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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세 May 09. 2021

Metaverse는 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현실이란 무엇일까 ?

1. Metaverse란 ?
안다. 이런 용어 정의가 얼마나 지루한지. 학교에서 지겹도록 듣던걸 또 들어야 하나 생각할거다. 하지만 용어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만 이해해도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만약 Metaverse에 투자할거면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난 언어적 변태들1)이 쓴 글을 혐오한다. 의외로 이해하기 쉬울 수 있으니 한번만 믿고 읽어봐라.
Meta라는 접두어를 현대적 의미로 처음 사용한 건 Metaphysics(형이상학)라는 단어이다. Meta는 그리스어에서 ‘~다음에’라는 뜻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스승의 저서를 편집하면서 자연학(Physics) 다음에(Meta) 형이상학(Metaphysics)을 위치시키면서 그 의미가 변형되어 ‘~를 초월한’ 또는 ‘~의 기저에 깔린‘, ‘~의 본질에 관한‘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다. 형이상학(Metaphysics)이 눈으로 보이는 세계(Physics)를 초월한(Meta) 세계에 대해 다루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Meta에 Universe가 합성된 Metaverse라는 용어는 닐 스티븐슨의 Snow Crash(1992)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물리적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책의 내용상2) 저자는 현실(universe)을 초월한(meta) 세계라는 의미로 Metaverse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여러분은 ‘그렇다고 PC속에만 존재하는 Metaverse가 어떻게 물리적인 현실보다 더 중요해질 수가 있는가?’라는 아주 상식적인 의문을 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미 우리는 가상현실속에 살고있다.


2. 현실(universe)이란 무엇일까? – 현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매우 부실하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에 대한 의구심은 역사가 깊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이런 의구심의 대표격으로 볼 수 있는데, 플라톤은 우리는 동굴 안에 살고 있으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동굴 밖(이데아, 진짜 현실) 존재들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수학과 기하학으로 진짜 현실(이데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훗날 과학혁명의 기반이 된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물들이 물리적인 현실에 대한 의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사피엔스)는 허구에 대한 믿음 덕분에 생존했다.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지능이 높고 신체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는 사피엔스가 부족, 국가와 같은 허구의 존재를 더 잘 믿었고, 그로 인해 더 큰 집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허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객관, 주관, 상호주관의 개념3)을 이해해야 한다. 믿음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자동차, 집, 음식과 같은 것들이 객관적 존재이다4). 주관은 한 사람의 머리속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한 사람이 그 믿음을 버리면 사라진다. 반면 상호주관은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믿는 허구이다. 상호주관은 그것을 믿는 사람 대부분이 죽거나 그 믿음을 버려야 사라진다. 그래서 국가나 돈 같은 강력한 상호주관의 존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5). 하지만 현실과 같이 모호한 개념은 어떨까?
산업혁명과 물질적인 풍요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물질적인 형태를 갖는 것이 현실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하지만 국가와 다르게 현실이 무엇인지는 그 근거가 매우 부실하다. 우선 현실에 대해 (국가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는)법률만큼 권위있고 보편적인 정의가 없다. 현실이 무엇인지는 일부 철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들이 신경 쓸 뿐 보통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현실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이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세 유럽에서는 전쟁 중 팔이나 다리가 잘리고도 붕대만 감고 다시 나가 싸우는 사례가 많았다. 우리에게 죽음은 세상의 끝이고 가장 피해야할 것인 반면, 중세의 유럽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영애로운 것이었다. 죽음후에 갈 천국6)은 덤이다. 나폴레옹은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인물이지만7), 그가 한 많은 전쟁이 정복전쟁 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데 왜 나폴레옹은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의 카테고리에 포함될까 ?
돈이나 국가가 허구이듯이,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허구이다. 게다가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아주 부실하다. 그렇다면 가상의 Metaverse가 현실이 될 수는 없을까 ? 현실에 물리적인 공간이 꼭 필요할까 ?


3. Metaverse가 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 게임은 가치를 생산한다.
Metaverse의 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음식을 생산할 수 없다. 하지만, 음식만큼 중요한 가치는 생산할 수 있다. 왜 수조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할까? 검소한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사례를 보면 그 돈으로 더 좋은 집이나 차를 사려는 것 같지는 않다. 자식을 위해서도 아닐 것이다. 전재산을 기부한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돈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우리는 돈 벌어서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좋은 집과 차는 왜 필요할까? 만약 좋은 차가 인간에게 객관적으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면 이렇게 다양한 차종이 있을 필요는 없다. 모두가 객관적으로 좋아하는(인체공학적이고, 적당한 마력을 가졌으며, 황금비율로 디자인된) 차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새로운 차를 원하지 않는 시점이 생겼을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좋은 차는 유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좋은 차는 그 차를 소유한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필요하다8). 많은 분들이 이런 건 허영심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 비싼 차를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차를 원하는 이유와 우리가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같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라는 게임 속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나의 삶이 의미 있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하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면, 그래서 아무도 당신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9) 당신의 몸이 숨쉬고 있더라도 그런 당신을 현대적인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10)
세상에는 가족, 사랑, 예술 등 아주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이던 사회적이던 모든 가치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규칙과 기준을 가진다는 점이다. 규칙과 기준 없이 가치를 생산할 방법은 없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도 규칙과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 플레이하면 레벨이 오르고 좋은 아이템11)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고 성과급을 받는다. 규칙이 훨씬 복잡하긴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12)가 되고 좋은 차를 얻는다. 그렇다. 당신의 직장도, 자본주의도, 온라인게임도 모두 규칙과 기준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게임 중 하나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책임이 생기고 내 마음 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가치는 돈이나 국가처럼 허구적인 개념이어서 물리적인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물리적인 현실과 마찬가지로 Metaverse 안에서도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지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며, 다른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


