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났다. 한 동네 살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 여러 번의 약속-취소-재약속의 과정을 거쳐 만나다 보니, 이런저런 할 얘기도 많았다. 회사 얘기, 아이 크는 얘기, 남편 얘기 등등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부모님'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라는 부모님 등쌀에 함께 못 살겠다며 열을 올렸는데,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이제 부모님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특히 우리 둘 다, 부모님의 크고 작은 수술을 경험했던 터라, 아직도 이팔청춘인 줄 알고 거침없이 생활하는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이 대부분이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조심스럽지만, 덤덤하게, 또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온다. 언제가 찾아올 부모님과의 이별 이야기, 장례다.
친구는 최근 형부네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가족들과 상의 끝에 부모님 납골당 예약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어디에 모시느냐도 중요한데, 형부네 장례를 치러보니, 괜찮은 납골당을 찾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거다. 부모님 입장에선 조금 서운할 수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에 허둥대는 것보다는 조금 더 건강할 때 이별을 준비하는 게 나은 일이라고 생각해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나 역시, 최근 들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친구의 얘기에 많이 공감하고 그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물어봤다.
내가 부모님의 장례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4년 전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였다.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노환으로 쇄약 해지셨고, 한두 달 고생하시다 93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셨다. 난 아직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기억한다. 일요일 오후, 아빠와 함께 요양병원에서 할머니를 보고, 큰집에 들렸다. 큰 아빠와 우리 아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 장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셨다. 장례식은 어디서 할 건지, 할아버지랑 합장을 하려면 어디로 연락해야 할지, 입관예배 주관은 어느 교회에서 할지 등의 내용이었다. 큰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와 아빠는 이왕 밖에 나왔으니, 돌아가는 길에 장례식장이라도 한번 보고 가자며, 생각해 뒀던 장례식장을 방문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와의 이별은 몇 달 후에나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가벼운 상담 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웠다.
3일 동안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처음으로 언젠가 찾아 올 부모님과의 이별을 조금씩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장례를 치른다는 게 짧은 시간에 준비해야 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은 꽤 큰일이었다. 특히 우리 집은 오빠네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 장례식 때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을 나 혼자 감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더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예로, 몇 년 전, 친한 선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당시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던 동생네 가족이 한국에 오기까지 약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선배는 5일장을 치르며 동생네 가족을 기다렸었다. 나에게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별의 순간은 늘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니, 미리 준비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기회가 되면, 부모님과의 이별, 장례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족, 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이런 나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고, 먼 미래의 이야기인데, 벌써부터 준비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필요 이상의 걱정이라는 거다. 오빠도 아직 부모님 건강하시고, 혹시라도 부모님 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부정적인 일을 미리 걱정해서 준비하자는 것보다, 건강한 이별을 준비하자는 의미가 더 크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다. 그 탄생의 순간을 위해 부모들은 최대 10개월이란 시간을 준비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그 순간을 위해 적어도 2~3개월이란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다면 8~90년의 세월 동안 살아온 부모님과의 이별을 조금 미리 준비한다는 건, 그들의 삶에 대한 위로와 존경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친구네 납골당 얘기는 나에게 충분한 공감을 가져왔다.
어느덧 내가 중년이 되어버린 것처럼, 부모님도 노년이 되셨다. 아직은 건강하시지만, 과거에 비해 약해지신 모습을 볼 때나,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 주변 지인들의 부모님 조문을 다녀올 때면, 언젠가 찾아 올 이별의 순간을 이제는 슬슬 마주해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순간처럼,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은 지나 온 삶에 대한 위로와 존경을 담아 보내드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먼 일이고, 서로에게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얘기지만, 결혼이나 탄생을 준비하는 것처럼,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