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그리는 나의 이야기 1. <걱정이 너무 많아>, 김영진
마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속 시끄럽게 지나간 감정들이 아침부터 불쑥불쑥 올라오는 그런 날. 곁에 있는 사람의 위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홀로 상처를 핥는 강아지마냥 그렇게 혼자 있고 싶어지는 날. 그럴 때 나는 어김없이 책장을 뒤진다. 내 마음을 대신해줄 글귀를 찾는다면 꿀꺽꿀꺽 시원하게 들이켤 텐데. 그런데 그마저도 마땅치 않은 날이 있다. 하... 까다로운 내 마음을 책망하다 그림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렇게도 직관적인 제목이라니! 나는 이러저러한 연유로 걱정이 너무 많다. 걱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일도 많다. <걱정이 너무 많아>의 주인공 그린이도 걱정이 많다. 그린이가 걱정이 많아진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린이는 학교에서 체육 활동을 하던 어느날 바지에 구멍이 나서 원숭이가 그려진 팬티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깔깔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그린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날 집에 가는 길에 휴대폰까지 잃어버려서 엄마, 아빠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 어린이의 인생도 녹록지 않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그린이. (주룩)
이날부터 그린이는 걱정 쟁이가 되었다. 언제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시감을 늘 안고 살아가는 어린이는 예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친구가 다가와 인사를 하려고 등을 한대 툭 쳐도 "왜 때려!"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소리를 질러놓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미안하고 민망하고. 그래서 또 걱정을 한다. '내가 너무했나. 어떡하지...' 걱정이 쌓이고 쌓이니 그린이의 어깨가 무겁다. 그린이의 어깨에 말 그대로 걱정이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있는 그린이의 마음이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린이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요망한 걱정 괴물들은 걱정이 많아져 잠을 잘 수 없는 그린이 주변을 맴돌며 과장님 같은 말장난을 치기까지 한다. (최악이군) 그리고 식집사처럼 걱정을 애지중지하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급기야 그린이는 학교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별일 아닌 것까지 걱정하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 매일매일 걱정 괴물들에게 택배를 받는 최고의 고객님이 되어간다. 그 덕에 걱정 괴물들만 신이 났다. 그린이는 걱정에 걱정에 걱정 끝에 할머니께 전화를 해 그간의 걱정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린이에게 신박한 솔루션을 제안하신다.
"누구에게나 걱정은 있단다. 할머니도 걱정이 많지. 그런데 오래가지 않아. 왜냐하면 할머니는 집에 들어갈 때 집 앞 나무에 걱정을 매달고 들어가거든."
상상이 되는가? 매일 하굣길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나무에 걱정 괴물들 매달고 집으로 들어가는 그린이의 가벼운 발걸음과 동마다 걱정 괴물이 매달린 나무가 늘어선 아파트 단지 풍경이 말이다. 걱정 괴물들이 걱정을 하게 만드는 작전이라니! 너무 신박하지 않은가.
할머니의 솔루션도 솔루션이지만, "누구에게나 걱정은 있단다."라는 다독임은 그 무엇보다 큰 위로를 준다. 걱정에 짓눌린 괴로운 마음에 더해 "나만 이렇게 걱정이 많은가?,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라는 자책하는 마음까지 생기면 그 무게가 상당해진다. 그렇게 하루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사실은 누구나 한다는 걸 알아주시는 것 같은 할머니의 너그러운 말씀이 내게도 위로가 된다.
할머니의 위로와 신박한 솔루션의 합작으로 그린이는 드디어 친구에게 사과를 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도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그린이와 그린이 친구 준혁이는 서로의 걱정을 나누면서 어른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린이와 준혁이의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걱정의 가장 큰 원인은 어른들의 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미래와 성품을 걱정하며 던진 우려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걱정의 씨앗을 심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 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말’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마음이 무게를 덜어낼 문장들을 찾아 헤매는 건 일종의 해독제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 걱정이 섞인 말이 걱정을 낳는다면, 미움이 섞인 말은 미움을 낳을 수도 있다. 말속에 섞인 불순물을 제 때에 해소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관계마저 서로에게 걱정의 씨앗을 자꾸 심는 사이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그린이가 할머니 덕분에 걱정을 덜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린이의 부모님은 그린이의 사연을 라디오에 보낸다. 그러자 그린이의 사연이 담긴 라디오 소리가 닿는 이곳저곳에서 걱정으로 괴로워하던 어른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저마다의 걱정 괴물 퇴치법이 있겠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린이 할머니의 말씀처럼 걱정을 매달아 둘 나무를 하나씩 찾아두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괴로워질 걱정들에게 할 한마디도 꼭 준비해두자.
아직 꽃샘추위 안 가셔서 밤이면 오들오들 추울 텐데에~ 쌤통이다! 요것들아!
속이 좀 시원하다. 아침부터 나를 괴롭히던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 같다.
1. <걱정이 너무 많아>에 그려진 그린이의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된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아파트 풍경, 고깃집, 집 안에 걸린 커튼과 이불의 패턴 등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시각 환경을 반영한다. 익숙한 배경 속에서 그린이가 경험하는 걱정이 얼마나 극심한지 보여주는 걱정 괴물과 그린이의 감정 표현은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작가는 현실과 판타지가 대비되는 시각적 표현으로 그린이가 경험하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증폭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 이 책은 어린이의 경험을 라디오를 통해 어른에게도 전하여 위로를 준다는 설정으로 그림책의 메시지를 어른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전이시킨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부모의 걱정을 나누며 아이들로부터 지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대화를 통해 어른과 아이는 서로 동등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걱정' 앞에서는 어른이나 어린이, 노인 그 누구나 평등한 무게를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