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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모 Mar 16. 2021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




병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마틴과 루디.
마틴은 뇌종양, 루디는 골수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이다.
죽기 전에 바다를 보는 것이 소원인 그들은 무작정 차를 훔쳐 병원에서 달아난다.
그런데 하필 훔친 차가 마피아 조직의 소유!
자동차로 모자라 돈까지 훔친 그들의 뒤를 경찰과 마피아가 앞다투어 쫓는데…




 1997년에 개봉한 독일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색과 빛'을 이용한 연출로 이야기 곳곳에 여러 가지 암시와 상징을 숨겨놨다.





     ※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속 상징적인 '색깔'들

(1) YELLOW : 즐거움, 에너지 / 엉뚱, 멍청함

즐거움, 에너지의 Yellow


 이제 막 시한부 판정을 받은 루디와 마틴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병실에서 테킬라 한 병을 발견한 그들은 레몬과 소금을 찾으려고 병원 조리실을 마구잡이로 뒤진다. 레몬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돋보인다. 여기서 레몬의 노란색은 즐거운 에너지를 상징하고, 앞으로 유쾌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엉뚱함, 멍청함의 Yellow


 한편 보스에게 벤츠를 배달하는 중이던 덜떨어진 마피아 콤비는, 남자아이를 차로 치는 사고를 낸다. 아파하는 아이에게 뜬금없이 바나나를 건네며 사과하는데, 당연히 병원이나 데려다 달라며 면박만 당한다. 바나나의 노란색은 이들의 엉뚱함과 멍청한 면모를 보여준다.




(2) BLUE : 바다, 이상향, 천국

데킬라를 나눠마시는 루디(좌)와 마틴(우)


“바다를 한 번도 못 봤어?”

“응… 단 한 번도…”
“우리는 지금 천국의 문 앞에서 술을 마시는 거야.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걸 못 봤단 말이야?”
“정말이야 본 적 없어.”
“천국에 대해 못 들었나? 그곳엔 별다른 얘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근데 넌 별로 할 말이 없겠다. 입 다물고 있어야지, 바다를 본 적이 없으니까.

...소외감으로 겉돌 거야.”



 레몬이 나뒹구는 조리실 구석에서 테킬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 살면서 단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루디의 말에 마틴은 깊게 탄식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 가고자 결심한다.



바다로 가는 이들이 선택한 바다빛 자동차!


 주차장에 세워진 베이비 블루색 벤츠를 발견한 그들은 차를 훔쳐 도망가는데, 바다로 떠나는 이들이 탄 차의 색 또한 바다 빛깔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파란색은 바다의 색으로, 이상향(천국)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3) GREEN 역경, 장애물 vs RED 저항, 반항

역경, 장애물의 Green

 하필이면 마피아의 차를 훔친 것도 모자라서 온갖 사고를 치는 바람에 경찰마저 따돌려야 하는 마틴과 루디. 그들은 중간에 빨간 차로 갈아타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뒤를 쫓는 독일 경찰차의 색깔은 초록색이다. 경찰과 마피아 무리에게 둘러싸인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의 앞을 높은 수풀이 가로막고 있다. 이 초록색은 주인공들을 가로막는 역경과 장애물을 뜻한다.



저항, 반항의 Red


 뒤이어 경찰과 마피아를 피해 수풀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빨간 자동차와 초록 들판의 보색 대비가 훌륭하다. 위 장면에서 빨간색은 장애물(초록)에 맞서 저항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4) PINK 사랑 & RED 섹스

사랑의 Pink


 바다에 도착하기 전,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달성하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 마틴의 소원은 앨비스의 팬인 어머니에게 핑크색 캐딜락을 선물하는 것! 감동받은 마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난 면허가 없단다. 그리고 너도 앨비스가 아니잖니..”


 핑크색 캐딜락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섹스의 Red


 루디의 소원은 ‘두 명 이상의 여자와 자는 것’이었다. 결국 유흥업소를 찾은 루디는 목표를 달성한다. 가게 간판은 짙은 분홍빛에 가까운 빨간 네온사인이며, 내부 인테리어는 붉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퀀스에서 붉은색은 성적인 느낌이 다분하다.






         ※주의※ 결말 포일러가 나옵니다!





# 빛과 색을 활용한 결말 암시

요란한 도주극을 벌이다 마피아 일당에게 붙잡힌 마틴과 루디는, 바다를 보고픈 마음을 이해해 준 보스 덕분에 무사히 바다에 도착한다.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한 마틴. 바다를 바라보며 그는 숨을 거둔다.

영화는 줄곧 이러한 엔딩을 빛과 색을 통해 암시하고 있었다.




(1) 루디를 비추는 빛

영화는 빛의 방향과 유뮤를 통해 결말을 암시했다


 바다를 향해 달리던 두 친구들 중, 마틴이 먼저 천국의 문을 연다는 것은 이미 여러 장면에서 예고되었다. 계속해서 마틴이 아닌 루디만을 비추는 "빛"이 그 첫 번째 힌트이다.




(2) 빨간 옷 입은 마틴과 루디


 루디의 붉은 슈트와 마틴의 붉은 셔츠. 붉은색은 피의 색깔로 생명력을 상징할 수도 있으나, 이들의 경우 정반대의 의미인 죽음을 뜻한다. 특히 마틴이 발작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3) 회보라빛 바다

회보라빛 바닷가를 거니는 주인공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다는 푸르다기 보다 회보라 빛에 가깝다. 우울, 불안의 의미로 해석되는 회보라.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해변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둘의 뒷모습은 마치 천국을 향하여 천천히 나아가는 것 같다. 그런 이들의 형상이 어두운 바다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진한 씁쓸함을 느끼게 한 장면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이 영화를 직접 보기 전에는 그저 슬픈 이야기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재생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경쾌한 야단법석이 펼쳐질 것임을. 이를 증명하듯 영화 ost 목록은 신나는 록, 펑크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제목인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역시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천국을 목전에 둔 두 사람의 로드트립에 퍽 잘 어울리는 선곡이 아닌가? 영화에는 밥 딜런의 원곡이 아닌 독일밴드 Selig(젤리크)가 부른 버전이 엔딩크레딧 위로 흘러나온다. 거친 펑크 기타로 녹음되었지만 영화의 여운 때문인지 잔잔하게 느껴진다. 그 감상을 함께 느끼고픈 분들은 아래 영상을 한번 보시길 추천드리며, 오늘의 스펙트럼 분석을 마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Selig)





ps.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현재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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