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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an 13. 2020

서른다섯, 서툴게 시작한 피아노

피아노를 독학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지 수개월. 아직은 건반 앞에 앉는 것조차 어색함이 가시지 않는다.

'간추리지 않은' 오리지널 바이엘 106곡을 한 곡씩 모두 소화하는 데 든 시간은 쉼 없이 약 두 달가량이었고, 현재 진도는 체르니 100곡의 연습곡 중 열댓 곡 정도를 마친 상태.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어려움은 없이 순조롭게 실력이 붙고 있는 걸 스스로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형편이 얼마 안 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떠한 배움이든 초보 과정이 가장 행복한 법.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백지상태에서 그저 교재나 본보기가 제시하는 쉬운 과제를 하나하나 따라 하기만 하면 그만인 지금이야말로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라는 것.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스스로의 한계-무엇을 얼마큼 모르고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를 점차 깨닫게 되면 될수록 그다음, 또 그다음 단계가 점점 더 커다란 벽으로 다가올 테니까.


그 첫 벽은 머지않았다. 지금 연습하는 곡들에서 이미 조금씩 느끼고 있을 정도니까.


까놓고 말해서, 체르니는 100은 어려운 교재다. 나 같은 초보자에겐 리딩조차 간단하지 않을 만큼. 한 곡당 익혀야 할 테크닉은 한두 가지 정도라지만, 모든 곡에는 테크닉을 포함하여 웬만큼 연습해서는 수월하게 넘기기 어려운 패시지가 반드시 설계되어 있다. 한 곡 한 곡 따라 치다 보면 100곡의 모든 연습곡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였음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 치고 체르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체르니는 혹자가 말하듯 음악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쉬이 지루해지기 때문에 기피되는 교재가 아니다. 그저 단순히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실패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도 스무스하게 쳐지지 않고 자꾸만 여기서 삐끗 저기서 삐끗 틀리는 상황에서 마음이 꺾이지 않는 사람이란 게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피아노가 아니라 어떤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런 성향은 못 가졌다. 고통의 순간을 잘 참고 넘어서서 하나의 작은 과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 단계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특히 혼자서 취미로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곁에서 강제하는 장치도 전무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이러한 난관을 넘어서기 힘들다.


피아노 커뮤니티나 카페에서 활동을 고려해 봐야 할까? 

생각해봄직한 일이지만, 조심스러워진다. 여럿이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생각을 모으는 것은 대단히 효율적인 방식이긴 하나,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게다가 배움이란 모름지기 그 분야의 최대한 전문가에게 받는 것이 이상적이고, 또 세상 일은 신기하게도 공짜 혹은 값싸게 얻은 정보는 그 정도 값어치밖에 못 하는 법이니까.


한동안은 계속 혼자서 공부하는 것으로. 

다만 디지털피아노 외에 진짜 피아노를 만질 기회는 꼭 만들어 봐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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