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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hee Park Jun 02. 2016

[소설](3)지친 귀갓길


귀갓길은 늘 그렇듯 제대로 들어간 적이 없다. 

집에 가봐야 우리 집은 엄마가 좁은 집에서 유치원 애들을 데리고 

피아노를 가르치시기 때문에 북적북적 댈 뿐이다. 

어디서 조용히 앉아 나만의 생각을 할 공간조차 없다.


“너네 엄마 피아노 가르치시지 않아?”

 미애가 물었다.


“응.”

대답하기 살짝 부끄러운 질문이다.


“그러면 너도 피아노 잘 치겠네”


나는 우리 엄마가 제대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걸 단 한 번도 본적이었다. 

늘 뭔가 앞부분만 치다 말다 한 것만 여러 차례 봤을 뿐이다.



“너 나 치는 거 봤어?”

엄마는 진짜로 피아노를 칠 줄 알까 


“아니”


“붕어빵집 딸이 붕어빵 잘 굽냐”

내가 피아노를 못 치는 걸 봐선..


“아..”

아닌 거 같다.




생각해보니 별로 그럴싸한 표현도 말도 안 되는 표현이었지만 

순간 내가 튀어나간 말이 괜스레 있어 보였다. 

미애는 역시 미란이란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미애와 난 학교 후문에 있는 리어카 아줌마에게로 갔다. 

리어카 아줌마는 어느 학교에나 있을법한 불량식품을 파는 아줌마였다.

뽑기니 쫀듸기니 아폴로 맛 기차 콘 등을 파는데 그중에서도 

아줌마가 직접 만들어오는 미니 김밥이 맛이 좋았다. 


비록 당근과 단무지밖에 안 들어가지만 짭조름하면서 한입에 쏙 들어오는 게 

뭐 적당히 초등학교 애들 수준의 입맛엔 그만이었다.  

미애와 난 주저 없이 그 김밥을 사 들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리어카 아줌마의 손이 눈에 와 닿았다. 

아줌마의 손은 그날따라 유난히 까맣고  손에 때가 가득했다. 

그 손으로 김밥을 건네주는데 평소와 다르게 신경에 거슬렸다. 


순간 먹고 싶지 않았다.


“미애야 너 이거 먹을래?”


“왜? 너 이거 좋아하잖아”


“아니 오늘은 그냥 갑자기 배가 좀...”


차마 그 아줌마 손이 더러워서 먹기 싫단 말은 하지 못했다. 

더러우니까 너나먹으라는 꼴이 되니까. 


“나도 오늘 배가 좀 아파서 너 그냥 다 먹으라고 하려고 그랬는데...”


“나 사실 아침부터 배가 너무 아팠어... 아침에 청국장을 먹었는데 

그게 이상한가 봐 그게 원래 썩힌 음식 이래잖아.. ”


구체적인 거짓말이다.

 게다가 그럴싸하다. 

설마 미애도 손을 본건 아니겠지.


 내가 아는 미애는 그렇게 예민한 애가 아닌데. 

그때 갑자기 승범이가 나타나더니 그 아줌마와 버금가는 까만 손으로 

미애의 손에 들려있던 꼬마김밥을 자기 입속에 쏙 넣어버린다.


“이미애 미안. 우리 미란이 꺼는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우물우물 크크크 크”


“야 우승범!”


승범이는 입술에 밥풀을 흘려가며 뒷걸음으로 뛰어 도망가고 있었다. 

이젠 맘 편하게 내 김밥을 미애에게 양보할 수 있다. 


“미애야 마침 잘되었네 난 배 아프고 승범이가 빼앗아 갔으니

네가 그냥 먹어라 나 진짜 괜찮다니까”


“정.. 정말이야?”


미애의 눈이 오초 전까지 울듯 하더니 갑자가 눈가에 생기가 돌았다. 

미애는 내가 건네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다. 

미애는 별로 예민한 애가 아니다. 

아줌마의 손 따위는 못 본 것이다.

 \

미애와 내가 집으로 오기 마지막 건널목까지 우린 그렇게 말이 없었다. 

나도 미안했지만 미애도 나에게 미안한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꾹 참고 입속에 처넣으면 될 걸 

괜히 청소도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머리도 일주일에 한번 감을까 말까 하는 주제에 

깨끗한 척했다가 괜히 어색해지기만 했다. 


“헤.. 맛있다. 고마워 미란아”


“아니야 내가 배만 안 아팠어도 내가 먹었을 텐데 아쉽다 야”


마지막 기막힌 연기력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이럴 때만 승범에 에게 고마운걸 봐서는 아무래도 승범이를 내치지는 말아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난장판이었다. 

걸어 다니는 청소기인 엄마에게도 이것만은 무리였나 보다. 

가난한 살림에 살림에라도 좀 보태보겠다고 시작한 엄마의 부업 피아노 가르치기가 

이렇게 우리 집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집에는 근처에 사는 나보다 세 살 어린 가희라는 꼬마애와 

가희의 언니 가경이 두 가 자매가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가희는 그 작은 몸으피아노에 앉아서 몸을 배배 꼬면서 

피아노를 치는 둥 마는 둥 했고 엄마는 연신 볼펜으로 가희의 손을 치면서 

똑바로 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고 신경질을 내가며 가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가르쳐봐야 받는 돈은 몇만 원 안되지만 엄마는 그것조차 아쉽겠지.  

가경이는 자기의 차례가 올 때를 기다리며 내 장난감들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있었다. 

내가 아껴 마지않는 마론인형들 그리고 나름 홈질 박음질로 만들어 놓은 옷을 

이리 입히고 저리 입힌 흔적들이 역력했다. 


올해 설날에 받은 세뱃돈으로 거금을 들여 엄마가 맡겨 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확 사버린 바비는 이미 수십 차례 옷을 갈아입고 

수십 차례의 파티와 무도회를 겪고 나서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가경아 이거 그만 가지고 놀아”


가경이는 지도할 말은 없는지 내 눈과 엄마의 눈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미란아 닳기라도 하냐 좀만 가지고 놀게 해라 어차피 금방 레슨 해야 해”


싸우기도 힘든 나는 집에 내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내방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동생이랑 쓰고 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 층 침대와 책상이 들어가면 꽉 차버리는 내방엔 

쓸쓸히 서태지와 아이들 브로마이드에서 현석 오빠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위로 올라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털썩 누워버렸다. 

천장을 보아하니 공부 열성이 뛰어난 울 엄마는 언제 붙여놨는지 

한자를 외우라고 천정에 잔뜩 붙여져 있다. 


누워있기가 무섭게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 

내려오자마자 부엌으로 가버렸다. 

저 지긋지긋한 두 가 자매는 피아노를 치면서 인형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면서 

끊임없는 수다를 떨고 있는데 엄마는 애들 비위를 은근 맞춰주는 듯했다. 


내 말은 콧등으로도 안 듣더니

부엌엔 초코파이가 한 개 남아있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진한 초코맛도 아닌 것이 흐물거리는 

마쉬맬로우가 있는 저 초코파이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다. 


한국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다 초코파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야속하다. 

차라리 그냥 카스타드나 플래시 베리를 사다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더 달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게 그게 더 맛 좋은데...


가희 차례가 끝난 듯 보였다. 

내 마론인형의 두 번째로 가희에게 겁탈을 당하기 전에 탈출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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