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인 '서사 없는 디자인'에 이어 브랜드 서사를 만든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이번 글 또한 위스키 브랜드를 예시로 소개하려 한다. 디자인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화시켜 브랜드 철학을 만들고 서사로 확장시켜 시장에 각인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걸까? 위스키를 취미로 즐기면서 위스키 브랜드 서사를 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중에도 메이커스 마크의 브랜드 서사를 좋아한다. 브랜드 서사가 공감을 형성하면 더 친근하고 강하게 각인된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 서사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브랜드는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브랜드는 품질과 가격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총체이다.
Handmade Kentucky Straight Bourbon Whisky
- Maker's Mark -
메이커스 마크는 새무얼스 가문이 1680년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그 후 켄터키에 정착하면서 남은 옥수수를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웃들에게 선물용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위스키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자 1840년 후대 자손이 증류소를 상업적으로 허가받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미국의 금주법 시행으로 1919년 문을 닫고,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다시 판매를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운영하지 않은 터라 위스키의 맛은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증류소를 물려받은 가문의 후손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그런 이유로 1943년 증류소를 매각해 버린다. 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던 빌은 1952년 거금을 들여 지금의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의 부지를 사들인다. 메이커스 마크는 그렇게 시작됐다.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소는 축구장 570개의 면적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중 증류소의 시설은 5%에 불가하다. 나머지 95%는 아무런 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물 때문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부지 내에 자연 호수를 가지고 있다. 위스키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인데 상업 시설로 인해 물이 오염될까 봐 95%는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물 맛이 바뀌면 위스키 맛도 바뀌기 때문이다.
빌 새뮤얼스 시니어는 지금의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 부지 사들이면서 170년 된 가문의 위스키 레시피를 불태웠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고 부드러운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이제 이런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만드는 레시피를 매시빌(mash bill)이라고 한다. 매시빌은 곡물의 황금 배합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물을 확인하는데만 3, 4년이 걸린다. 위스키가 숙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걸리자 빌 새뮤얼스는 빵을 구워 곡물의 조합을 찾아냈다. 메이커스 마크의 매시빌은 옥수수 70%, 가을밀 16%, 맥아보리 14%다. 그리고 메이커스 마크는 위스키의 맛을 위해 소량 생산, 핸드메이드로 제작된다.
그만큼 처음에는 가격이 비쌌다. 일반 버번위스키가 2달러 할 때 메이커스 마크는 6달러에 위스키를 판매했다. 무려 3배가량 비싼 가격으로 빌 새무얼스의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가격의 차이만큼 다른 위스키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메이커스 마크는 위스키 맛이 좋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핸드메이드 철학을 기반으로 브랜드 서사를 만들기 시작한다.
메이커스 마크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맛도 좋지만 병 디자인은 내가 본 위스키 병중 가장 특이하다. 상단 밀봉이 붉은 왁스가 흘려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이 아이디어는 빌 새무얼스 시니어의 부인인 마저리 여사의 아이디어다. 또 라벨과 병 디자인 또한 그녀의 아이디어다. 그녀는 메이커스 마크의 브랜드 디렉터인 셈이다. 그녀는 가족회의 때 병의 상단 밀봉을 일일이 하나씩 왁스로 밀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들기 때문에 반대했다. 위스키가 맛만 좋으면 되지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반대했다. 그러자 마저리 여사는 대학시절 누가 공부를 잘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둘은 대학 동창이었는데 마저리 여사는 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꼴찌에 가깝게 졸업했다. 그렇게 메이커스 마크의 독보적인 브랜드 시그니처가 탄생했다. 그녀는 메이커스 마크라는 네이밍 또한 개발했다. 영국제 백랍 제품을 수집해 온 그녀는 장인들의 제품에는 항상 장인들의 표지(mark)가 새겨져 있는 것에 영감을 받는다. 장인들의 표지(Maker's Mark), 메이커스 마크라는 이름이 그렇게 탄생했다. 소량 핸드메이드로 제작되는 제조 철학과 딱 맞아떨어지는 브랜드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다. 한 마디로 위스키계의 장인이라는 이미지로 브랜딩을 한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1966년에 진행한 광고다.
