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너머, 인간을 보다
#지금 내 삶의 질문
요즘 나는 자꾸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정의는 살아있는가. 검찰 개혁 요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누군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이를 환영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공분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누군가는 억울한 처벌을 받았다며 호소한다.
4월의 어느 날, 우리는 문형배 재판관의 단호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지금은 정명원 검사라는 또 다른 법조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둘 다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은 판단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은 공판하는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형사법의 세계는 오직 유죄 혹은 무죄로 나뉜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TV를 보다 보면 '예 / 아니요'로만 대답해라, '했다 / 안 했다'로 대답해라 등의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진위형으로 물어볼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해 놓고 수험생 보고 억지로 O/X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럼에도 우리는 억지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모순된 세계를 살아간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해야만 하는 검사. 그러나 이분법적으로 갈라지지 않는 세상. 그 사이에서 검사는 어떤 고뇌를 하는가? 씨닭 사건 이야기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명쾌한 답을 찾아주었다.
검사는 이렇듯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나 좀처럼 확인되기 어려운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애송이 검사의 가슴에 두렵고도 뻐근한 무엇으로 차올랐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구분 지으려는 세상을 향해 문형배 재판관은 '호의'의 시선으로, 정명원 검사는 '유무죄의 세계'라는 냉정한 현실에서도 인간에 대한 낙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애쓴다. 두 법률가 모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문형배 재판관은 부산과 경남에서 보통사람들의 사건을 다뤘다. 정명원 검사는 검찰 유일의 국민참여재판 블랙벨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려한 공안부나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와 공판부에 머물며 자신의 사명을 다해왔다. 두 분의 묵직한 삶의 궤적을 상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정명원 검사의 겸손한 고백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수사와 재판, 유죄와 무죄가 갈리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우리가 하는 일로 세상의 모든 일이 규명되거나 규정지어지지 않는다."
판단하는 자리에서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세. 그것은 약함이나 회피가 아니라 용기 있는 인정이 아닐까? 문형배 재판관이 모든 사건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했듯이, 정명원 검사도 공소장 너머의 풍경들과 함께 기꺼이 일러이는 자가 되고자 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정명원 검사의 '인간에 대한 낙관'도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유무죄 세계의 3가지 풍경.
이 책은 3가지 각기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세 가지 풍경을 그려낸다. 첫 번째 풍경은 사건 외곽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두 번째 풍경은 검사로서 버텨낸 일상의 흔적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들려준다. 세 번째 풍경은 다소 느린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골지청의 따뜻한 하루를 보여준다. 각 풍경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각 풍경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3가지 장면이 있다.
#사기와 패기 사이
잘 나가던 젊은 사업가가 결국 사기죄로 수감된다. 이미 형을 선고받았지만 다른 건으로 고소되어 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는 예전과 달리 무척 불안정한 모습에 재판 일정을 연기하려고 했지만, 이번 건만큼은 진술을 꼭 해야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 작가는 드러내지 않았다. 중요한 건 패기 있던 사업가가 사기죄로 인생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무너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핑크빛 확신만 있을 뿐이다. 사기가 성공할 거라는 확신대로 밀고 나가는 패기만 존재한다. 패기와 사기는 한 끗 차이다. 그 한 끗 차이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우치지 못한 사람에게 그 한 끗 차이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만큼이나 머나먼 간극이 된다. 그 한 끗 차이의 결과는 시공간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지만, 그 차이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공존하고 있다. 유죄와 무죄, 패기와 사기, 신뢰와 불신, 나와 너, 자기 확신과 자기반성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고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균형감각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특히 의사결정권이 주어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자신의 결정이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깊게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의 판단과 결정의 물결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와 경청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경청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정명원 검사가 공소장 너머의 이야기를 읽어내려 애쓰듯, 우리도 글과 말 너머의 인간의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경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두 번째 풍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편향'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목이 굳어서 오른쪽으로 정확히 5도 기울어진 채 목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보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체념 한 채 그냥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왼쪽으로 다가와 이제 목이 괜찮아졌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돌려보고 괜찮아진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목이 굳었는지 몰랐고 어떻게 풀렸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풀렸다. 그는 이 경험을 '편향'이라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한쪽으로 조금은 치우쳐 있다. 어느 한의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사람의 몸이 정확하게 50:50으로 좌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오랜 습관 탓에 우리의 몸과 생각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특히,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진실을 밝혀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쪽만을 오래 응시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정명원 검사는 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건 그다음 문장이었다.
다른 한쪽에서 다가오는 다정한 이들의 인사에 제대로 화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면 무거운 엉덩이를 들거나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 전체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는 수고를 애써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야지. 기꺼이 수고스러운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고 닥쳐오는 편향 속에서도 조금은 균형 잡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지.
한쪽만을 바라보는 기울어진 시선의 위험보다, 다른 쪽에서 다가오는 다정함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따뜻한 시선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거운 몸을 돌려 다정함이 다가오는 방향을 바라보는 수고스러움을 선택해야 한다. 그 수고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균형 잡힌 인간에 가까워진다.
#검사 엄마
두 번째 풍경에서 나를 울컥하게 한 장면은 검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작가님의 이야기였다. 작가님의 초등학생 둘째가 아직 엄마와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슬슬 잠자리 독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첫째의 쿨한 한마디는 내게 너무도 애잔하게 들렸다. 첫째가 둘째에게 쿨하게 조언한 한마디는 "야, 즐길 수 있을 때 엄마를 충분히 즐겨. 흔히 있는 엄마가 아니잖아." 아이들은 왜 다른 엄마들처럼 자기들과 같이 있어 주지 않느냐고 물어보지 않고 흔치 않은 형태로 출몰하는 엄마를 꽉 차게 즐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검사 엄마를 둔 자녀, 검사 아내를 둔 남편이 되어 잠시 상상해 보았다. 흔치 않은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와, 과거 나의 직업 때문에 네 식구가 모두 떨어져 지내야 했던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뭐 안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큰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내를 생각하면 내 아내도 검사만큼이나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야 하는 직업이다.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낮과 밤이 매번 바뀐다.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고 하늘을 나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아내의 특이한 이력을 알고 방송국에서 촬영 제의가 들어왔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랑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엄마 아빠랑 떨어져 지내고 있는 당시 초등학생 딸에게 PD가 물었다. '엄마랑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거 힘들지 않아? 엄마가 비행기 조종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딸은 숙쓰러운 듯 짧은 한마디로 답했다. "그런 엄마가 너무 멋져요!"라고.
때로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큰 마음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편견 없이, 편향되지 않은 시선으로... 아이들이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이해와 사랑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어쩌면 검사 엄마는 그 힘으로 법복의 무게를 견뎠을 것이다. 내 아내가 그랬듯이.
#인간을 향한 시선
문형배 재판관의 호의, 정명원 검사의 낙관, 그 둘의 시선이 만나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지하철 출퇴근길에 읽었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다 자주 주변의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 사람들, 누군가는 호의를 필요로 하고, 또 누군가는 따뜻한 낙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그들의 시선 속에서 똑같이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호의를 기억하면서, 그리고 유무죄 너머의 인간을 낙관하면서.
문형배 재판관과 정명원 검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든다. 아직 대한민국의 정의는 죽지 않았구나. 두 분 말고도 분명 호의와 낙관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법조인들이 많겠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법정 안팎에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법률가들의 목소리가 자주 세상밖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나오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인간을 향해, 희망을 향해, 그리고 사랑을 향해"