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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Feb 12. 2019

영화 <콜드 워>

#사적인영화36: "이제 난 당신 거야. 영원히"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월 7일 개봉)




영화 <콜드 워(COLD WAR>는 90분 내내 숨 막힐 정도로 아찔하고 강렬하다.  4:3 비율의 흑백 화면, 드넓은 눈밭을 가로지르는 지프만 봐도 추위가 스며 두 손을 맞잡는다.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는 낯선 나라의 민요, 그것을 채취하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감동스럽다. 기이한 분위기에 매료된 것처럼, 시간이 멈춘 듯 꼼짝도 할 수 없는 순간이란 이런 걸까. 정해진 기교나 멜로디 없이, 고유 언어로 이루어진 자국의 노래를 듣는 경이로움. 오래도록 숨겨진 태고의 비밀이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처럼, 그 와중에도 언제나 가슴을 치는 건 사랑 노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아픈 비극. 내일의 이별을 알면서도 오늘 당장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 그 불길한 형국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을 온통 빼앗겨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 지옥 끝까지 따라붙을 사랑. <콜드 워>는 평생 운명 같은 사랑에 지배당한 한 연인의 이야기를 차갑도록 냉정하게 보여준다. 



1949년, 도시 빈민가 출신 줄라(요안나 쿨릭)는 사정을 속이고 폴란드 민속음악단 '마주르카'에 입단한다. 입단 오디션에서 줄라의 목소리에 독특한 매력을 느낀 음악 선생 빅토르(토마즈 코트)는 불가항력으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당시 폴란드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사상을 검열했는데 어쩔 수 없이 줄라는 그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녀의 고백에 모든 상황을 알게 된 빅토르는 파리로 함께 도망가려 하지만 줄라는 끝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뒤로도 베를린과 파리를 오가며 두 사람의 가혹한 운명이 15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데......





영화 <이다>를 통해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폴란드 최초 수상한 감독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불과 5년 만에 <콜드 워>로 제7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4:3이라는 흑백 화면은 묘하게 반듯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마치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효과를 준다. 영화의 주요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심장'은 주연 배우 요안나 쿨릭이 직접 불러 더욱 신비롭고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 폴란드,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한 연인의 만남과 이별을 뚝뚝 끊어지듯 보여줌에도 절절하게 애끊는 감정선은 끊어지지 않는다. 요즘처럼 SNS를 통해 수없이 메시지를 날리고 이미지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저토록 정적인 세상이 가능했다니...... 무척 옛날이야기 같다. 약속도 정할 수 없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가 오기를 밤을 새우고, 편지도 주고받을 수 없는 극단의 물리적 이념적 거리, 국가를 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당해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에도 사랑은 있었다.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고 오래도록 탐닉하고 지쳐 싸우고 떠나도 그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흔하고 흔한 모습이다. 차가운 두 개의 심장도 녹여낼 만큼 지옥 같은 뜨거운 사랑. 



이 영화는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감독은 자기 부모의 40여 년의 러브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더 몰두했다. 절제된 연출과 흑백, 그리고 음악, 두 배우의 카리스마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뜨거움은 강렬하다. 냉전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성장배경과 지위가 서로 다른 남녀를 끌어당기는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운명의 상대처럼 둘은 부정과 갈등, 방해를 거치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한다. 누구나 꿈꾸지만 감히 가져보기 힘든 운명을 스스럼없이 불태우는 연인은 위태롭고 고통스러우며 그럼에도 아름답다. 다시 태어나도 그 두 사람은 끝내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두려움과 고통마저도 초월한 사랑을 누가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을 지속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삶과 역사, 이 세상까지 초월할 수 있는가?' 나는 엔딩을 통해 그들 사랑에 일종의 초월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정면으로 이 질문을 던진다. 시대가 변해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영원한 불가사의, 사랑의 고전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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