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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04. 2019

영화 <로마>

#사적인 영화 37: 오래 담고 싶은 고결한 그녀, 아름답고 아름다워라.

*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Roma)>는 1971년을 배경으로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에 사는 가정부 여인 '클레오'의 일상을 따라가는, 스페인어로 만든 흑백 영화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멕시코시티로 돌아가 가장 사적이며 내밀한 소회를 털어놨다. 1970년대 멕시코 또한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 휩쓸고 지나간 격동의 시대였음을, 분열된 백인 중산층 가족 중심에 서 있는 클레오를 통해 가정 불화와 사회적 억압을 생생히 그려냈다. 클레오를 연기한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연기 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이었으나 그 어떤 전문 배우보다도 크게 마음을 움직였다. 




<로마>는 제75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최근 제91회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과 촬영상(감독이 직접 촬영) 및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감에서 클레오를 연기한 아파리시오에게 "영화를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라고 전하며, "1700만 여성 노동자가 있고, 이 중  한 명은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다. 우리는 이들을 봐야 하고, 책임을 갖고 있다. 지금 이런 책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대신, 직접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라는 예감은 적중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영화가 또 있을 수 있을까. 흑백 사이로 너울지는 빛이 구석구석 퍼져 나갈 때의 감동, 분명 흑백인데도 흑백에도 여러 가지 색이 담겨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빛의 어둠과 밝음으로도 색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음을, 아름다웠다.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직조된 영화라니, 빛의 그물 사이로 쏟아지는 포말, 장대한 자연 앞에서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불가항력,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고요한 정적 앞에 끝 모를 영원을 느꼈다. 어떤 방해 없이 '스크린'과 '나'만의 온전한 교감을 느끼며, 영화의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긴 여운에 파묻혔다. 클레오는 그 누구보다 고결하고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고요하고 깊은 눈망울, 침묵 속에 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입술. 차분하고 단단한 몸짓,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분별력, 속깊은 다정한 애정, 상처 입고도 자신을 다질수 있는 용기. 그 어떤 빛보다 우아하고 아름다워 눈이 부셨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클레오가 사산한 아이를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을 때였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한, 인형처럼 차갑게 식은 태아를 안아 든 클레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렵고 슬픈 정적이었다. 이는 곧 해변에서 주인집의 아이들을 구해내고 서로를 껴안으며 토로하는 그녀의 속내로 이어졌다. 사실 나는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그 아이는 딸이었다. 클레오는 여행 이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혼 후에도 주인의 가족은 서로 단단히 결합해 나갈 것이며, 클레오는 그들의 소중한 가족의 일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단순한 평화가 무섭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굴곡진 운명 탓이다. 어른 남성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이지만, 주인과 하인이라는 사회적 계층은 변함없기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연대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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