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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Dec 17. 2018

내 마음을 읽어준 그림책

워킹맘 1년, 나는 무빙워크에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시간은 아침 6시입니다. 오늘의 날씨는...” 남편이 맞추어 둔 라디오 알람이 울립니다. 커텐 사이로 실날같은 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는걸 보니 아직 동이 트지 않은게 분명합니다. 아이가 깨기라도 할까 허둥지둥 알람을 끄고 까치발로 침대를 벗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습니다. 오늘도 컨디셔너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하아얀 뒷꿈치만 내놓은 채 몸은 한껏 웅숭크린 채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긴 복숭아처럼 보드라운 발 위로 양말을 쑥, 신켜야만 할 때 나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단 1초라도 더 재우고싶은데 엄마를 닮아 잠귀가 밝습니다. 뒤척뒤척, "엄마, 더 잘래요."


문득 시계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비디오를 리와인드 하듯 어젯밤 차에서 잠든 아이를 데려와 벗긴 옷을 그대로 다시 입힙니다. 아이의 의사도 묻지 못한 채 손에 장난감 소방차를 불쑥 쥐어주고는 들쳐매듯 데리고 나와 카시트에 앉힙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아이는 친정으로, 나는 회사로 향합니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나는 늘 무빙워크에서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상 속 시간에 어지러울만치 가속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옮긴 발걸음에 비해 내가 체감하는 삶의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때로는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걸까, 덜컥 겁이 났지만 속도를 조절하는 법도 알지 못했고,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계의 초침이 나를 멋대로 들고 뒤흔드는 듯한 하루 중에서도 오직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음 느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떠난 사무실에 홀로 앉아 그림책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게걸스레 그림책을 헤치우듯 읽어치웠고 때로는 세상에 남은 단 하나의 고서인냥 단 한권만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어떤 책을 보고는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하품을 하는 척 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는 기분이 너무 좋아 오후 업무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분명 그림책을 읽은 것은 나인데, 어느 새 그림책이 나의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내, 자식, 직원, 내가 책임져야 할 많은 역할 사이에서 내가 '나'를 놓치 않은 것은 오직 그림책 덕분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파도처럼 가차없이 철썩이고 넘치는 내 마음을 잔잔하게 흐르게 해준 것도 오직 그림책 덕분입니다. 아이와 함께 해주지 못하는 시간을 자꾸 다른 것으로 보상하고 싶어질 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내 손을 잡고 아이의 마음 속으로 이끌어 준 것도 그림책 뿐입니다.  


이 매거진은 세상의 많은 그림책이 내게 건넨 위로와 치유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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