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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삼콩 Jan 02. 2018

글쓰기의 이유 -1

엄마라는 이름



아기를 낳은 지 1년 쯤 되니 이제 '아기엄마'라는 호칭이 제법 귀에 익었다. 집에 오는 정부지원 아이돌보미도, 프뢰벨 방문판매사원도, 병원 접수대의 간호사도 심지어 길 가던 생판 남도 자연스럽고 편하게 나를 칭한다. '아기엄마' 또는 '유안이(지안이) 어머니'하고, 친근하고 다정하게. 



학교 다닐 땐 학생이었고 회사 다닐 땐 비서였고 결혼 준비할 땐 예비신부였고 임신 기간엔 산모님이었던 것처럼 단지 나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 역할로 나를 이름 짓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벗어던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단찮은 일이지만 병원이나 관공서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어머니'라는 고유명사로 불릴 때마다 내 이름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직까지 이 무거운 이름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철없는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아기엄마'. 얼마나 예쁘고 또 아기자기한 말인가. 마법같은 단어. 아기의 엄마. 그 아기의 엄마. 그 아기의 모든 것을 알고, 항상 아기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아기가 울면 단박에 문제를 해결하는 아기의 유일하고 전능한 엄마. '아기엄마'라는 말랑한 단어가 지고 있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고 영속적인 것인지. 때로 숨이 막힌다.



이 증상은 아기를 낳고 두어달 쯤 뒤에 찾아왔다.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끝도없이 막막해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데, 새삼 겁이 났다. 너무 쉽게 사라진 '혼자'의 삶이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혼자가 될 수 없고 죽더라도 책임져야 할 어린 것들이 둘이나 생겼다는게 무서웠다. 사람은 우습다. 꼭 없어진 후에야 깨닫는다. 나는 내 손으로 떠나 보낸 내 일상과 시간을 뒤늦게 갈망하고 있었다. 정신도 없고 여유도 없는 지금에야 내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유야무야 매일을 수습하듯 무성의하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절박해져야 진정해지나보다.



가슴 속엔 늦폭풍이 불어 닥치는 와중에 육체적 노동강도는 절정이었다. 하루종일 애를 안고 온 집을 돌아 다니니 팔과 손목, 허리와 발바닥까지 아팠다. 몸은 치열하게 힘든 와중에 마음은 텅 빈듯 공허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행길을 택했나, 후회만 막심했다. 모성이 채워야 할 자리가 때늦은 자기연민으로 가득 찼다. 아기가 예쁘긴 한데 내가 너무 불쌍했다. 나도 한때는 인간다운 삶을 살았을텐데. 어쩐지 까마득했다. 내 시간을 오롯이 아기를 위해서만 바쳐야 하는 일상이 낯설고 버거웠다. 아기를 낳는 것이 이렇게 한 존재를 지우고 다른 존재를 새겨 넣어야 하는 일인지 몰랐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너무 버거웠다. 갑자기 지게 된 양육의 무게가 내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는 잠든 아기를 안고 욱신거리는 발바닥으로 방을 돌아 다니다가 아기 장난감 박스의 뜻모를 외국어를 눈으로 훑으며 스페인어나 배워볼까 하는 헛된 공상을 해보기도 했다. 또 하루는 갑자기 못 이룬 꿈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 등록했다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도저히 공부할 여유가 없어 자퇴 신청을 했다. 아기가 없었다면, 아니 결혼을 안했다면 나는 언제나 바랐던대로 캐나다나 호주 같은 곳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었을까? 부질없는 가정은 변함없는 현실을 더 강조하기만 했다.



나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큰 범주로는 아기 키우기, 그 하위 카테고리로는 젖병 소독, 기저귀 갈기, 쓰레기통 비우기, 아기용품 구입, 분유물 끓이기, 이유식 만들기, 안 쓰는 아기용품 중고거래 하기, 아기 옷 세탁, 가제 수건 삶기 외 기타 사소하고도 잡다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 치여 순위가 밀렸다. 그러다 보면 그게 과연 진짜 중요한 일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사소한 일이 중요해지고 중요한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렇게 꿈이 사라지고 자아가 잊혀졌다. 엄마라는 역할만이 남았다.



그렇게 영혼 없이 살다가도 때때로 분노나 슬픔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다. 다행히 아기들의 개월 수가 많아질수록 몸은 조금씩 편해져 갔다. 아기들을 더 이상 안아 재우지 않는 때가 왔고 앉아서 노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다. 육체 노동이 줄어든 대신 감정 노동은 좀 더 늘어났다. 아기들이 이유식을 한 숟가락도 먹지 않고 버티거나 만지면 안되는 것들을 만지려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분노 조절이 필요해졌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았다. 6개월 피크를 찍고 아주 서서히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생기는 숨 쉴 틈 사이로 제쳐놓았던 열망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피곤해서 무시하려다가도 상황이 열악할수록 정교해지는 청개구리 같은 욕망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 구절씩 끄적여 보았다. 어디에 쓸 지, 누구에게 보여줄지도 모를 글들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 행위로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를 조금 두렵게 한다. 글쓰기를 하는 동안은 잠시 나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결국 내가 쓰는 것은 아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어해봤자 이것은 탈부착이 불가능한 이름이었다. 나는 이 시도를 통해 '작가'라는 형태로 나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글 줄 좀 쓰는 아기 엄마'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내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내 꿈과 목표가 무엇인지, 내 자아, 내 시간, 나아가 내 공간까지 가지게 되려면 앞으로 더 많은 고민과 탐구 그리고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엄마와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엄마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은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글을 써보고자 마음 먹은게 작년 9월인데 어느새 해가 바뀌었고, 9개월이던 아기들은 어느덧 13개월이 되었다. 처음에 마음 먹은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을 썼다. 몸과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는 증거다. 나태로 돌아가 엄마도 나도 아닌 상태로 괴로워하지 말고 어서 합의점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다. 어쩌면 그 때에는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고 그 위에 엄마라는 존재가 덧씌워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옆에 엄마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것이라고 그렇게 편안하고 담백하게 '엄마인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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