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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Nov 18. 2021

'우시니쿠' 해프닝

수년 전, 우연히 일본어 음독에 관련된 작은 사건을 어느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목격한 일이 있다.

세세한 내용까지는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유저가 일본어 ‘牛肉(규니쿠, 소고기)’를 말한다는 것을 ‘우시니쿠’로 틀리게 말했으며, 그 발언 뒤로 다른 유저들의 조롱성 댓글이 연이어 달렸던 사건이다. 일본어로 소고기를 나타내는 牛肉의 牛는 ‘우시’로 훈독하지 않고 ‘규’로 음독하는데, 그 커뮤니티 유저는 아마 이것을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거나, 혹은 착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 구사에 있어서 실수란 그것이 설령 모국어일지라도 늘 따르는 법이고, 하물며 외국어를 쓰는 상황, 그것도 딱히 어학 클래스와 같은 곳도 아닌 장소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그야말로 별 문제 될 것도 없는 그저 약간 부끄러운 수준의 실수임에 틀림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이러한 내 생각과는 다르게 댓글란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댄다’ 식의 신랄한 비판이야 예삿일이었고, 다양한 수단을 통해 댓글을 단 이를 조롱함과 동시에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뽐내는 이들이 줄줄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댓글이 하나 있다. 


'그런 식의 훈독+음독으로 한자를 읽는 법은 일본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 사뭇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이름 모를 이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는 이는 그 '언어적 지식의 뽐냄'으로 가득 찬 댓글 타래 중에서 끝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하면서 아주 조금 놀랐었고, 또 꽤 많이 언짢았었다. 나도 이래저래 일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지 벌써 수십 년이 넘은 인간이다. 그러나(어떤 영역이든 마찬가지겠으나) 언어라는 것은 알려고 하면 할수록,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지함을 매 순간 느끼게 만드는 거대한 지식의 결정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프리랜서로서 한일 양 언어의 번역 업무를 10년 이상 해 오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알고는 있으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 어휘’ 혹은 ‘애초에 난생처음 접하는 생소한 어휘’가 원고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곤 하며, 특히 모국어 간섭의 영역까지 고려하자면 바이링걸이 아닌 나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함정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듯도 하다.


앞서 말한 ‘훈독+음독’으로 읽는 한자 어휘가 일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 있게 비웃던 그 사람은, 그런 식으로 읽는 한자 어휘를 가리켜 아예 '湯桶読み(유토요미)'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아차렸을까? 만약 알았다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湯桶読み'에 대한 예시는 사전까지 뒤적일 필요도 없다. 소고기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연상되는 다른 두 종류의 친숙한 육류='돼지고기(부타+니쿠), 닭고기(토리+니쿠)’가 둘 다 버젓이 ‘훈독+음독’으로 읽히고 있으니까. 바로 옆에 있는 진실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그는 그렇게 잘난 체를 하며 남을 깔아뭉갰던 것이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서브컬처를 주로 다루는 그 사이트의 특성상, 커뮤니티에는 필시 일본어 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늘 상주해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본어’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 굉장한 특권이며, 또한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런 종류의 자랑거리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인터넷의 익명성 또한 그들의 그런 욕구를 부채질했을 테고. 그도 필시 그렇게 지식을 자랑하고픈 욕망에 휩싸인 이들 중 하나였으리라.


그러나, 무언가를 안다는 것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정말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다양한 각도에서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의외로 모르는 부분 투성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어떤 한 분야에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쏟아 그 분야의 거의 대부분을 알게 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할 자격은 없다. 하물며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우리들 같은 범인들이야 두말할 거리가 있으랴.


그리고 더 큰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牛肉를 ‘규니쿠’가 아닌 ‘우시니쿠’라고 읽었다고 하여도 그것을 대놓고 비웃을만한 일본어 원어민은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내게 이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귀엽다’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그중 어떤 이는 ‘우시니쿠’는 소고기 전문점 가게명으로 써먹으면 좋을 것 같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우시니쿠’는 분명히 틀린 일본어 표현이 맞지만, 어떠한 일본인도 그것을 조롱하거나 비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에게 일본어는 탁월하게 유용할 수 있는 훌륭한 지식이긴 해도, 그 이전에 일상의 도구이자 더 나아가 일상 그 자체일 뿐이니까. 휘둘러서 남에게 뽐낼 만한 대단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당시 나는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에게 틀린 정보를 심고, 또 원 작성자를 상처 입히기도 한 그에게 반박하는 글을 달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나 또한 또 하나의 ‘요란한 빈수레’가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마음을 접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았으리라 믿고 있다. 


이 작은 사건-'우시니쿠 해프닝'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내게 겸손과 배움, 그리고 번역가로서 언어적 지식을 대하는 태도를 환기시키는 사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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