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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Apr 12. 2023

아빠가 아프다

해묵은 마음속 응어리를 마주할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아빠는 적대적 존재였다. 서로의 얼굴을 못 본 날들이 많았으며, 어쩌다 집에서 아빠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그날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아직도 기억되는 몇 가지 단편적 기억들은 지금도 나를 경직시킨다. 자녀로서도, 여자로서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던 아빠에 대한 나의 날 선 감정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스물 중반, 밖으로 돌던 아빠가 가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네 친목계 사무실에서 함께 고스톱 치던 친구분이 스스로 목숨을 거둔 장면을 목격한 뒤, 고스톱을 그만두셨다. 또한, 운영하시던 가게가 연달아 두 번 도둑을 맞자, 가게 비우는 날이 줄었다. 그리고 오빠의 결혼으로 새 식구를 맞이하면서, 아빠의 공격적 성향은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 


놀만큼 노셔서 그런지, 연세가 들어 철이 든 건지,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아빠의 크고 작은 변화로 자연스레 과거가 묻히고, 우리 집은 여느 평범한 가족과 별반 다를 바 없어졌다. 공식적인 사과나 용서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기억은 희석되었고, 그 시절 공포스러웠던 아빠의 모습은 어쩌다 한 번씩 쏟아지는 엄마의 한풀이 수다와 내 마음 한편에 잠든 응어리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 아빠를 향한 나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경제활동을 하시며, 짐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다가도, 흰머리, 흰 수염, 구부정한 허리, 어그적 거리는 걸음걸이를 볼 때면, “진작에 열심히 살았다면, 지금 노년의 모습이 달라졌을 텐데... “라는 안타까움도 있다. 그러면서 아주 가끔은 “젊은 시절의 게으름과 못됨을 이렇게 갚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복합적 감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아빠를 마주한다. 세상 가장 착한 딸로 감사함을 전하다가도, 공격포인트를 포착한 순간, 독사의 눈과 혀로 매섭게 몰아붙이다. 변덕스러운 모습에 아빠는 가끔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난, 아직 풀리지 않은 내 응어리의 값이라 말한다. 못된 거 안다. 하지만, 우리 가족 중, 아빠를 대적할 유일한 사람이 나이기에, 둘 사이 긴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아빠가 아프다. 웬만해서 병원을 다니지 않던 분이 직접 병원을 찾아다니신다. 근육이 다 빠져버린 다리는 남의 살 같단다. 몇 해 전 수술한 협착증 재발인지, 원인 모를 통증에 걷기도 힘들단다. 팔 마디가 저리고, 손끝이 뻣뻣해진단다. 어느 날 아침은 허리가 아프다면, 양말을 신다 침대 뒤로 발랑 자빠지는 게 아닌가. 일어나 앉질 못하겠단다. 엄마는 바둥대는 아빠를 겨우 일으켜 앉치더니 양말을 신겼다. 무서웠다. 이렇게 아빠가 주저앉아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쳐온다 생각하니 두려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빠가 가족에게 소홀했던 시간보다, 마음잡고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린 시절 공포의 잔상은 아빠를 그 옛날, 그 공간 안에 가둬버렸다. 물리적 나이에 비해, 아직 자라지 않은 내 마음은 아빠의 병 앞에서 다시금 무서움을 느낀다. 이렇게 아빠에 대한 미움을 마음 한편에 담아둔 채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기 전, 아빠와 한 번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두려운 부녀지간은 시간만 축낼 뿐이다. 앞으로 우리 부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어쩜 지금 이 순간이 마주해야 할 마지막 순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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