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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몽상가 Oct 03. 2023

이것이 권력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삼성 주니어 필독선 인문사회 07)

<이것이 권력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최근 내가 근무하는 조직에서 필독 고전서 12권을 선정하여 독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의 향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조직 구성원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시공간적 범위를 깊고 넓게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래를 연구하는 조직에서 왜 과거에 쓰여진 고전을 탐독하는지 직관적인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당연히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 아직까지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역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둘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아직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어떤 미래가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는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래학적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내가 속한 조직이 설립되었고, 육군 구성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미래비전을 설계하고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조직의 임무와 역할이다. 우리 조직에 부여된 임무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에 도전한 위대한 사상가들의 지혜를 경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세대에 통용될 상식과 대화한 선각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업적과 지금의 현실을 모두 부정한 채 미래를 향한 출발선에 설 수 없다. 오랫동안 역사적 검증을 받아 지금도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고전을 탐독하는 것이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서는 방법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래의 향연’이라는 이름을 고안했고, 고전서 탐독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고전은 ‘나 그거 읽어봤어’보다 ‘나 그거 아직도 읽고 있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단번에 읽기가 쉽지 않은 책들이다. 얼마 후 있을 독서 토론회에서 다루게 될 고전서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마찬가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고전서를 읽고 구성원들과 토론하는 전체적인 진행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가장 얇은 번역서를 골라 읽기 시작했다. 남는 장사 하나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눈에 들어온 더 얇은 책이 바로 삼성출판사에서 주니어들을 위해 출간한 필독서 세트 중 한 권인 ‘이것이 권력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이 책은 약 10년 전 초등학생 딸을 위해 야심 차게 구매한 주니어 필독서 세트 120권 중 한 권이다. 물론, 딸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책을 사준 나도 솔직히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토론회에서 다루게 될 고전서를 <군주론>으로 결정하고 나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먼지에 싸여있던 필독서 세트의 책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선정한 12권 중 거의 대부분이 120권의 목록에 들어있었다. 망설임 없이 먼지 쌓인 책꽂이에서 <군주론>을 꺼냈다. 이번에 읽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처음부터 이 책을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쉽고 재밌게 읽었다. 비록, 초중고생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자 집필된 책이지만, 고전소설, 고전문학, 인문고전에 도전하고 싶은 성인 학습자가 있다면 삼성 주니어 필독선 세트를 강력히 추천드린다.  

 


  이번에 읽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면서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나름 관련 배경지식을 공부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구성과 술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밖에서 살펴보기’이고 2부는 ‘책 속으로 들어가기’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미 1부와 2부의 제목을 통해 짐작했듯이, 1부는 르네상스의 아들이라고도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짧지만 굴곡진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개관하고 있고, <군주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아주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1부에서 <군주론>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 설명을 듣고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권의 마키아벨리 평전과 <군주론> 번역서를 다시 들여다보니 무언가 더 선명해지는 짜릿함을 느꼈다.

<군주론>은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몇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군주국의 종류를 구분하여 각각의 유형별로 국가가 운영되는 원리와 특성 및 장단점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주로 국방에 관한 문제로 용병에 의존하여 망국의 길로 향하는 피렌체의 무능함을 맹렬히 비난하며 강력한 자국의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논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처세술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통일된 이탈리아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제언들과 함께 운명에 대처하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p.32∼33)

마키아벨리와의 젊은이들의 대화 장면(p.40)

 그리고 이어지는 2부의 기술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연상케 하듯, 마키아벨리가 젊은이들과 나누는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군주론>의 내용을 풀어가고 있다. 그 젊은이들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로 마키아벨리가 공직에서 파면당한 뒤 ‘오리첼라리의 정원’을 출입하며 만났던 명문가 자녀들이다. 2부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 젊은이들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으로 독서 토론회를 하는 장면을 재밌게 관람하고 있는 관객이 된 기분이 든다. 물론, 젊은이들이 실제로 한 질문은 아니고 그들의 이름만 인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군주론>을 읽으며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고, 마키아벨리가 출판 기념회를 지금 연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어 몰입감이 매우 높아진다. 예를 들면 자국 군대를 가져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군주론>의 제12장과 제13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대화로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중간마다 들어간 삽화는 몰입감과 이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루이지 : 결국 선생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용병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마키아벨리 : 당연하지!
필리포 : 그런 식의 논리라면 자국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도 믿을 수 없겠는데요. 꼭 용병대장만 배신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마키아벨리 : 하하하! 자네 말이 맞네. 그래서 군주국에서는 군주 자신이 자국 군대를 직접 지휘해야 하고 공화국은 시민의 통제를 받는 장수에게 맡겨야 하는 걸세.
코시모 : 외국 원군은요? 동맹국 원군도 나라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텐데요.
마키아벨리 : 이보게, 코시모! 세상에 공짜는 없다네. 정치는 자선사업이 아니네.
코시모 : 원군을 보낸 쪽에서 대가를 요구한다는 뜻인가요?
마키아벨리 : 내 말 잘 듣게. 원군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겠지.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원군을 활용하는 자는 언제나 손해를 입게 마련이네. 원군이 전쟁에서 지면 도움을 청한 자가 몰락할 것이고, 원군이 승리하면 도움을 청한 자가 원군의 손아귀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 (제13장)
제12장과 13장 관련 삽화(p.76)

   <군주론>의 내용을 활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거의 5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 <군주론>에 적힌 그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현실을 직시하며 권력을 어떻게 얻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을 전해주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군주로서 자신만의 통치 원칙 또는 조직의 운영 원리를 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선택이고 당연히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군주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현실적 조언들을 지금 내가 속한 조직에 적용하고 잘 실천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스스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기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군주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 군주가 될 수는 없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러운 위선자이면서, 위험을 피하고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존재(제17장)”라고 믿고 있지만, 당신의 그런 인식이 부하들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처세에 뛰어나거나, “여우와 사자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으면서 도덕적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제18장)” 비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연기자라면 마키아벨리의 가르침대로 행동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없거나 아직 자기 객관적 성찰과 진단이 부족하다면 절대 흉내를 내지 말라고 충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나의 모든 활동은 어딘가에 데이터로 남고 아무리 내 의도를 숨기려고 해도 언젠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 지금의 투명해진 사회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다. 권력을 지배한 자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자신의 비도덕적인 의도와 잘못된 결정을 역사 속에서 완전삭제 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마도 마키아벨리가 제25장에서 “행동 방식이 상황과 환경에 적합할 때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실패한다”라고 밝힌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자기성찰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읽은 어떤 고전도 완벽한 절대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꼭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를 찾지 말고 내가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주체적 인간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자기성찰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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