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자기 소개할 일이 있어서 마케팅을 몇 년 했나 돌이켜봤는데 찐하게 했던 인터브랜드 인턴까지 합치면 어느덧 7년이었다. 7년차 마케터라고 하면 뭔가 대단히 많이 알아야할 것 같은데... 아직 내실있는 알맹이는 만들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마케터들은 워낙 트렌드나 감각도 좋아야해서 경력이 능사가 아니기도 하고. 마케팅도 인더스트리, B2B or B2C, 스페셜티에 따라 하는 일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커리어 패스를 밟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역시 인트로는 마케터로서의 내 커리어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브랜드 마케팅
2014년: 인터브랜드 마케팅 인턴
브랜드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인터브랜드와 Best Global Brands를 알 것이다. 브랜드 마케팅 학회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수업을 들으며 브랜드 꿈나무였던 내게 드림컴퍼니였던 인터브랜드. 그만큼 그곳에서의 인턴도 내게 지울 수 없는 찌인한 기억을 남겼다. 이때 정말 너무 많이 배웠고 지금 돌이켜보면 맨땅에 헤딩하듯 일하며 불도저처럼 나아가야 하는 날들도 있었지만 정말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브랜드 컨셉부터 네이밍, 디자인, 전략 등 holistic한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브랜드 컨설팅"회사라니...! 게다가 내 직무는 그런 브랜드 회사를 또 브랜딩하는 일이었으니 가슴 벅차게 행복해하며 일했다. 자, 여기까지 "브랜드"라는 단어가 몇번 나왔을까요? 퀴즈를 내야만 할 것 같다. (헛소리...)
학교에서 브랜드 마케팅 학회를 하면서는 오케이캐쉬백, SK컴즈, 삼성 디지털 카메라 등등 다양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인터브랜드 마케팅 인턴까지. 나의 보잘 것 없는 브랜드 마케팅 경험은 여기까지다. 다만 내 첫사랑 같은 존재고, 하는 내내 너무 행복했으며 그런 첫사랑을 잊지 못해 "브랜드&라이프" 인터뷰 사이드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현생이 바빠 유야무야되었다. 이후 다른 방향으로 커리어를 밟아나가면서도 여전히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계속 딴짓으로라도 브랜드와 인연을 이어가려하면서 질척거리는 중이다.
리테일(백화점) 마케팅
2015년 - 2016년: 점포/리테일 마케팅
뜬금없이 백화점에 입사했다. 내가 추구하는 안전이라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안전하게' 대기업에 가야할 것 같은 마음에 대기업 타이틀을 단 백화점에 갔다. 그땐 이게 무슨 마케팅이냐 인형 눈알 다는 일이나 다름없다, 숫자 놀이다 동료들이랑 자조섞인 농담을 했지만 일단 그것도 마케팅이긴 마케팅이었다.
백화점 지점 마케팅은 크게 영업관리 및 CRM / 판촉 및 이벤트 (+VMD 관리)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영업관리 및 CRM 쪽엔 발만 살짝 담그고 주로 판촉 이벤트를 담당했었다. 본사에서 내려주는 테마를 지점에서상권에 맞게 잘 customize해서 구현하는게 중요하고 점 자체 테마도 잡아서 여러가지 구현해볼 수 있다.
기억에 남는 행사 몇가지 - 1. 봄시즌 Kukka와 Co-Work: 봄에 본사에서 꽃 연출 VMD 예산도 있고 하니 뭔가 시너지낼게 없을까 하다가, 당시 핫하던 꾸까와 협업하여 Gallery 복도를 꽃 비주얼로 꾸미고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팝업행사를 진행해서 추가 매출을 이루어냈다. 영업층에 소소한 꽃 이벤트들도 넣어줘서 심플하지만 기본기 잘해서 성공한 케이스 2. 프라이탁이 뜨길래 매번 버려지는 점포 현수막 천 재활용한 에코백을 자체 제작해서 사은품으로 활용했다. 감도도 나쁘지 않았고 잘됐는데 본사에서 자기들 에코백 만드는거 광파느라 우리거 못 본 척하는 바람에 속상했던 케이스 3. 망했는데 우리끼리 재미있었던 행사. 당시만해도 아직 젊은 타겟층 공략하던 때라 스윗소로우 콘서트 기획하고 고려대 응원단이랑 협업해서 이벤트했는데 회원 모집은 잘됐지만 매출 기여도가 낮아서 주목받지 못했던 행사였다.
