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왜 대비시켜 놓았을까? 전혀 맞지 않는 조합같이 보인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큰 활약을 하고 있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이미 고인이었고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오다 노부나가를 대비시켜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유는 임진왜란에서 이 두 사람의 영웅이 전쟁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센고쿠 시대 사람으로 그 당시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게 주군 가문을 쳐서 영토와 지위를 얻는 하극상을 일으켜 크게 세력을 키운 인물이다. 내가 앞에서 천재에 대해서 언급한 글이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 야 말로 내가 읽었던 많은 위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천재이다. 이 사람에 대한 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이 오다 노부나가라는 사람은 기가 막힌 천재이다. 그 시대에 같이 살던 일본 센고쿠 시대의 많은 영웅들과도 전혀 차원이 다른 두뇌회전과 기막힌 발상의 전환을 가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다. 이런 천재가 덕을 갖추고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상당히 무례하고 교만하였고 거기에 잔인한 면까지 가지고 있었다. 물론 중국 춘추전국 시대와 같이 일본의 센고쿠 시대에도 가문의 이익을 위하여는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였으니 이런 시대에 살아남아서 세력을 키우기 위하여는 이런 것이 어찌 보면 당연시되는 때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런 오다 노부나가는 승승장구하면서 센고쿠 시대를 통일하는 패자로 거의 등극했지만 어이없게도 부하인 아케치 마쓰히데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런 오다 노부나가가 자기 생전에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당시 전쟁의 신으로 불리었던 다케다 가쓰요리였다. 이 다케다 군은 당시 일본에서는 특이하게도 기마병의 군대였는데 유럽을 포함해서 가장 넓은 제국을 가지고 있었던 몽고군의 기마병같이 천하무적이었다. 이 당시 일본의 어떤 영주나 가문도 다케다가쓰요리 군대와는 절대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철벽의 기마병에게 무섭게 세력을 확장해 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풋내기인 오다 노부나가가 도전을 하자 모두들 이 천재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객관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모두들 오다 노부나가의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는데 잡히는 정보는 오다 노부나가가 그 당시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한 조총을 대량으로 사들인다는 정도였다. 이 당시 조총은 일본에서 처음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심지에 불을 붙이고 타 들어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되면서 다들 그렇게 위력적인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였고 실제 전투에서도 조총을 발사하면 다음 발사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심들이 식어갈 때였다. 여기에 더해서 명중률도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하니 칼이나 활에 비해서는 너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무기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총을 사 모으는 오다 노부나가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였다. 특히 상대방이 기동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마병인데 조총 한 번 발사하고 다시 재장전하는 사이에 기마병들이 들이닥쳐서 몰살당할 것이 뻔한 전쟁이었다. 모두들 이 비상한 젊은이인 오다 노부나가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고 심지어 오다 노부나가의 참모들도 격렬한 반대의견이었지만 의견을 피력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의 불같은 성격은 이런 반대를 하는 부하들을 절대 살려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조총을 원하는 수량만큼 구입하자 오다 노부나가는 부하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는데 기존의 일렬이 아닌 3열 횡대의 대열을 만들고 제 1열이 조총을 발사하고 앉으면 제 2열이 바로 발사하고 앉고 이어서 제 3열이 발사하는 그 당시로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전략을 수립하였다. 항상 속도를 중시하였던 오다 노부나가는 끊임없는 훈련을 통하여 이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였다. 이렇게 하자 그동안 한번 발사하면 다시 발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던 단순했던 이 무기는 갑자기 무서운 연발 기관단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총을 쏠 때는 정조준하지 말고 앞에 대고 바로 발사하도록 훈련시켰다. 이는 다케다 군의 주력인 기마병의 말들이 겁이 많은 동물임을 착안해서 여러 대의 조총이 한꺼번에 또 연속적으로 발사하는 엄청난 폭음에 말들이 놀라서 통제가 안되게 하여서 대열을 혼란에 빠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국 다케다 가쓰요리와의 전투에서 이런 전략을 구사하자 기존 조총을 대하듯 밀려들어 오는 다케다의 최강 기마병은 겁먹고 날뛰는 말들로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여기에 조총과 화살을 쏟아부어 그야말로 몰살을 시키는 대 이변을 연출한다.
지금 생각하면 조총을 이렇게 3열로 서서 연속해서 쏘는 것이 모두들 아는 내용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즉 그 당시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결국 이 천재는 이 발상으로 일본 최강의 부대를 전멸시키고 사실상 전 일본을 통일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고 비운의 죽음을 맞은 이 천재와 사후 후계자인 도요도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발생한 임진왜란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가 임진왜란 때 육전에서는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밀려서 거의 북쪽 끝까지 도망을 가게 되는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은 도요도미 히데요시 때문이 아니고 단발 무기인 조총을 연발 기관총으로 변모시킨 오다 노부나가라는 천재 때문이었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역사 지식으로는 우리는 그 당시 조총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있다가 바보같이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 당시 조선에도 조총이 들어와서 검토하였는데 일본에서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조총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과 또 전쟁시기인 일본과 달리 당시 조선은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조총의 수요가 거의 없어서 양산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 우리의 최대 강점인 활이라는 무기가 조총을 능가하였기 때문에 조총에 대해서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또 대비도 없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한심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일본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똑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가 전 일본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당한 것처럼 조선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내 생각에 임진왜란 때 우리가 육전에서 당한 수치는 우리가 무지했다기보다는 일본의 워낙 출중한 천재인 한 사람에 의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하물며 일본의 전쟁의 신도 당했는데…
매도 먼저 맞으라고 우리의 쓰라렸던 아픈 부위를 먼저 언급하였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패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해전에서 그야말로 일본을 박살을 내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게 했던 조선의 천재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