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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Oct 16. 2020

딸랭구 키우기 #21

늑대의 습격 - 검은 그림자 내 안에 깨어나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으로 어린이집에 보내기 힘든 처지다 되었다. 딸랭구와 마누랭구를 처가에 보내두었는데, 주말에 상봉하여 청라 호수 공원에 갔다. 주차장은 진입로부터 꽤 불편했지만 다행히 자리는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지나치게 좋아서 산책하기엔 너무 덥고 뜨거웠다. 저녁에 산책하면 참 좋을듯하다. 과연 이를 누릴 수 있는 호수 공원 주변 아파트가 비쌌다. 우린 그런 호사를 누릴 형편이 못되니 부천 시민의 강으로 갔다.

원천 공원에서 출발해서 상동역 인근까지 죽 걸었다. 딸랭구랑 물고기도 보고 비온 뒤에 솟아 올라온 버섯들도 관찰했다. 공벌레 잡아서 물고기한테 먹이로 주었다. 활동할 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게 시간보냈다. 걷기 힘들어하면 유모차에 태웠다. 시민의 강은 아파트 주변으로도 잘 꾸며져 있어서 근처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팔공티에서 밀크티를 샀다. 공차랑 비교해서 맛이 떨어졌다. 게다가 펄 빼 달라고 했는데 넣어줬다. 펄 싫어하는데! 돌아가는 길에 할배들이 공원 평상에서 담배 피우고 있어서 기분을 완전 잡쳤다. 평소에도 무개념한 흡연자들을 몹시 싫어해서, 지금보다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다면 지하주차장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는 아파트로 가고 싶다. 하지만 상급지로 가기엔 돈이 부족하니, 지하주차장이 아예 없는 아파트로 가야 소망을 이룰 수 있을 듯하다.

낮잠 안 재우고 놀았더니 처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절하셨다. 차 타고 3분 안에 잠든 것 같다. 마누랭구도 엄청 피곤해해서 집에 도착해서는 내가 책을 읽어줬다. 책 읽어주면서 엄마가 양치질하고 돌아오면 바로 잠들기로 약속했다. 순순히 알았다고 하길래, 낮에 열심히 놀아서 피곤했나 생각하면서 아이고 기특해라 우리 딸랭구 너무 이쁘다 우쭈쭈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눔 기집애가 엄마 오자마자 이야기해달라고 졸랐다. 아빠랑 약속한 거 지키라고 혼 좀 내줄까 하다가 마누랭구가 이야기 하나쯤은 그냥 해줄 듯하길래 하나만 듣고 자라고 단단히 당부하며 불을 끄고 나왔다. 육아에서 퇴근하고 여유롭게 아이즈원 콘서트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딸랭구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야기 해줘해줘! 하나 더 해줘! 엄마엄마! 잠들지 마!!! 잠.들.지.마!!!! 한 5분 정도 저렇게 생떼를 쓰는 동안 고민했다. 마누랭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둘 것인가? 저런 말도 안 되는 패악질을 버티기에는 마누랭구가 너무 피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튜브에서 늑대 소리 검색해서 풀 볼륨으로 세팅한 다음 바닥 문틈으로 틀어주었다. 딸랭구는 8초 만에 완전 침묵했다. 무서워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아이의 내적 동기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는데, 가끔은 아빠가 골탕 먹일 방법이 없어서 참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 어딜 유튜브 재생도 못 하는 게 엄마한테 까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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