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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모 Mar 15. 2021

색깔론의 덫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

굿나잇 앤 굿럭(2005) & 트럼보(2015)




 제1, 2차 세계대전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구 소련은 전쟁이 끝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눠져 냉전 체제에 돌입한다. 허나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동맹 탓에 미국 사회 곳곳에는 공산당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1950년대 초,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며 나타난 조셉 매카시 의원. 그는 조사위원회를 내세워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심문을 일삼았고, 이내 미국 전역은 레드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매카시는 미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길 원했다. 공무원들을 비롯한 민간인들도 사상검증을 강요받았고 매일같이 적색 공포에 시달렸다. 특히 언론•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크나큰 억압을 견뎌야 했다. 보도 내용뿐만 아니라 창작물까지도 통제하는 시대였다.



 오늘 소개할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의 에드워드 머로와 <트럼보>의 달튼 트럼보는 그 당시 매카시즘에 전면으로 대항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 매카시즘을 깨부순 치열한 언론 현장, <굿나잇 앤 굿럭>

애드워드 머로 역의 데이빗 스트라던. 그 외에도 패트리샤 클락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조지 클루니 등이 출연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CBS의 간판 뉴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SEE IT NOW"를 진행했던 에드워드 머로는,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던 탄압에 끈질기게 맞선다. 프로듀서인 프레드 프렌드리와 함께 그들의 방송을 걸고 매카시의 횡포를 고발한 것이다.


 물론 자유를 되찾기 위한 행보는 녹록지 않았다. 온갖 외압이 그들을 가로막았으며, 방송가와 정치계 권력층들은 협박을 해왔다. 하지만 대국민적인 지지에 힘입어 계속해서 매카시를 추적할 수 있었고, 결국 언론의 진정한 가치를 증명해낸다.



 이와 같은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소위 ‘트위터 정치’를 통해 수많은 망언을 설파했. 무슬림 비하 발언, 북한에 대한 도발, 오바마 전 대통령 모함, 실제로 이행한 멕시코 장벽까지. 그는 SNS라는 문화적 도구를 이용하여 매카시가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갔다. 무분별한 선동으로 국민들을 휘젓고 상대편 진영을 깎아내렸던 트럼프는 매카시즘에 이어 트럼피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 절대로 굴하지 않는 괴짜 작가, <트럼보>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주연으로 알려진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트럼보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출처: 네이버 영화)



 비슷한 시기, 천재 시나리오 작가인 달튼 트럼보 역시 매카시의 예술계 탄압으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조사위원회의 물음에 진술 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10"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본명으로는 작가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가명을 이용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10여 년간 할리우드의 뒤편에서 유령처럼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친구의 이름을 빌려 쓴 <로마의 휴일>이 오스카상을 안겨줬다. 이후 <브레이브 원>으로 두 번째 오스카를 받고 나서는, 시나리오의 진짜 주인이 트럼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스파르타쿠스> 엔딩 크레딧에는 '달튼 트럼보'의 이름이 그대로 올라간다. 블랙리스트가 완전히 무의미해진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조리는 멀리 있지 않다. 몇 년 전 드러난 한국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문화적 매카시즘이 작동된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때의 문체부는 문화융성 사업이라는 거짓말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왔다. 지지 성향에 따라 문화예술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권력 개입이 여실히 밝혀진 사건이다.








 과연 정치세력이 매카시즘을 통하여 방송이나 예술작품 등의 대중문화를 검열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문화에 대한 통제가 곧 국민들의 의식을 통제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머로가 말했듯, ‘우리(방송언론)가 제대로 쓰지 않으면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하다. 연일 TV와 라디오, 인터넷에서 철저히 검열된 뉴스만이 송출되고 극장 영화마저 자유롭지 못하면, 대중들이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지기는 힘들다. 조작된 콘텐츠만을 접하고 있으니 문밖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정보가 전달될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과 같다. 이처럼 대중이 무지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여론을 조종하는 것이야말로 권력가들이 원하는 바이다.



 과거 '드루킹'과 국정원 댓글 공작 사태 이후로, 포털 사이트의 뉴스 기사에는 댓글란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 조작, 서바이벌 프로그램 순위 조작 등등... 이렇게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공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객화되고 심리를 조작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매카시즘에 선도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앞서 다룬 영화 <트럼보>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는 무수한 좌절에도 주저앉지 않고, 11개의 가명을 돌려쓰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곤 1970년 전미 작가조합에서 로렐상을 수상하기에 이르고, 1993년 <로마의 휴일>로 수상한 오스카 트로피를 돌려받으며 잃어버린 영광을 모두 되찾는다.


해당 인터뷰 영상 中 리포터가 물었던 질문은 '오스카상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트럼보의 실제 인터뷰 영상이 삽입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우린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트럼보와 머로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매카시즘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색깔론의 덫을 피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스스로의 이름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애드워드 머로의 멘트를 빌려,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다.

다들 Good Night and Good Luck!





Ps. <굿나잇 앤 굿럭>과 <트럼보>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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