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몸을 적응하는 시간은 얼마여야 충분할까?
루푸스.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아픔이라면 괜찮을 텐데, 도저히 통증을 진정시키는 약이 아니고서야 생활이 되지 않는 병. 물론 사람마다 증상과 고통의 정도는 다 다르다. 나는 때때로 내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통제에서 벗어나는 아픔을 안고 가야 하는 그 정도의 아픔.
예를 들면 땅에 꺼질 듯 무겁고 무력한 피로감, 시리도록 아픈 오한,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정도의 구석구석 관절통증, 미열과 전신통증으로 외출 자체가 힘든 그런 일상이다. 40분 이상 말을 하면 몸이 급격히 지치고, 점점 몸속 구석구석까지 오한이 퍼지는 듯한 그런 통증이 밀려온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내 생명력을 소모하는 기분이 들고, 그게 곧바로 통증이 되니까, 성미에 안 맞았다.
나는 아프기 전에 디자인을 본업으로 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였다.
아프고 난 뒤에도 나는 직장을 다녔다. 아나운서의 일은 발병한 지 2년이 될 때까지 이따금 고집으로 유지했지만 몸이 견디지 못했다. 결국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매 끼니 진통제가, 그러니까 심하면 마약성 진통제가 아니면 생활이 안될 정도였는데 아무리 업무조정을 요청해도 작은 회사에서 그건 쉽지 않았다. 갈수록 소모만 되고, 몸이 더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성격상 기절직전까지 가도 아픈 티를 못 내고, 또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참는 것도 익숙. 늘 참고 참다가 한계에 도달해서 고장이 나야 멈췄다. 그걸 계속 반복했다. 미련스럽게도.
돈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내 본래 성격에서는 양보를 많이 한 거라 포기한 업무도 많았다. 그런데도 내 몸은 계속 약해져 갔다.
어느 날은 입 안에 갑자기 피고름이 1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세 개 네 개 밤사이 생겼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긁은 허벅지에 보라색 반점에 크게 생겼고, 터치한 듯 살짝 스친 자리에 보라색 멍이 물감처럼 번졌다. 몸이 이상했다. 발 끝부터 시작해서 미세한 보라색 반점이 몸을 덮기 시작했다.
회사 대표님에게 연락해서 오전에 병원을 들르겠다고 했다. 바쁜데 일주일 전에 미리 신청하지 않았다고 싫어했다. 증상을 얘기했더니 그래서 연차냐며, 일 많다고 쓴소리 들었지만, 병원에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원래 외래를 다니던 대학병원에 가서 평소처럼 피, 소변검사를 했는데 담당 교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달려와서 입원부터 하라고 했다.
혈소판이 1000개 밖이 없다고. 원래는 십만 개는 족히 넘어야 하는데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지금 당장 뇌출혈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의외로 난 담담하고 그냥 그랬다. 그래요? 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교수님은 화를 냈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정말 아파서 아프다고 말해도 내가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염려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심지어 회사 대표님은 전체 회의 때에 내 병을 얘기하며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나도 그냥 웃고 넘겼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나는 보이기에 멀쩡하니까.
지금은 입원과 요양이 길어지며 직장을 그만두었다. 자기 관리를 실패한 결과라며 직장을 다시 나가라고 질책하는 아빠의 뾰족한 말에도 대응할 힘도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싶은 그런 기분.
그리고 살아가는 것.
오늘도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통증과 오한, 발열과 피로감으로 진통제를 먹고 뒤척이며 미래를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며 살지? 당장 내일 무엇부터 해볼까.
매일 뭔가를 해보려고 꼼지락 거리다가 뻗어버리는 일상에서 굼벵이 같은 움직임이라도 기록해놓아 보자, 생각하며 글을 쓴다. 손가락 관절이 무척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나를 기록해 본다.
알아주길 바라는 칭얼거림도, 불평도 아닌 그냥 담담한 기록으로 내가 무얼 하며 살아갈 궁리를 하는지 그게 아무 쓸모가 없다 해도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