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는 불면의 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매일 기대하지만 오늘도 역시 아기는 다섯시에 '완전 기상'을 했다. 아무리 다시 재우려 해도 자지 않아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채 불을 켰다. 저도 잠이 모자란게 분명한데 잠들지 못하는 게 의문스럽고 답답하다. 오전 낮잠을 잘 때 까지 내내 칭얼거리다 오후 쯤 되어서야 컨디션이 나아졌다. 새벽 기상으로 인해 피로한 몸을 채찍질하며 종일 아기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가 (중간중간 맘까페에서 '10개월 아기 새벽에 깨는 이유' 같은 것들을 검색하고-딱히 명쾌한 해답은 역시 없었다) 오후 8시 경 겨우 '육아퇴근'을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어슬렁 거리다보니 새벽 1시가 되었다.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하루 중 얼마 안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아쉬워 일부러 잠을 미룬다. 그리고 다음날 또 후회한다.
육아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단연코 '잠'을 꼽겠다. 두 가지 의미이다. 첫번째는 아기를 재우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두번째는 내가 잠자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베개에 머리만 붙이면 3초 안에 잠 드는 사람(이를테면 나의 남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나를 비롯해 잠들기까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엄마들에게 바치고싶다. 또한 잠귀가 밝고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예민한 엄마들에게도. 이런 사람들에게 육아란, 끝이 안 보이는 잠고문의 세계나 마찬가지일테니까.
아기 잠과 목숨 건(?) 사투를 벌인건 조리원 퇴소 직후 부터였다. 왜 그렇게 재우기가 어려웠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아기처럼 잘 잔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었다. 신생아가 16시간 잔다는 것도 현장과는 동떨어진 차갑고 건조한 통계 수치에 불과했다. 그래프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16시간이 30분씩 수십개로 조각난 조각잠이라는 것도, 그 조각잠마다 어른이 시끄러워 잠을 못 잘 정도로 낑낑거리고 끙끙거리는 용트림과 정확히 응애응애 하는 음가를 가진 울음이 동반된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낳아보고 길러보니 아기의 잠은 늘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다. 신생아가 우는 이유란 어디가 아픈 경우를 제외하면 배고픔, 졸림 또는 기저귀 밖에 없으니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간 상태에서 울면 안고 어르거나 재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쌍둥이니 번갈아 울기도 했고 합창을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루를 지냈는지 정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건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느낌과 속싸개를 꽁꽁 싸매고 머리맡에 '백색소음' 어플을 튼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끈질기게 아기를 토닥였던 나와 친정엄마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힘들게 재워놓으면 10분, 아니 어쩔땐 3분도 안되어 앵 하고 깨버리는 아기들 때문에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제대로 씻기는 커녕 밥도 먹을 수 없고 화장실에도 맘대로 갈 수 없는 시기가 바로 그 시기였다. 어떤 아기들은 바운서에 뉘여 두는 것만으로 1시간 씩 꿀잠을 잔다는데, 50일 무렵부터 밤수까지 끊고 '통잠'을 잔다는데, 내가 뽑기를 잘못 했는지 우리 아이들은 두명 중 누구도 그런 '천사 아기'가 아니었다.
100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10분 20분 씩 토끼잠을 자던 신생아 시절이 지나고 낮잠과 밤잠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100일이 지나도 아기 잠은 계속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조금씩 자지 않고 노는 시간 (말이 노는 시간이지 내내 안아달라 보채는 시간에 가깝지만)이 늘어나면서 그 시간을 잘 버텨야만 했는데, 아기들은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더욱 신경질을 내고 끊임 없이 칭얼거렸다. 그때 부터 일정 집착과 낮잠 집착이 시작되었다. 어떻게해서든 양질의 낮잠을 재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육아서와 수면교육 책과 아기 잠에 대한 블로그 등을 마구 뒤지면서 머릿속에 이론만 쌓여갔다. 아기의 수면뇌파가 45분 주기이고 그 45분을 어떻게든 연장해 주어야 아기가 긴 낮잠을 푹 자서 기분이 좋으며 아기의 '먹놀잠' 패턴에 가장 이상적인 시간표가 있고 아침 낮잠을 15분 줄이면 오후 낮잠이 30분 늘어나고 오전 낮잠을 너무 일찍 길게 재우면 새벽 기상을 하게 되고……. 오만 가지 정보가 머리 속에 돌아다니는 상태로 아기를 책 대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왠만큼 상황이 괜찮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나와 아기가 서로 하루종일 너무 행복하지 못하니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절반 정도는 성공 비슷했고, 절반 정도는 대실패였다.
