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좀 가만히 놔두세요~
얼마 전 옆자리에 앉은
유부남 남자 선배의 말이 깊게 와 닿아 몇 자 적어본다.
그 선배는 차분하고 긍정적인 성격에 가족도 화목한 편이다.
성인이 된 두 아들도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고,
누가 한국의 부자지간이 불편하다고 하냐고 할 만큼 자식과의 사이도 돈독하다.
퇴근 전엔 항상 와이프와 친구처럼 통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선배가 한 번은 저녁을 먹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누라가 집안일을 참 잘하긴 해.
근데 얼마 전에 마누라가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간다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도 안 개고 양말이니 속옷이니
다 내팽개치고 회사를 왔지.
평소 같으면 마누라가 다 치웠겠지.
퇴근해서 들어가는데 그게 고대로 있는 거야.
근데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진짜 편안하더라-"
나는 그때 너무 큰 충격과 공감을 받았다.
지금이야 열심히 치우는 편인데 나도 참 어릴 때 지저분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내방을 깨끗이 치워놨었다.
엄마는 사람이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깨끗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냐면서
방을 잘 치우지 않는 나에게 늘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데 난 그것이
좋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 물건에 이리저리 손댄 것이 싫었다.
내 친구는 정리병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리를 진짜 잘한다.
결혼 후 정리 정돈하는 것은 살림에 큰 도움이 됐다.
친정엄마와 그렇게 가깝지 않던 그 친구는
친정엄마가 결혼 후 그간 딸에게 미안했는지
임신한 딸에게 연신 과일을 한 박스 두 박스씩 사다 나르셨다.
친구는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차피 다 쓰레기 되는 거라며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포지티브'한 것들인데
00을 위해
청소해 주는 것-
밥을 해주는 것-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
무엇을 사주는 것-
위로를 해주는 것-
등등은
어쩌면
그냥 청소 대신 내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
밥 먹을 시간보다 잘시간을 더 주는 것-
돈을 많이 벌어오지 않아도 나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 주는 것-
사주기보단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것-
위로를 해주는 것보다 가끔은 가만히 내버려두어 주는 것-
이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어쩌면 원치 않는 배려가 아닐까.
물론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 당연히 고마워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당연히 좋아하겠지 란 생각도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