4. 게임의 규칙은 변하고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왕과 교황이 누가 최고인지 겨루던 중세시대는 무려 1000년이나 지속된 반면, 자유민주주의가 생겨난 지는 이제 막 100년이 지났다. 중세보다 한참 전인 기원전 5세기경 이미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류의 역사는 항상 발전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최종적인 규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게임산업의 성장과 가상화폐의 성공은 가치를 생산하는 게임의 규칙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화폐는 완전히 가상의 자산이다. 그 가치를 뒷받침하는 기업도, 국가도, 그 어떤 물질적인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일 거래액 기준 한국의 가상화폐시장은 주식시장 대비 20조나 더 크게 성장했다. 최근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된 트레비스 스캇의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에 비해 10배의 매출을 올렸다. 사람들은 점점 가상현실에서 가치가 생겨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Covid19를 계기로 물리적인 공간 없이 온라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AI의 등장과 자동화는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역할을 더 추상적인 영역(소프트웨어, 디자인, 예술 등)으로 인도할 것이다. 만약 어떤 Metaverse 게임이 현실과 충분히 연결되서 게임을 통해 화폐를 얻고 그 화폐로 음식13)과 주거공간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 Metaverse 게임은 인간의 물리적인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지도 모른다.


1) 헤겔, 니체, 라캉 등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저자들을 말한다. 난 그들이 글을 쓴 이유가 일종의 배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변태들이다. 독자를 의식하고 쓸 수밖에 없는 글을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쓰다니. 역시 변태들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 글을 쓰는 주요한 이유가 배설이지만, 난 그들과 다르게 친절하다.
2)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잠깐만, 후아니타. 확실히 얘기해봐. Snow Crash 라는거 말이야. 바이러스야? 아니면 마약이야? 그것도 아니면 종교?” 후아니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서로 다를 게 뭔데 ?”] 물리적 현실에만 존재하는 마약을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비교하면서 그것들의 차이가 의미 없음을 말한다.
3)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용
4) 물론 이 역시 인간의 눈이라는 알고리즘을 거쳤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색맹이 아닌 인간들에게만 객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인간과 다른 알고리즘의 눈을 가진 외계인에게는 자동차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적외선 파장대의 빛을 볼 수 있는 뱀이 인간과 다르게 세상을 보듯이. 그렇다면 과연 인간, 외계인, 뱀 중 누가 본 것이 진짜 자동차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은 객관적인 세계를 알 수 없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인식의 선험적 틀(인간의 감각기관과 사고체계)을 거치지 않고 서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대물리학이 증명해낸 것은 인간이 어떤 대상을 조작하지 않고(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전자의 이중슬릿 실험으로 여러 번 검증된 바이니 믿어도 된다.
5) 그러나 역시 국가나 돈은 상호주관이고, 허구이다. 사실 인류(사피엔스)는 허구를 믿는 능력 덕분에 살아남았다.(자세한 내용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참조)
6) 기독교에서는 천국, 바이킹(영국인들의 조상)들은 발할라라고 불렀다. 맞다. 영화 Mad Max에 나오는 그 발할라다.
7) 사실 나폴레옹은 애초에 민주주의 따위에 관심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셀프로 황제가 됐으니까.
8)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에 따르면 자동차 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가 같은 이유로 행해진다. 간단히 요약하면, 모든 소비는 자신을 하위집단으로부터 차별화 하거나 상위집단과 동일시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9) 만약 아무도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본 척하지 않는다면, 과연 당신이 인간으로서 이세상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10) 물론 인간만도 못한 인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은 뒤로하고- 악한 인간이 되는 것 역시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악한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음으로써 자신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반면 나쁜 가치도, 좋은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조차 할 수 없다. 즉, 인간으로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물론 동물로 살아가도 된다. 하지만 동물로 사는게 매우 어려운 게, 현대의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을 독립된(자유로운) 개체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해야만 한다. 즉, 나는 내 사수인 영철도 아니고, 내 팀장인 상훈도 아니고, 동기인 민철도 아닌 누군가로 정의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자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아는 국가만큼 강력한 상호주관이다. 사실 이런 질문까지 할 정도면 인간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아’를 믿는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종교로써.
11) 모든 게임은 무엇이 좋은 아이템인지, 무엇이 좋은 케릭터인지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은 성립할 수 없다.
12) 자본주의에서 돈은 가치의 기준이다. 자본주의에서 당신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잘 살고 있고, 당신이라는 존재가 가치 있다는 뜻이다.
13) 온라인상에서 작물을 재배하면 현실로 작물을 배송해주는 게임은 이미 출시됐다.


PS. 최대한 쉽게 쓰기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가치처럼 모호한 개념을 포함해서 설명하느라 엄청 힘들었다. 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고, 만약 Earth 2라는 Metaverse 게임에 투자할거라면 게임내에서 구매할 때 내 Referral Code를 사용해주시길 바란다.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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