쌍둥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임신 시기부터 친정집에 들어와 살았다. 친정엄마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음에도, 양육 방법에 있어서는 때로 나와 세차게 충돌했다. 엄마가 나를 키우던 시절에는 인터넷도 없는데다 육아서의 내용도 부실했다. 책으로 육아를 배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에게 알음알음 물어가며 그냥 몸으로 때워 가며 키웠던 것 같다. 그런 엄마는 나의 '책 육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는 내 의견에 따라 주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답답할만큼 완고했다. 나는 일정에 맞추기 위해 (그리고 그 일정에 적응 시키기 위해 최대한 매일 똑같이) 아기를 삼십분 정도 더 깨워 두었다가 재우고 싶은데 엄마는 아기가 졸려서 운다고 재우거나, 나는 분유 텀을 3시간으로 유지하고 싶은데 엄마는 더 일찍 먹여버리거나 하는 일이 그랬다. 지나고 보니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 나는 절실했다. 육아가 힘든 이유는 아기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그게 잠이든, 밥이든, 놀이든- 상태이고 그 요구의 대부분이 불규칙적이며 대응책이 매뉴얼로 정해져 있지 않아 엄마의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끊임 없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에 있다. 짧게 말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자 답답함이었다. 가장 근원적인 해결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 밖에 없다. 그런 중 그나마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나는 거기에 매달렸다. 때문에 그것을 존중해주지 않는 엄마가, 더 넓게는 내 양육 방법을 우습게 여기는 모든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친정 아빠도, 시어머니도, 베이비시터도 모두 책 육아에 부정적이었다. 아기가 기계도 아니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여기 모두 쓸 수는 없으니 무난한 결론을 내려보자면, 수 차례의 싸움 끝에 결국은 절충안으로 아기를 키웠다. 사실 지금도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아기들은 내 일정에 따라 낮잠 패턴이 얼추 맞춰지긴 했지만 가끔은 틀어졌다. 밤중 수유도 예정보다 늦은 10개월에 끊었고, 잠자리 분리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키워내긴 했다. 아이가 한 명인 상태에서 내가 전적으로 아기를 돌봤다면 나는 칼같이 일정을 지키고 조금 엄격한 수면교육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아기들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통잠 자는 아기가 되었을까? 알 수 없다.
이제야 깨닫지만 육아는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몰랐는지 새삼 놀랍다. 육아 선배들은 이렇게 세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아마 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육아야 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1년 가까이 키운 지금도 갓 출산한 친구가 '아기가 밤에 자꾸 우는데 왜 그러지?ㅜㅜ'하고 물어봐도 '그러게ㅜㅜ 배앓이 때문일까? 영아산통인가?'하는 두루뭉술한 답변밖에 줄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기 잠의 세계는 내 생각보다 심오한 영역이었다는 사실 뿐이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기 잠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논문이나 책으로 내는 연구분야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기들은 모두 그냥 잘 자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외국 서적 중에는 아기 잠이나 양육법에 대한 책이 많다. 요즘은 번역서로 출판도 되고 하니 학구적인 한국 엄마들, 대부분 이제 아기 잠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 수많은 전문 연구와 심도 깊은 이론에도 불구하고 아기 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기껏해야 조금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나 자주 깨는 원인 중 일부를 알려줄 뿐이다. 또는 돌이 지나서야 전체 중 절반 정도의 아기들이 통잠을 잔다는 절망적인(!) 통계수치만 알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과학도 근본적인 이유를 밝힐 수 없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이유도 없고 정답도 없다.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시도해보며 이 시간들을 흘려 보내는 수 밖에는.
