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서 취미로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목표로 하는 곡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곡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람마다 취향따라 제각각이긴 하겠지만, 아마 낭만시대 곡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순위를 매겨보자면 분명 쇼팽이나 리스트의 곡들이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가 1위에 오를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놈의 라 캄파넬라...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을 딱히 싫어하는 것도, 리스트라는 위대한 작곡가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앎의 범위는 좁을지언정 리스트나 쇼팽의 곡을 좋아하고, 또 이따금씩 듣곤 하니까.
리스트와 쇼팽 등이 활약한 통상적으로 낭만주의 시대라 부르는 그 시기는 현대음악을 제외하자면 시기적으로 가장 지금과 가깝다. 그 옛날 음악이 종교적이거나 귀족적이기만 했던 시대로부터 드디어 벗어나 세속적인 인간 본연의 감정에 다다른 시대이며, 피아노를 비롯한 서양악기 연주에 있어서 기교적・감성적인 완성도 또한 절정에 다다른 시기임에도 틀림없다.
인간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듯한 표현력, 그리고 이른바 비르투오소적인 화려한 기교와 그에 동반되는 몸짓(퍼포먼스)까지. 이러한 어찌보면 극적인 요소를 아낌없이 담아 연주해야 제맛인 낭만시대 피아노곡들은 이른바 '연주 효과'가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라 캄파넬라' 역시 그러한 곡들 중 하나인 것이다. 난곡이라는 명성 치고는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도전할 만한 난이도라는 점도, 많은 취미생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내겐 좀 과해 보인다. 미디어의 탓일까?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이 하나의 곡에 대한 환상이 대단한 듯싶다. 세상에는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죽을때까지 매일 곡을 바꾸며 쳐도 다 못 칠 많큼 수많은 곡들이 있는데도.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아무튼 나는 피아노를 독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낭만시대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실력 면에서 아득히 멀었다는 점은 제쳐두고 하는 말이지만).
난 오로지 바로크 시대의, 그것도 바흐의 건반용 곡들을 치고 싶은 마음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나처럼 바흐 곡들을 즐겨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나 쳄발리스트, 또는 피아노 취미생도 물론 수없이 많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앞서 말한 리스트 등의 낭만시대 팬층보다는 현저히 적은 것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설명하자면 난이도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이 말은, 낭만시대 곡들이 바로크시대 곡들보다 연주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두 시대의 비슷한 난이도의 곡을 하나씩 뽑아 서로 비교해 보자면, 바로크시대의 곡이 낭만시대 곡에 비하여 앞서 말한 '연주 효과'라는 게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남들 앞에서 열심히 잘 쳐봤자 '오오오!'하는 탄성이나, 혹은 우레같은 박수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 그도 그럴 것이 바로크 시대 음악은 후대에 비해 비교적 좁은 범위의 음역대만을 사용하며, 음의 도약 등도 많지 않고, 작곡 자체가 정해진 틀을 잘 벗어나지 않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듣기에는 좀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타고난 취향이 특이한 탓인지 이 시대의 음악을 가장 사랑한다. 그저 듣기에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연주하는 재미도 대단하기에. 특히 바흐는 그의 곡들에서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 악기의 가장 위대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성부 연주'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대의 곡들처럼 왼손이 '거들뿐'만인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오른손과 동등한 속도와 기교와 정확성을 갖춰야 한다! 당연히 초보자 입장에서는 간단한 곡조차도 리딩부터가 꽤 어려우며(암보는 더욱더 어렵고), 바이엘이나 체르니에서 즐겨 치던 스타일의-오른손 멜로디, 왼손 반주-곡이 아니기에 숙달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 봤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무덤덤하니... 인기가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곡을 쳐냈을 때의 성취감이 여타 비슷한 난이도의 다른 시대 곡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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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을 마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체르니 100번은 절반쯤에서 흐지부지, 건너 뛰어 30번을 시작했지만 역시 수주째(수개월째...?) 봉인 상태. 소나티네도 진도가 전혀 나갈 기미가 안 보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안갯속에 갇힌 기분인 요즘. 코로나 사태만 아니면 피아노 학원을 잠깐이라도 다녀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일단 배우던 책을 다 덮고, 할아버지가 남긴 옛 악보 중에서 바흐 4집을 꺼내 들었다. 2성부 인벤션이 수록되어 있는 악보다. 바흐 입문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인벤션. 1번은 예전에 조금 친 적이 있지만, 오늘은 1번보다 리딩이 쉬운 편인 4번을 연습해 보았다.
왼손의 딱딱한 부자연스러움과 박자 흐트러짐, 그리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미스터치는 하루이틀로는 고쳐질 문제가 아니겠지만... 일단 리딩이라도 마친 것에 충분히 만족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