2017년 - 2018년: 포인트 멤버십 마케팅 / 앱 활성화 마케팅 / 제휴 마케팅
본사로 이동해 그룹사 일을 하게 됐다. 그룹사들의 통합 멤버십을 만드는 일이었고 TF팀으로 합류해서 내부 시스템 및 모바일 앱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독일 와서 Scrum, Design Thinking, Agile 등 다양한 개념 및 일하는 방식에 대해 배우다보니 그때 참 주먹구구식으로 했구나 싶다.
전 회사 특유의 일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이것저것 다 했다. UX Optimization도 열심히 하고 시스템 개발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특히 얼떨결에 제휴 마케팅을 주업무로 맡고, 시스템 오픈도 안 한 상태에서 제휴사 구해오라고 하는 바람에 민망한 미팅을 여러번 했지만 다행히 좋은 선배를 만나 여기서도 많이 배우고 결국 대한항공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금융멤버십들 등 다양한 제휴사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다. 포인트 제휴는 특히 시스템 개발이 복잡해서 업무 진행하며 진짜 많이 배웠다. 막내다보니 회원모집 및 포인트 실적 일보 등 지표 관리를 담당했고 그룹사 및 제휴사간 판촉 및 이벤트도 전담했다. 결론은 이것저것 다 했다는거.
디지털 마케팅 (구글 플랫폼, 서치엔진)
2019 - 현재
Project management 와 Search Engine Advertising 인턴에서 워킹스튜던트를 거쳐 풀타임으로 합류했다. 처음에 인턴할 때는 Search Engine 관련 업무에 큰 매력을 못 느꼈다. 그때만해도 부서가 작았고 업무들이 너무 micro한 느낌이었다. 업무가 단순 account management와 campaign optimization에 제한되어 있어서 이 부서에 조인하는 건 내 역량의 scope을 너무 제한시키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인턴을 하던 당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어서 두 부서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마지막에는 SEA를 선택했다. 특정 분야에서 내 스페셜티를 키우고 싶은 욕심과 시장에서 Search Engine을 중심으로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수요가 꽤 크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 그리고 언젠가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싶다면 한 분야를 책임지고 맡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management 스킬은 나쁘지 않으나 프로젝트를 매니징하고 코디네이션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는 이미 지난 경험들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PM의 길은 걷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내 포지션이 인턴 - 워킹스튜던트 - 풀타임으로 바뀜에 따라 팀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Search 검색 위주에서 디스플레이, 쇼핑, 비디오(유튜브) 쪽으로도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고, 클라이언트 포트폴리오도 여전히 B2B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많은 B2C 클라이언트들이 유입되었다.
소셜미디어와 SEA/SEM으로 나눠져있던 팀이 한 부서로 통합이 되었고, 덕분에 한 채널에 제한되지 않고 Paid media 전체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전략 업무의 비중이 커졌고 디스플레이나 유튜브 광고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전략 및 브리핑 업무들이 확장되었다.
Private Equity 회사들이 다른 회사를 인수/투자 하기 전에 가치를 평가하는 Due Diligence 프로젝트의 비중도 늘었다. 다른 회사들의 Paid activities를 살펴보고 분석 및 평가를 하는 업무인데 분석 포맷은 대충 정해져있어서 거기서 거기지만, 새로운 제안을 하기 위해 아이디에이션하는 것도 흥미롭고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아직까지는 재미있다.
마케팅 외길 7년이지만 마케팅 직무 안에서도 여기저기 참 많이 헤매고 다녔다. 내가 사랑하는건 브랜드 마케팅이지만 사실 적성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잘 맞는 것 같다.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고 개선하고 Optimizing해나가는 일도 재미있고, 내가 짠 전략에 따라 여러가지 광고 포맷을 테스트하고 분석하고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3년 뒤, 그러니까 10년차엔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까. 또 마케팅 틀 안에서 어딘가 헤매고 있을까. 이런 나의 마케팅 여정을 기록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