우 뿌듯한 듯 몇 번이고 자랑을 했다. 나는 소율이가 동생을 예뻐해 주거나 동생 돌보기를 도와주면 동물 피규어 인형을 하나씩 선물해 주었는데, 피규어를 7개쯤 모았을 때가 되자 그런 도와주기 행동들에 익숙해져서 피규어 없이도 (본인 기분이 내킬 때면) 잘 도와주게 되었다.

아끼는 멍멍이를 동생 빌려준다고도 하고, 동생이 울면 바운서를 (아기가 튕겨 나갈 정도로;;) 흔들어 주기도 한다.


동생은 이모님이 봐야 해!

그렇게 별다른 악행(?) 없이 변화에 연착륙할 줄 알았건만, 첫째의 질투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나는 사실 첫째가 힘들어 할 것이 매우 걱정되어 조리원에서도 일주일만 지내고 퇴소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는 동안에는 둘째에게 미안할 정도로 거의 안아주지 않았고, 이모님이 안 계실 때에도 첫째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기가 몇 분 우는 것 쯤은 그냥 내버려 두곤 했다. 사실 이는 모두 책에서 배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소율이는 엄마가 아기를 안 보고 자기랑만 노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둘째 맘마를 먹이거나 재우려고 안으면 첫째는 "아기는 이모님이 봐야돼~!" 라고 소리치며 엉엉 울거나, "아기는 울어도 괜찮아." 라며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았다. '동생을 얼른 재워야지 너랑 놀 수 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첫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겨우 둘째를 둥가둥가 재워서 문 살짝 닫고 나오면, 첫째는 괜히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쫑알거리기 일쑤였다. 소율이는 아기 재웠다고 좋아하는 어른들의 표정마저 맘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 또한 본인이 아닌 아기에게 주목되는 상황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둘째를 재우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는 첫째가 원망스러워서 화도 내 봤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소용 없었다. 이모님이 평소 둘째를 봐 주시는 것의 역효과인 걸까, 이모님이 아예 가시면 괜찮아지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을 몸소 실험하기엔 너무 두려웠다. 현실적으로 도무지 아이 둘을 재울 수가 없었던 우리는 결국 50일까지만 계실 예정이었던 입주도우미 이모님을 연장했다.


동생이 잠들면 이상하게 꼭 그방에 들어가서 논다. 좀 나와라....
잠든 아기 양말 벗겨서 자기가 신기.. 발 시려워진 동생은 잠에서 깨고... 휴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나와 소율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나 외출할 때 꼭 동생한테 인사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소율이가 과일 같은 걸 가족들에게 나눠줄 때 동생이 먹지 못해도 동생한테도 나눠주게 했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나온 사진들을 인화해서 작은 앨범을 만들어 주었고, '네가 동생을 잘 돌봐주면 사람들은 동생이 아니라 너를 더욱 예뻐할 거'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고 있다. 당시엔 별거 아닌 그런 행동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소율이는 주말에 이모님이 안 계실 때에는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명이 동생을 재워야 하고 밤새 동생 곁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동생이 자고 있으면 자기도 살금살금 걸어가고 속삭이듯 말한다. 차를 타면 옆자리를 가리키며 여기는 동생이 탈 자리라고 말하기도 하고, 동생이 크면 같이 달리기 시합도 하고 공원에 놀러가자고도 하고, 혼자 놀다가 문득 지율이랑 함께 놀고 싶다며 바운서에 앉아있는 아이를 자기 매트로 데려오라고도 한다. 심지어 어느 날엔 어린이집에 늦어서 급히 집 밖을 나섰더니 지율이한테 인사하는 걸 깜빡했다면서 다시 들어가서 인사하자면서 울기도...; 물론 내내 무관심하다가 가끔 저런 식으로 동생을 챙기는 척 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많은 발전이다. 이만하면 이제 이모님 없이도 혼자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가끔이지만 생길 만큼.


그렇게 우리는 100일이 지나는 동안 가족이 되었다. 여전히 애 둘 케어가 어설프고 힘들긴 하지만 이제는 이 집에 소율이 지율이가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게다가 신생아 티를 벗은 둘째가 날이 갈수록 너무 방실방실 웃고 예뻐져서 사랑이 퐁퐁 샘솟는 것은 덤. 최고 힘들 때를 넘겼으니 앞으로는 깔깔 웃는 일들만 있을 것 같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백일동안 고생 많았다. Hoo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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