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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y 19. 2021

캐럴라인 냅의『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25_명랑한 은둔자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 여자는 왜 원하는가.



왜 이제야 캐럴라인 냅을 알게 됐을까. 내가 그녀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니 최소한 그녀의 글을 빨리 읽었더라면 조금 더 자신에게 관대 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이하, 욕구들)를 연이어 읽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명랑한 은둔자>는 적당히 경쾌하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읽었다면, ('여기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네?') 이번 <욕구들>은 내면 바닥 끝까지 깊숙이, 치열하게 자신의 육체와 감각에 파고든다. 과연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내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일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정말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진정으로 충족된 느낌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에 가까운 질문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글을 더는 읽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캐럴라인 냅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를 덮고 진정으로 묻게 된다. "나는 왜 이토록 끔찍하게 무언가를 갈망하고 갈망할 수밖에 없는가. 도대체 왜!"


 




자전적 고백에 가까운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은 수십 년의 걸친 내면 일기와 같다. 알다시피, 캐럴라인 냅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과 거식이라는 섭식장애를 오래 앓으며 관계 맺기와 불안에 휩싸인 채 살아왔다. '어렴풋이 불안하고 어렴풋이 우울했던' 24세의 그녀는 41킬로그램 근처를 맴돌며 코티지치즈 하나에 모든 식욕을 억제한다. 여성의 신체는 선천적으로 부끄러운 결함을 내포하고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관념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사이즈를 통제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여자들이 태어나 자라는 동안 줄곧 주입받는 관념이란 여성의 욕구는 처음부터 제한되고 축소되며,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고 갈망을 만족시키는 일이 가장 엄밀하게 한정되며,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이 뚱뚱한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캐럴라인 냅은 솔직하게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게 필요한 게 뭔지, 나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모든 것이 육체적 허기와 감정적 허기를 구별하여,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삶이 끝나갈 때, 다이어트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인생을 사는 데 쏟을 걸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진 육체의 이미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관능과 풍만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눈부신 매력으로 담아냈다. 


(14) 음식은 사랑이고, 사랑은 섹스이며, 섹스는 연결이고, 연결은 음식이다. 욕구들은 하나의 완결된 순환 속에, 혹은 각기 독립된 화음인 먹기와 만지기와 사랑하기와 가까이 느끼기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보완하는 소나타 속에 존재한다. 이 이미지를 창조한 르누아르는 여성의 육체가 없었다면 자신은 결코 화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고 너무나 손에 잡히지 않는, 보고만 있어도 울고 싶어 질 만큼 완전하게 조화로운 관능이 배어 있으니까.    





캐럴라인 냅은 식욕을 철저하게 수치화시키며 억제한다. 몸의 굴곡을 깎아내고 성적인 면을 제거하며 결국은 자기 보호적 측면까지 치닫는다. 거식이 주는 차가운 금속 같은 무성의 감각을 필요 이상으로 부추긴다. 삶 전체를 단 하나의 '육체적 허기'와 단 하나의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 졸아붙인 것이다. 그녀는 무엇에 그토록 굶주려 있었을까. 냅은 부모와 가족의 관계로 눈을 돌린다. 어머니를 통해 사람이 주고 또 주고도 자기 몫으로 받지 못할 때의 분노가 서린 피로를 떠올린다. 가정에서 허기를 학습하며 잔인하도록 엄격한 성별 구분에 의해 남자는 먹고 여자는 먹인다는 것이다. 집안의 여자들은 욕망에 관한 공백을 물려받는다. 자신의 열망과 야망과 좌절감을 억누르고 있는 어머니가 자녀의 기쁨과 실패에 감정 이입하며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고통스러운 종류의 죄책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148) 모든 세대는 바로 앞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의 경험은 어느 정도는 허기에 대한 어머니의 경험에 의해 형태가 잡힌다. 어머니가 가졌거나 갖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그에 비해 딸 자신은 어느 만큼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는 걸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문화적 관념과 가치관, 자유 속에 여성은 다양한 욕구적 문제에 봉착한다. 음식과 섹스, 몸에 관련된 사적 갈망이 시장에서 쉽게 소비되고 정서적 공허감으로 번성한다. 알코올 중독, 섭식장애, 쇼핑중독, 절도, 섹스 등이 좋은 먹잇감이 된다. 여자들은 욕망할 새로운 대상이 아닌, 욕망할 새로운 방법에 관해 북돋을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지만, 욕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318) 치료사가 물었다. 거식증이 당신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했던 건가요?

그것으로부터죠. 그건 바로 그 허함, 바로 그 절망과 실망의 강도, 바로 그 눈물, 항상 가까스로 흘리지 않고 버텨냈고 부인했고 굶음으로써 쫓아버렸던 그 눈물, 한마디로, 슬픔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둘 다 잠시 침묵에 잠겼다. (...) 그러니까 그 여름날의 슬픔에 대한 존중, 슬픔으로부터 보호해줄 거라는, 유혹적이지만 순전히 환상일 뿐인 굶기의 능력에 대한 이해, 슬픔이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보다 더 넓은 범위와 슬픔이 영혼 속에서 끈질기게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대한 인정이 그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내가 느낀 아픔ㅡ 외로움, 허함, 갈망 ㅡ 은 거식증 이전부터 존재했고 의심의 여지없이 앞으로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그저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오는 아픔이었다. 



캐럴라인 냅은 쉽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백 퍼센트 해결책도 치료법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볼 것, 자기 자신을 인정할 것,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것, 자신의 몸과 느긋한 관계를 맺을 것, 육체를 이기려 하지 말 것 (절대 불가능의 영역이다), 고립에서 벗어날 것,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소속감을 가질 것. 그리고 새로운 도전 거리. 냅은 조정을 통해 체중 외에 정복해야 할 무엇인가를 의식했다고 했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강하고 온전한 하나로서의 몸,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에 반응하는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마지막으로 온전히 자신을 가득 채워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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