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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25. 2020

현실판 기생충,『착취 도시, 서울』

#20_서울 쪽방 탐사 대기록, 늪으로 들어가는 쪽방촌 생사 



가난이 부끄러움이 된 사회에서, 행여 가난의 냄새가 새어나갈까 봐 온몸을 꽁꽁 감싸고 다녔던 지난날.  


저자 이혜미 기자의 저 한 구절이 선연하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그랬다. 냄새가 난다고, 가난의 냄새, 그건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당신과 나의 경계를 만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선, 그리하여 선을 지키라는 무언의 요구이다. 『착취 도시, 서울』 (글항아리)은 영화 <기생충>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책이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택의 백수 가족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반지하에 살게 된 것일까.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이 책은 2018년 11월 종로의 국일 고시원의 화재 사건을 발단으로 낱낱이 살핀다. 아파트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등잔 밑의 어두운 쪽방촌 생태를. 현대판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옥고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이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옥고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저소득층 단신 생활자의 보금자리가 된 고시원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실판 지옥이 펼쳐져 있다. 열심히 살수록 가난해지는 세상, 하루하루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득바득 버텨보지만 늪으로 빠져들 뿐이다.  



(45) 쪽방촌 주민은 사회에 구축된 공고한 피라미드 구조 가장 아래에서, 그나마 피라미드 밖으로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삶을 하루하루 연장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개인에게 가난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난하게 늙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 창신동 쪽방촌, 저자는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직접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생태를 기록하여 고발한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르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충격이다. 게다가 힘없는 자들의 고혈을 짜내 배를 불리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 소위 빈곤 비즈니스로 부를 창출하는 건물주의 약탈적 임대 행위가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 건물마다 중간 관리인들이 세를 받기에 어느 누구 진짜 주인을 만난 적이 없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은 피라미드 구조라면 쪽방촌 사람들은 그 피라미드 맨바닥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도 없고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추워도 전기장판에 몸을 누일 수조차 없다. 물건은 벽에 걸어야 한 사람이 그나마 누울 수 있는 공간, 마치 관으로 짜인 쪽방촌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주거 환경일 수밖에 없다. 


(65) 정말로 가난해서 남은 것이라곤 생명밖에 없는 이들은 쪽방촌에서 방치되거나, 착취당하거나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주어졌다. 기본적인 인권마저 누락된 공간에서, 빈자가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스스로 죽을 권리'뿐이었다. 





저자 또한 20대의 주거 난민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거 3부작 (단칸방에 갇힌 아이들, 지옥고 아래 쪽방, 대학가 신쪽방촌)을 기획했고, 스스로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부끄러워 숨겼던 자신의 빈곤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는 계시였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가난을 토로하고 싶은 욕망마저 느꼈다고 한다. 대학가 사정도 쪽방촌과 별 다를 바 없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턱 없이 부족하며, 실제로 기숙사 신축에 대하여 일부 건물주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지방 청년들이 방 한 칸 없이 고시원을 전전하는 가운데, 건물주들은 한 칸이라도 더 월세를 받기 위해 원룸을 불법 쪼개기하며 열악한 신쪽방촌을 양상하고 있다.  


(145)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착취하진 않았어요. 사회가 이렇다 보니 결국 청년들이 '못 살겠다'며 저출생 등으로 반응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울 지역 청년 주거빈곤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겁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남성에 비하여 쪽방촌을 전전하는 여성들은 더워도 문조차 열 수 없고 공용 화장실조차 이용할 수 없다. 밤낮으로 문 닫고 고립된 하루를 보내거나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장애인도 다를 바 없다. 정부 지원금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앞 다투어 빼앗기 바쁘다. 1년에 한 번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다는 사람들,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의 조건, 거주는 큰 문제다. 햇빛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도시가 숨통을 조인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미궁 속에 빠져버린 거대한 블랙홀, 쪽방촌은 도시 난민의 잔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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