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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삼콩 Sep 19. 2017

아기가 잘 때 자라는 말 - 1

수면부족과 죄책감 사이

 


오늘은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깼다. 자주 있는 일이다. 아기들은 새벽에 수시로 여러가지 이유로 울며 잠에서 깬다. 너무 피곤해서 눈이 잘 떠지지 않는 채로 내가 왜 깼는지를 한동안 멍하니 생각하다가 옆에 꿈틀거리며 소리를 내는 아기가 있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여전히 눈이 뻑뻑해 실눈을 뜨고 보자 아기는 잠에서 깬지 오래인듯 눈이 말똥하다. 일단 울지 않으니 다시 눈을 감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고 싶지 않았다. 깜빡 졸다 눈을 뜨니 4시 10분. 아기는 이제 지겨운지 조금 크게 아우 아우 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도 일어날 수가 없어서 다시 졸다가 아기가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 것에 깬 시간이 4시 30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칭얼대는 아기를 뒤로한 채 분유를 타러 부엌까지 걸어가는 중 이미 맘 속에 화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잠이 너무나 절실한데 다시 잘 수 있으려면 나는 무엇인가를, 대단한 일도 아닌 너무나 사소하고도 작은 일들을 해야만 한다. 새벽 네 시 반의 사위가 너무 고요해서 더 슬프다. 다른 한 명의 아기 마저 깨우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고 조심조심 손을 움직인다.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 같은 고요.


눈을 억지로 반쯤 뜨고 젖병을 열고 분유통 뚜껑도 열고 분유포트의 물을 데우고 50 짜리 분유 숟가락 두 번, 30 짜리 두 번 넣고 160 미리의 분유를 타서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도 내 화를 식혀주지는 못한다. 비몽사몽 분유를 먹인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그 짧은 순간에도 잠을 탐한다. 누운 채 젖병을 물리고 나도 그 옆에 눕는다. 잠깐 졸고나자 젖병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난다. 비어있다. 공갈젖꼭지를 물린다. 바로 다시 잠드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고, 잠들지 않는 날은, 소설 <마션>의 표현을 빌어, 좆된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무래도 좆됐다. 아기는 다시 잠들 생각이 없다. 옆 방 아기까지 깨울듯이 큰 소리로 뭐라뭐라 자기주장을 한다. 나까지 잠이 깼다. 그러나 몸에는 힘이 없어 누운 채로 동화책도 건네주고 장난감도 쥐여준다. 길면 오분 짧으면 일이분 가지고 놀다 이내 또 소리를 지른다. 재우려고 시도한다. 아기가 온몸을 뻗대고 비틀며 안 자겠다고 짜증을 낸다. 나도 이제 폭발 직전까지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어쩌라고! 소리를 지르려다 참는다. 전에도 몇 번 그래봤지만 어차피 죄책감은 또 내 몫이기 때문에. 몇 번 더 놀아주다 그것도 싫다해서 다시 또 몇 번 재우려 시도하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찬 채 이판사판으로 그냥 둘째가 깨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눕는다. 아기의 따뜻한 숨소리, 내 어깨에 닿는 고사리 손길 마저 짜증을 유발하는 지경이 되어 그냥 존재를 무시하기로 한다. 찡찡대는 소리 조차 듣기 싫어 이어폰을 끼고 큰소리로 노래를 트는데 눈물이 주륵주륵 옆으로 흘러 베개가 축축하다. 분노의 눈물이자 슬픔의 눈물이다. 어쩔 도리가 없어 화가 나고,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불쌍하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나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잠 자고 싶다는 소박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조차 왜 이렇게 험난해야만 하나. 아기가 없던 시절 열시 열한시 까지 늦잠 자던 일상이 아득한 꿈만 같다.


이제 시간은 다섯시 반. 한시간 반 동안 씨름했는데 남은 것은 지친 나와 짜증난 아기 뿐. 이런 때에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미해결 상태의 덩어리가 등 뒤에서 계속 뒤척인다. 자고싶은데 잠은 깨버렸고, 감정은 있는대로 흐트러졌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일도 아닌 것이 참을 수 없이 답답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살고있나. 나만 이렇게 힘든가. 새벽에 잠 못 자는게 이렇게 짜증 날 일인가. 나만 이렇게 병신인가. 사고는 이제 더욱 뒤죽박죽이다. 이십분쯤 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보자 아기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늘 이렇다. 아기가 잠들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아기의 얼굴을 보며 다시 죄의식의 구렁텅이로 빠진다. 등 돌리고 무시해도 괜찮았던걸까. 상처 받았을까. 자기 싫었던걸까. 억지로 괴로운 잠을 청한걸까. 그렇다고 새벽 네 시에 불을 켜고 놀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도대체 정답이 뭘까. 가슴이 꽉 막힌 채 나도 어설픈 잠에 까무룩 빠진다. 일곱 시 쯤 둘째의 고성에 눈을 떴다. 도대체 잠을 잔건지 안 잔건지 몽롱한 정신으로 방을 나선다. 또 하루, 육아지옥의 시작이다.


육아가 힘든 여러가지 이유 중 '죄책감'이나 '자괴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을 것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에게 소리 한 번 안 질러보고 눈 한 번 흘겨보지 않은 엄마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미안함에 괴로워 해보지 않은 엄마가 있을까. 죄책감과 자괴감이 정신적 힘듬이라면 잠을 못 자는 건 신체적 어려움이다. 수면부족은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자제력도 부족해진다. 때문에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아기를 낳고서 내 안에 숨어있던 모성이 발현되기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육아는 내 내면의 폭력성과 마주하는 경험인 듯 하다. 새벽 세 시에 달래지지 않는 울음을 우는 아기를 마주할 때면 한없이 잔인해지고 난폭해지는 내 본성을 수도없이 가다듬었다. 혹시 나와 같은 증상(?)의 엄마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말 해 주고 싶다. 아기를 집어던지고 세차게 흔들고 입을 거칠게 틀어막는 상상을 했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나는 셀 수 없이 상상했으므로. 실행에 옮기지 않은 우리의 인내심에 안도하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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