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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un 23. 2021

독학생에게도 슬럼프는 온다

피아노를 독학하겠다고 마음먹은 지도 그럭저럭 2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연습 빼먹는 날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 왔었는데, 최근 거의 한 달 반 가까이는 건반 뚜껑을 열지도 않는 날이 지속되고 있다. ‘슬럼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민망한 실력일 테지만 어쨌든 처음 피아노를 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의 열정은 꽤 많이 사그라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마음속 한켠에 피아노라는 도전과제를 아직은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것.


실력의 객관화가 어려운 독학생이지만, 일단 현재 머물러 있는 단계를 나타내 보자면 초급에서 중급으로 나아가는, 그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한 권을 완전히 마친 교재로는 바이엘이 유일하지만, 일단 체르니 100과 30의 절반 정도, 그리고 소나티네 중에서 후반에 배우는 베토벤과 하이든의 ‘쉬운 소나타’ 몇 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한 번 씩 훑어본 상태니까. (바흐 인벤션 중 쉬운 몇 곡도 포함해서)


피아노 전공생인 지인으로부터 슬슬 문법은 그만 보고 응용을 하라는 충고를 곧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왜 자꾸만 소나티네, 체르니에 집착하냐면서 ‘아이엠 어 보이’ 배웠으면 됐지 ‘아이엠 어 걸’을 또 배울 필요는 없다며 답답해하는 그의 태도에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소나타 1,2권을 그날 저녁 결제해버렸고, 그 친구가 추천해준 12번 소나타(K.332)를 무작정 시작해버렸던 것이다.

모차르트 소나타는 보통 피아노학원에서도 소나티네 곡집을 마친 학생들이 선택하는 커리큘럼인 듯하다. 그러나 이제껏 내가 해왔던 소나티네의 곡과는 난이도가 너무나 다르다. 단순히 늘어난 분량 문제는 아닐 것이다. 소나티네에 수록된 곡들은 각 악장에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좀 어려운 곡이라도 세 가지 정도의 테크닉에 집중하면 나머지 부분은 문제없이 술술 리딩이 가능했는데, 모차르트 소나타에서는 가장 쉬운 편에 속한다는 12번 소나타에서조차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버겁다. 어려운 테크닉이 나타나 주춤했는가 싶으면 다음에는 쉬운 패시지가 나오는 것이 마땅한데, 이건 웬걸 또다시 어려운 패시지가 나오고, 다음 마디에서는 또 다른 처음 보는 어려운 테크닉, 또 다음다음 마디에는 더 어려운 테크닉…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조언자 없이 홀로 진행하는 그 어느 독학생의 마음이 꺾이지 않을까. 자연스레 연습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피아노 뚜껑에는 하루하루 먼지가 쌓여갈 뿐.


그렇다. 슬럼프가 확실하다.

각설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그야말로 보류의 시기인 듯도 하다. 2년 동안 열심히 두드린 디지털 피아노는 기술적으로도 여러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애초에 입문용 저가 모델이었기에 장식음 등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는 모차르트 소나타부터는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도 했고) 그렇다고 새로운 피아노를 놓기에는 다양한 어른의 사정이 발목을 잡는다. 새로운 피아노를 구한 들, 그것이 새로운 연습으로의 열정으로 이어질지도 의문이고.


좋은 피아노와 독학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면, 차선책으로는 연습실 등을 통해 억지로라도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효율적인 공부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무식한 방법이 때로는 답이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짧게나마 레슨을 받는 것일 텐데. 이제까지는 전염병이라는 복병 탓에 계속 미뤄오기도 했지만 백신 접종을 완료한 지금, 마침 슬럼프라고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도전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

하반기에는 단발성으로라도 레슨을 체험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아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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