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니 100
옥타브 주법을 제외한 단계적인 연습곡 100선
우리가 흔히 체르니 100번이라고 부르는 연습곡집으로, 아마 체르니의 수많은 에튀드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본 곡집일 것이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재능이 출중한 친구들 중에서는 단시간 내에 100번을 마치고 30번을 거쳐 40번 연습곡집까지 싹 마스터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어릴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이 100번을 채 다 치지 못한 채 피아노 학원을 관두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
아무튼 이 체르니 100번. 피아노 교칙본으로서의 자리매김해온 역사가 긴 만큼이나 바이엘 그리고 하농과 더불어 많은 찬반이 존재하는 교재다. 체르니 꼭 쳐야 되나요? 피아노 입문자 치고 이 질문을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테니까. 나도 바이엘 교본 후반부에 들어선 시점에서 똑같은 고민에 빠졌고 말이다.
체르니. 그래 뭐 이만큼 초급 에튀드로서 훌륭한 곡집도 없다지만, 체르니 잘 쳐서 뭐할 건데?
대부분의 취미 연주자들이 체르니와 같은 연습곡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은 연습곡집 특유의 어려움 때문에 여러 번 거듭해서 연습하지 않으면 영 들을만한 연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겠지만(특정 스킬을 숙달시키기 위해 어려운 진행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꼭 한두 번의 함정이 포함된다-조성이 바뀐다든지, 도약이 첨가된다든지, 마지막 부분에서 변칙적인 반주 형태가 보인다든지... 이런 걸 보면 체르니가 피아노 교육자로서 얼마나 훌륭한 곡을 썼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서 어느 정도 숙달된 연주로 완성했다고 쳐도, 도통 이게 어디 가서 써먹을만한 곡은 못 된다고 느끼는 점 또한 큰 이유다. 사실 체르니를 비롯한 많은 연습곡들에 대한 큰 오해가 이것인데, 체르니를 비롯한 연습곡들도 대부분 짤막한 곡 속에 작곡가가 고려한 최대한도의 음악적인 완성도가 담겨 있으며, 제시된 빠르기와 아티큘레이션을 지켜 잘 쳐내면 웬만한 연주곡 못지않은 놀라운 연주 효과를 보인다. 이것은 바이엘처럼 비교적 간단한 수준의 곡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즉, 곡에는 잘못이 없다. 늘 우리의 형편없는 연주가 곡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일 뿐.
즉, 체르니든 뭐든 일단 심도 있는 연습을 통해 납득할 만큼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어떤 곡을 치더라도 똑같이 '이거 잘 쳐서 뭐할 건데'라는 수준밖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길어야 반 페이지 분량에 한두 가지 스킬로만 이루어져 있는 체르니 100번의 곡들은 우리가 더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쉬운 연습 코스라고 할만하다. 이것을 제대로 쳐내지 못하면 어떠한 곡도 잘 치지 못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체르니 100번을 잘 쳐낼 수 있으면 그 어떤 곡이라도 잘 칠 수 있을 테고. 실제로 체르니 100번에 담긴 100곡을 제대로 소화해 낸다면 고전과 낭만시대 대부분의 곡들을 적어도 '스킬' 면에선 어렵지 않게 쳐낼 수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 않다. 사실 많은 분야가 이런 방식으로 돌아간다. 탁월함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완벽하게 탄탄한 기초에서 딱 한 단계 올라간 것일 뿐. 물론 말처럼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바이엘은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속도로 쳐내고 있다. 어린 시절 짤막하게 다닌 학원에서의 배움은 이미 99.99% 증발해 버렸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무의식 중에 대부분의 곡들의 음형을 기억하고 있음을 페이지를 넘겨가며 새삼 느꼈고, 비록 손가락 움직임은 서툴더라도 알고 있는 음형을 따라 치는 것이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체르니 100번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소나티네 중에서 가장 쉬운 곡을 골라 병행할까 생각 중이다. 아마 4번이나 7번이 될 듯한데... 마침 추운 계절, 싸돌아다니지 말고 방 안에 틀어박혀 최대한 집중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