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Oct 21. 2016

내 아이를 당당하게 키우는 방법

내 아이를 당당하게 키우는 방법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이 이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로 어릴 때부터 아이가 기죽지 않고 자라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방임하면서 키운다.  

과거 부모 세대에는 대부분이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해서는 안될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바로 혼이 났다.  그리고 형제가 많다 보니 그 안에서의 보이지 않는 규율(?)도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눈치가 있어야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살아갈 수 있었고, 항상 가족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때부터 아이들이 하나 아니면 둘만 있게 되고 또 엄마들이 새로운 교육을 받고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게 외국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기 시작하였다.

물론 자유롭게 키우는 것은 좋고 또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것보다는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 키우는 것이 더욱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이것을 넘어서 아이들이 전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또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마음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변에서 보다 못해서 한 마디 하면 엄마들은 내 아이 기를 죽이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과연 이것이 아이의 기를 살리는 길일까?

평생을 이 아이를 데리고 산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이는 7년만 지나면 학교라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요즘은 유아원이 필수이니 아마도 더 일찍 사회에 첫발을 내 디디게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제멋대로(?) 자란 아이는 집을 떠나서 학교라는 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난관에 봉착한다.  자기가 중심이었고 기가 살아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었고 주변을 전혀 의식할 필요도 없었던 이 아이는 모든 것에 제재를 받게 된다.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영 아니게 된다.  그러면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나는 너무 갑자기 기가 죽으면서 친구 사이에서 무시당하는 처지로 급전직하하던지 그래도 기가 팔팔한 아이는 선생님을 위시한 주변의 친구들과 대적하기 시작한다. 이때라도 부모가 이 아이를 가르치면 좋은 방향으로 올 수 있으나 아이를 이렇게 가르친 부모들은 대개의 경우 이런 환경이 잘못되어서 자기 아이가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모든 잘못이 한국의 그릇된 후진적인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게 된다.


나는 1980년대에 미국을 처음 가 보았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은 나에게 많은 새로운 환경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 이때 나에게 신선했던 추억은 여기서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을 상당히 엄격하게 키운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친구처럼 살갑게 대하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도록 방임하는 편이지만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바로 단호하게 제재를 가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우는 아이들은 많이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생떼를 쓰는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음식점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음식점 안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미국도 아이들은 아이들 인지라 왜 뛰어다니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부모들이 못하게 제재한다.  어떤 경우도 공공질서를 지켜야 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미국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미 가정교육으로 다 체득하게 된다.  이렇게 자유로우면서도 비교적 엄격한 교육을 받은 미국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사춘기 때쯤 되면 부모가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게 되는데 이때의 모습만 보고 우리나라 부모들이 미국의 경우는 아이들을 일절 제재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방임하면서 기른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달리 이미 이 때는 어떤 규율이나 규범이 몸에 배어있는 상태이므로 내버려 두어도 크게 본질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어릴 때 아무런 제재 없이 자기 마음대로 커 온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들의 간섭이 시작된다.  어릴 때 당연히 형성되어 있어야 할 규범이나 규율이 전혀 없는 아이들은 가뜩이나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사춘기 때 시시콜콜 간섭하는 부모들과는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성인이 되면 미국인들은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편이고 반면에 우리나라는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상태를 성숙하지 못하다(immature)고 표현하면서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80년대 미국에서 느낀 점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생각보다는 아이들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가르쳤다. 대표적으로 존댓말 쓰는 것을 가르쳤고, 음식점에서는 반드시 자리에 앉아 있도록 했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않도록 했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 세대처럼 야단치면서 엄격히 교육시킨 것은 아니다.  바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칭찬으로 가르쳤다.  존댓말을 가르치고 존댓말을 하면 엄청난 리액션을 동원해서 칭찬해 주었다.  이러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존댓말을 항상 쓰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주위의 사람들도 그 또래 아이들이 쓰지 않는 존댓말을 하는 우리 아이들을 신기해하면서 많은 칭찬을 해 주게 되는데 이것이 아이들을 더욱 신나게 하고 기를 살리게 된다.

음식점에서도 뛰어다니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게 했는데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음식점에서 제멋대로 떠들고 뛰어다니니 우리 아이들도 얼마나 하고 싶었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내 아내도 이런 나에게 불만을 터뜨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우리 아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모두들 지나가면서 한 번씩 칭찬해 주곤 했는데 이걸로 모든 불만 사항은 다 해결되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또래 아이들보다 무언가 규범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들도 칭찬하게 되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선생님의 칭찬을 주로 받는 아이가 친구들과의 서열정리(?)에서 상당히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의 관계는 물론 학교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가 팍팍 살게 된다.  본인은 남들과 다른 우월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믿음까지 가지게 되면서 정말 자신 있게 생활하게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정확히 들어맞는 속담이다.  어린아이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인 ‘그 어린것이 무얼 알겠어요?  크면 다 변하게 돼요’는 100% 틀린 이야기이다.  어릴 때 형성되지 못한 품성은 죽을 때까지 형성되지 못한다.  반면에 어릴 때 형성된 몸에 배어 있는 품성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죽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면 어릴 때 일정한 규범을 정하고 가르쳐야 한다.  특히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행동을 규제하여야 한다. 그래야 내 자식이 학교생활부터 시작되는 사회생활에서 남들과 큰 문제없이 조화롭게 지내게 되고 주변의 칭찬을 들으면서 기가 살아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키운다는 지금의 젊은 부모들의 교육은 기를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내 자식을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무례한 사람으로 만드는 즉 자식들의 기를 꺾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3년 동안 아이들 기를 어느 정도 눌러주어서 남은 80년을 기가 살아서 살게 할지 아니면 3년 동안 아이들의 기를 마음껏 살리고 남은 80년을 기가 죽어서 살게 할지의 선택은 온전히 부모들 몫이다.


결론적으로 내 아이를 당당하게 키우는 방법은 남들과 어우러져 사는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무례하지 않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와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