대충 해석하면 "비싼 맛이 나고 비쌉니다. 4세대 켄터키 디스틸러인 빌 새무얼스의 독창적인 고전 레시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비싼 만큼 비싼 이유가 있다는 광고다. 1966년 시대 정서를 생각하면 다소 파격적인 광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1964년의 광고. 1960년대의 병 디자인을 지금까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아마 위스키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 초기 병 디자인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몇 안 될 거라 생각한다. 위스키의 병 디자인은 2~3년 주기로 매번 바뀐다. 하지만 메이커스의 병 디자인은 70년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건 처음 병 디자인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는 반증이다.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변함없는 브랜드 일관성은 브랜드 헤리티지로 굳어졌다. 그리고 약 70년 동안 동일한 메이커스 마크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멋지지 않은가! 혹시라도 다 마신 병을 버리려 하는가?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빈병은 70년 동안 유일한 하나뿐인 메이커스 마크 병이다. 그 이유는 아래 디자인 헤리티지 부분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 후 흘러내리는 붉은 밀봉을 시그니처로 현대까지 브랜딩을 전개하고 있다.
위스키는 병 디자인에 브랜드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 병의 밀봉 방식 그리고 문양 또 타이포그래피까지 병을 보면 그 위스키의 역사와 철학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로고를 살펴보자. 로고는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시각요소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메이커스 마크의 로고는 새무얼스 가문의 S와 증류소가 있는 스타 힐 농장을 의미하는 별 그리고 증류소를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장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붉은 왁스로 밀봉하는 방식은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작업한다. 붉은 왁스에 병 입구를 담그고 꺼내 놓는 방식인데, 그렇게 되면 왁스가 흘려내리는 모양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세상에 똑같은 메이커스 마크는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핸드메이드라는 브랜드 철학과 딱 맞는 브랜드 요소로 메이커스 마크를 알리는데 독보적인 시그니처가 됐다. 그리고 병의 라벨지도 사람이 수작업으로 자르고 붙인다.
한 명의 직원이 30년 동안 혼자서 하루에 라벨 6만 4,000장씩을 잘라냈다고 하니 메이커스 마크의 모든 직원들이 장인인 셈이다.
Brand New 사이트에 메이커스 마크의 새로운 아이덴티티 작업물이 게시됐다. 새롭다고 해서 리뉴얼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기존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다듬은 수준이다. New Identity for Maker’s Mark by Turner Duckworth Turner Duckworth라는 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진행했는데 기존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Turner Duckwort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Jared Britton는 "모든 세부 사항을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독특하고 지속성이 느껴지며 ‘핸드메이드’라는 브랜드 아이디어를 살아 숨 쉬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브랜드 요소는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는 곳에 일관되게 적용하면 그만큼 브랜드를 인식시키는데 유리하다. 아래 이미지는 Turner Duckworth에서 각 매체에 새롭게 적용된 브랜드 디자인 예시다.
브랜드는 일관된 서사 전달이 중요하다. 서사는 스토리가 될 수도 있고, 시각적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또 단어가 될 수도 있고 영상이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한 목소리를 내는 지속적인 일관성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브랜드 서사의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또 현대적으로 개선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 메이커스 마크 한 잔 하면서 글을 마친다.
Brand TMI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주민이 만든 브랜드라 병에 표기된 위스키 철자가 버번이지만 미국식(Whiskey)이 아닌 스코틀랜드식(Whisky)으로 표기되어 있다.
마저리 여사는 메이커스 마크의 업적을 인정받아 켄터키 버번 명예의 전당에 여성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메이커스 마크 46은 2010년 빌 새뮤얼스 주니어가 오랜 연구 끝에 60년 만에 공개한 신제품이다. 46의 의미는 도수가 아닌 46번째 테스트 버전이 제일 맛있어 46번째 테스트 버전으로 신제품을 선택하고 그대로 붙인 이름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물을 추가하지 않고 배럴에서 바로 추출한 희석되지 않은 위스키를 지칭하는 용어로 미국식 배럴 프루프가 아닌 스코틀랜드식 캐스크 스트렝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commarts.com/exhibit/maker-s-mark-identity
참고 자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48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