이렇게 아기 잠과 전쟁을 치르면서 일부 예민한 엄마들은 나 자신의 잠과도 싸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낮과 밤이 바뀐 아기들은 아니었지만 대신 '종달새형 아기'였다. 유명한 육아서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아기들을 일컫는 말이다. 반면에 나는 날 때부터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쌍둥이와 나의 잠궁합은 최악이었다. 내가 한참 졸린 이른 새벽~오전 시간에 아기들은 깨고 보챘다. 반면 내가 전혀 졸리지 않고 자고 싶지도 않은 초저녁~늦은 새벽 시간이 아기들이 가장 깊이 자는 시간이었다. 간단한 일이다. 아기들이 잘 때 자면 되니까. 근데 그 간단한 일이 좀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아기 엄마들은 먹고 싶을 때 못 먹고 씻고 싶을 때 못 씻고 나가고 싶을 때 못 나간다. 인권이고 기본권이고 간에 아기 울음 앞에서는 모두 무효화 해야만 한다는 것이 육아의 비인간적인 면이다. 낮잠 연장을 위해 1시간 반 동안 자는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면 그런 비인간성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엉덩이가 불로 지지듯 뜨끈하고 머리도 가렵고 소변도 마려운데 아기를 깨우면 울음 잔치가 시작될까봐 참으면서. 인간을 키우는 게 왜 이렇게 비인간적이어야만 하는가, 아기는 인간이 되어 갈수록 비인간의 모습이 되어 가는 내 초상이 서글펐다. 모두 다 참았는데 잠도 자고 싶을 때 못 잔다니, 아니, 자기 싫을 때 자야 하다니. 타협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늦게 자고 오전에 아기들이 깨면 비몽사몽으로 시간을 보낸다. 정오가 지나면 좀 낫다. 커피도 마시고 정신도 돌아온다. 힘들지만 소중햐 밤 시간 만큼은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유일하게 숨통 틔는 시간이다. 때로는 이 마저도 아기 이유식이나 장난감 소독으로 할애한다. 아기 낮잠 시간에는 가끔 졸거나 핸드폰으로 필요한 것들을 주문한다. 결국 나의 총 수면량은 출산 전과 비교해 형편없이 줄었고 요즘의 나는 만성적으로 피로하다. 아기가 함께 있지 않은 침대에서 혼자 편히 8시간 이상 한 번도 깨지 않고 자보는 것이 요즘의 소원이다. 주말에 남편이 와도 한 명 씩 끼고 자야해서 쌍둥이 엄마에게 이 소원은 당분간 요원할 듯하다.
결국 '아기가 잘 때 자라'는 말이 싫은 이유는 그 말이 풍기는 비인간적 뉘앙스 때문이다. '아기가 잘 때 집안일 해라', '아기가 잘 때 운동해라' 이런 말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싫다. 아기가 자야만 사람다운 뭔가를 할 수 있는 열악함을 조언으로 포장하는 무성의함이 싫다. 아니 때로는 이것이 조언인지 '왜 애 잘 때 안 자고 피곤해하냐'하는 힐난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기를 낳으면 싫어도 24시간 엄마로 기능해야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아기 자는 시간에 스위치 끄고 아기가 깨면 스위치 켜는 로봇이 아니다. 아기가 잘 때 잠이 안 오는데 왜 자꾸 그 때 자라는 것일까. 아기가 잘 때 자기만 하면 모든 피곤과 노고가 씻은 듯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걸까.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기가 잘 때 옆에 누워 있는 것도 결국 돌봄의 연장이다. 잠 들 때까지 토닥이고 (또는 안아 흔들고) 이불을 덮어 주고 뒤척이면 가슴 철렁해하며 조금이라도 더 재우기 위해 조마조마한 맘으로 또 다시 토닥이고……. 때로 졸기도 하지만 그걸 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재워놓고 완전히 자유롭게 집안 일이나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기타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축복 받은 엄마들 뿐일 것이다. 물론 위로 차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악의가 없는 것도 알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항상 일정 정도 분노 상태에 있어서 사소한 일에도 서운한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영혼없는 상투어들이 얄밉도록 무정하다.
잠 못 드는 밤이면 눈 감고 누워 생각한다. 세상 모든 엄마들의 불면을. 그 엄마들이 뜬 눈으로 지샌 밤을. 전세계의 인구가 70억이라는데, 그 70억 명에게도 각자의 엄마가 있었겠지. 70억명 분의 불면을 상상하노라면 아주 조금이나마 틀어진 마음이 돌아 앉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유명한 글귀가 생각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 버전으로 조금 수정해보고 싶다. "통잠 자는 아기는 서로 엇비슷 하지만, 잘 깨는 아기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자주 깬다." 대략 1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만큼 엄마의 불면은 지속된다. 육아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그저 버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도 육아동지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라서 아쉽고 식상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