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이직하며 느낀 점_첫 번째
나의 내면 관찰
14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게 됐다. 그것도 해외로.
내가 회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14년 동안 딱 두 번이었다. 5년 전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팀장이 있었고, 난 회사를 존중하므로(지금까지 거의 15년째 해당산업에서 글로벌 1st인 회사를 어떻게 존중 안 할 수 있을까?) 나보다 더 회사입장에 가까운 팀장의 판단이 선이므로, 내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회사의 최종면접까지 갔으나 언어적인 이유로 탈락했다. 그러다 그 팀장이 먼저 회사를 나갔고 내가 회사를 나가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그 이후로 최종면접까지 갔던 회사로부터 연락이 오고 실리콘벨리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난 이직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다시 이직을 생각한 건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사업이 중단됐고 올해 마지막 직급으로 진급하면서 책임지는 업무에 새롭게 도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에 도전해야 한다면,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더 대우가 좋은 새로운 회사에 가서 도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링크드인에 처음 지원한 회사에 합격했다. 사실 그들의 요구사항과 내 업무경험이 너무 잘 맞아서 지원하면서도 합격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이직을 결심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나에 대한 인식도 생겼다. 다음은 이번 이직을 통해 내가 느낀 것 들이다.
1. 나의 정체성에서 회사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최근 내가 가장 중요시했던 개인사업이 중단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업무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했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14년이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인생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어려웠지만 나는 결국 회사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회사일에 사용한 시간과 그간의 역경을 고려하면 내 정체성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당연했다.
2.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외국 회사에 대륙을 옮겨가면서 이직하는 건 많은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회사에서는 얼마나 성공적 일지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물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는 게 절대적으로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그런 태도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고, 그런 태도가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새로 산 갤럭시워치 울트라가 좋다. 디자인도 맘에 들고 성능 개선도 체감된다. 난 이런 자본주의 산물을 즐긴다. 수백 년간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 양자의 세계를 관찰하고 빅뱅을 설명하는 과학을 긍정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다.
3. 감정은 이성과 따로 논다. 역시 인간의 두뇌는 환경에 의존한다. 계약서에 사인을 완료하고도 이직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이직하는 게 확실했다. 내가 결심을 굳혔고 쌍방의 계약서 사인이 완료됐으므로 만약 이직할 회사에서 취소하려고 해도 내가 소송하면 된다. 회사도 이걸 알고 있고 따라서 잘라도 일단 입사시킨 후 자르지 입사자체를 취소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의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퇴사를 실감한 건 보안카드를 반납할 때였다. 더 이상 회사건물 안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게 된 때였다. 보안카드와 회사건물이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출근은 안 하지만 똑같은 집에 살고 있으므로 이직 느낌도, 퇴사 느낌도 잘 안 난다.
기대와 두려움을 동반한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발견하게 될 내가 기대된다. 미래에 나는 어떤 인간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