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랭구 키우기 #24
딸랭구를 키우기 전에 나부터 커야 한다
애기랑은 플라스틱 전동드릴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볼트를 조이고 풀었다. 툴 키트에 드라이버도 있고, 스패너도 있는데, 우리 딸랭구는 무조건 전동드릴만 쓴다. 아무리 수동으로 하는 법을 가르쳐줘도 고집스럽게 전동드릴만 쓴다. 전동드릴이 편해서 그런 건지, 재미있어서 그런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놀면서도 은근히 편하게만 하려는 꼴을 보면 좀 얄밉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우리 딸랭구가 인생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자식이 고생 안 하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고생을 안 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힘든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삶이다. 돈이 아주 많으면 비슷하게 할 수 있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일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된다. 두 번째는 엔간한 일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삶이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일을 하는 삶. 평범하지만 누구나 힘들어한다. 우리 딸랭구가 저런 삶을 별로 고생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출 나게 강인한 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딸랭구야, 혹시 내가 돈 깨나 있었으면 첫 번째 방법으로 인생 난이도를 낮춰주는 걸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에겐 선택권이 없단다. 미안하지만, 아빠는 엄마랑 놀러 다닐 돈 모아놓기도 인생 빡세다. 여튼, 나중에 어른이 된 우리 딸랭구가 부당한 대우에는 감연히 대응하고 본인의 잘못은 흔쾌히 인정하면서 사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가치관의 중심이 잘 잡힌 상태에서 본인을 존중하면서 그만큼 남들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내가 잘해야 된다. 내가 그런 인간이 못 되는데 어찌 딸랭구를 그런 인간으로 키우겠어? 나 이 새끼, 핸드폰도 적게 쓰고, 잠도 일찍 자고, 일기도 밀리지 않고, 운동 꾸준히 하고, 몸매 좋고, 수염 부지런히 깎고, 피부 관리하고, 돈도 잘 벌고, 투자도 잘하고, 화도 적절한 방법으로 내고, 마누랭구랑 행복하고, 친구들에게 항상 도움 주고, 관대한 사람이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