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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hee Park May 26. 2016

[소설](2) 오합지졸

오합지졸을 끌고 어떻게 나를 각인시킬까

3. 준비



기회였다. 


소 그리 튀지 않던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확실히 인정받는 바로 그런 기회였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공부는 뭐 나름 상위권이었지만  

1,2등을 다투는 상황도 아녔기 때문에.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고민이다. 


어떤 모습으로 날 각인시킬까. 

요새 유행하는 가수들을 연구라도 해야 하나. 그러기엔 무리다. 

우리 집엔 비디오가 없다. 

가요톱텐이라도 녹화해서 봐야 뭔가 춤 연습이 될 텐데 그것도 무리다. 



“여러분 선생님이 뭐라고 했죠? 

이건 음악회라고 했죠?”



“네~~”

건성건성 대답하는 아이들.



“여러분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 흉내 이런 건 절대 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어린이들이 하는 게 아니에요. 

애들은 왜 그런 거만 좋아하는지..

수준 떨어지게 말이야...”


누가 아니랄까 봐 이런 동네도 후진 데서 살면서 

혼자 고상한 척은 다하는 박영생 선생. 

맨날 애들 은근슬쩍 불러서 뭐 사와라 시키는 주제에 바라는 건 많다. 



애들이 가수 따라 하는 게 뭐 어때서 하루 종일 풍금에 맞춰 미루나무 부르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그게 시류다. 


뻔하다. 

자기도 학생일 땐 저 푸른 초원 위에나 불렀을 텐데. 



그나저나 걱정이다. 

기가 막히게 가수 흉내내면 

그거야말로 확실한 각인을 시켜주면서 입지를 한방에 굳히는 건데...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 




나는 나름 친한 친구들 몇몇 사이에선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얘기가 끝나고 쉬는 쉬간이 되자 

승범이, 정수, 미애가 나에게로 어김없이 뛰어 왔다. 

애들 얼굴을 무심코 쭉 보니 한숨이 나온다. 



리더도 어느 무리에서의 리더 이냐가 중요한 법. 


유치원도 같이 나온 애들인데 어찌 이렇게 한숨이 나오냐. 

얘네를 꾸려서 어떻게 이 험난 파도를 헤쳐갈지 벌써부터 막막해진다.



“미란아 너 좋은 생각 없냐”


“글세.. 아직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서태지 따라 하면 어떨까”


“야 그러기엔 우리가 네 명이잖아”


답답하다. 



담임이 그렇게 가수 흉내 내지 말라고 하던걸 

얘네는 콧구멍으로 들은 걸까 

그러나 그렇다고 신경질을 확 내면 리더인 나의 인덕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담임이 아까.. 가수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나..?” 

확 끓어오르다가 확 가라앉은 냄비 속의 물처럼 나직이 내뱉었다.


“그래 맞아 너네 왜 그것도 기억 못하니” 

그나마 좀 똑똑한 미애가 승범이와 정수를 나무라듯 질책했다. 


“미란이 너라면 좋은 생각을 가졌을 것 같다. 

오 미란아! 나의 잘못을 용서해다오 

네가 하는 거라면 난 끝까지 따라 한다. 

미란아 난 너만 믿는다 오 미란아!!"


옛날부터 나를 좋아한다며 졸졸 쫓아다니는 승범이는 이렇게 늘 촐싹댄다. 

키는 나보다 작고 비쩍 말라 가지고 어림잡아 돌잔치부터 때

지금까지 쭉 입어도 저렇게 헤질 것 같지는 않은 미키마우스가 덧 데어 져 있는 청바지, 

어디서 구했는지 볼품없는 목걸이 볼펜을 목에 척하니 매달고 있는 승범이를 볼 때마다

이걸 내처 야한지 아쉬운 김에 데리고 있을지 아직도 갈등 중이다. 

중요한 순간에 어찌나 그 후진 목걸이 볼펜을 들고 강조하는지 

저 볼펜을 다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다.


“가요는 안되니까 좀 더 참신한 게 필요한데…

우리 중에 누가 딱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혹시 악기 다룰 줄 아는 사람 있나?”


“리코더!!” 

미애가 선창 했다


“너무 흔해”

퉁명스럽게 내가 대답했다.


“그럼 캐스터 내츠랑 트라이앵글 같은 건 어때?” 

미애가 또다시 말했다.


“그것도 너무 흔해. 참신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미란이에게 좀 더 시간을 주자. 

미란이는 우리랑 다르니까 말이지”

승범이는 내 눈을 쳐다보며 능글맞게 얘기했다. 

거기다 대고 내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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